5월18일
집에서 6시30분에 나왔다. 오늘 헌팅 할 지역의 장소리스트를 뽑지 못한 때문이다.
집의 컴퓨터는 갑자기 인터넷이 두절이다. 물론 사무실에서 끝내야 했지만 그도 여의치 않아서 집으로 끌고 온 일이었다.
또 하나, 헌팅일지도 작성하지 못했다. 어제 하다하다 못하고 퇴근을 한 것이다.
이일들은 부장님이 알면 큰일이다.
오늘 서둘러 모두를 작성해야 한다.
지금은 8시40분 이진섭씨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이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이 많기도 참 많다. 예전에 누군가 그랬었다.
손으로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필기구를 넣고 다니다가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놓치지 말고 적어 두어야 한다고. 그게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전에는 알면서도 귀찮아 머릿속에 넣고 다니다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혹은 간단한 단어로 써 놓아 나중에는 해석 불가능의 단어 조합이 되고는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로변. 사람들이 분주히 스쳐지나간다.
이제 글쓰기가 시작되나 보다.
회의를 했다.
다들 말이 무지 많다. 오늘 한일의 결과와 내일 해야 할 일을 점검하는 시간이다.
나도 오늘 무지 많은 일을 했는데.
부장님이 물으신다.
나는 에어로빅센터와 파출소, 약수터를 헌팅 했고 내일은 지역을 달리해서 계속 헌팅을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다음 주까지 잡힌 헌팅일정을 보면
진섭씨와 나는 서울 시내 대부분의 에어로빅센터와 파출소, 약수터를 돌아다닐 것 같다.
약수터는 덥기는 하지만 진섭씨와 나는 재미있게 등산을 한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부장님의 눈빛이 예리하다.
다시 많은 말들이 오고간다. 말들이 달린다. 경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일번 말이 앞서 달리기 시작한다.
회의가 끝나고 부장님이 나를 부른다.
‘제작일지는 하고 있나?’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그래도 맘씨 착한 부장님은 나의 제작일기를 재미나게 읽어 줄 것이다.
오늘의 특별한 일들.
대표님이 수고한다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어깨를 두들겨줌
기획실장님이 사무실에서 코믹댄스를 추고 돌아감
감독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줌
그리고 조감독님과 미술감독님과 눈인사를 주고받음
흠. 가끔은 이런 아부성의 멘트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기대하던 헌팅에 대해 쓸 시간이다.
진섭씨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그때 진섭씨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세요. 집이면 한 시간만 늦게 만나면 해서요.’
‘이미 출발했는데요. 기다릴 테니 진섭씨는 편하게 일을 보고 오세요.’ 라고 나는 말했다.
진섭씨의 말에 따르면 시나리오 작업으로 잠을 못 잤다고 했다.
다들 너무 힘들다.
진섭씨는 10분정도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진섭씨의 요상한 악취미 몇 개를 소개한다.
진섭씨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계단을 뛰어오르기를 좋아하고
음료수는 꼭 레몬이 들어간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오늘은 점심을 헌팅장소와 가까운 대학교식당에서 먹었다.
진섭씨의 말에 따르면 식당 밥에 질려서라는데,
물론 나도 좋다고 동의는 했지만 여타의 정황을 미뤄 볼 때 조금 아주 조금
똘기가 있는 듯하다.
웃음. 웃음. 웃음.
그리고 오늘 미술감독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주차공간이 협소해서 주차를 맡기시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쑥스럽게도
‘미감님 오라이~’
약간 당황한 미감님은 서툴게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표정은 역시 좋지 않다. 이래저래 주차는 끝났지만, 역시 남자는 주차를 잘해야 한다.
미감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군대 삘 나는 나의 주차유도는 절도 있고 명쾌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저녁은 중식을 시켜먹었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밥을 먹는데 각자 개성대로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 나와 피디님은 자장면을 시켰는데, 이상하다. 피디님의 자장면은 뚱뚱하다.
피디님은 식사하는 동안 자장면은 곱빼기를 먹어줘야 한다는 말을 세 번 정도 반복했다.
나는 배가 불러 죽겠는데...
으악.
일지를 쓰느라 내려야 하는 지하철역을 지나쳤다
짜증보다 몸이 축 늘어진다
머리는 몽롱하고,
다리야 힘내자 . 다리야 힘내자. 다리야 힘내자.
세 번 정도 반복하면,
다리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대겠지.
대박한번 냅시다^^
고생하시고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