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퍼왔던 글입니다...
핸드헬드(들고 찍기) 촬영기법의 사전적 의미는 카메라가 고정된 받침대나 기계적 안전 장치에 부착되지 않았음을 현저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 촬영 방식을 말한다. 이것은 휴대용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거나 그 결과로 나타난 불안전한 영상의 상태를 가리키며, 영화에 우발적이고 분방한 스타일을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핸드헬드 기법은 시네마 베리떼 다큐멘터리에서 적극적으로 채용되어 왔고 지금은 극영화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처음으로 영화용 카메라가 발명되었을 때는 지나친 무게 때문에 이것이 불가능했으나 1920년대 이후의 기술 혁신에 의해, 특히 뉴스 영화를 위해 특별히 한결 가볍고 작은 모양으로 카메라(에끌레어 카메라)가 개량되면서 기록영화나 전위영화 작가들에 의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의도적인 핸드헬드로 인해 현장성, 즉흥성, 자유 분방함 등의 리얼리즘 스타일이 강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화면 내의 참가자로 직접 등장하는 미학상의 차원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일반적으로 누벨바그는 카메라 움직임을 자유분방하게 펼쳤는데 패닝과 트래킹 뿐만 아니라, 회전그네든 휠체어든 막다른 골목이든 어디를 막론하고 들고 찍기를 감행하였다. 누벨바그의 핸드헬드가 보여준 새로운 사실주의적인 장면은 자연조명이나 롱테이크와 더불어 현장촬영의 규범이 되었다. 이는 최근 1995년 도그마 선언에 있었던 현장감 넘치는 핸드헬드 촬영의 고집으로까지 이어져 누벨바그의 영화미학을 독특하게 발전시켜오고 있다. 프랑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1968)에 나오는 긴 격투장면은 핸드헬드로 촬영하여 카메라를 액션에 휘말린 사람의 시점처럼 보이게 했다. 또한 <브레이킹 더 웨이브>(라스폰 트리에, 1996)에서는 항상 조금씩 흔들리는 화면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미세한 감정의 변화들을 표현했으며, 최근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스티븐 스필버그, 1998)에서는 도입부의 상륙장면을 핸드헬드로 찍어 2차 대전을 실제로 중계하는 듯한 사실감을 만들어 냈다.
국내에서 핸드헬드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이 흥행에 성공한 이후였다. 주인공을 후위에서 따라가며 핸드헬드로 촬영하여 주인공에게 운동감과 사실성을 부여한 이 스타일은 이후 국내에서도 활발히 쓰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근래에는 자주 접하게 되는 카메라 기법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이다. 환규(임창정)에게서 돈을 뜯어간 동네 깡패들과 민(정우성)이 싸우는 장면에서 핸드헬드가 사용됨으로써 실제 싸움의 현장에 있는 듯한 사실감과 현장감, 운동감을 관객에게 만들어 주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 1998)에서도 핸드헬드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세 명의 주인공들을 개별적으로 비추는 장면에서는 상당히 흔들림을 나타내고 다른 장면에서는 비교적 유동이 적은 움직임을 나타낸다. 섹스 씬도 교차 편집이 아닌 핸드헬드로 촬영하여 일상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핸드헬드의 장점이 현장성이라면 <산부인과>(박철수, 1997)에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하지만 다의적이고 열린 시각의 입장에 서면 그 의미가 모호한 부분이 많다. 핸드헬드는 관찰자, 즉 관객에게만 시선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도 하나의 관점을 제공하는데 이는 감독(혹은 작가)이 부여한 시선이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감독은 카메라에 남성의 관음증적인 시선을 제공한다. 이제 카메라는 현장성을 넘어 여성의 신체를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자유 분방하고 독보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산부인과>의 핸드헬드는 여성을 둘러싼 성과 출산 문화라는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고, 단지 쾌락적 시선에만 얽매이고 말았다. 감독의 의식이 어떻게 반영되느냐에 따라 핸드헬드의 현장성이 왜곡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핸드헬드가 쓰인 영화로는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가 있다. <간첩 리철진>에서 핸드헬드는 화장실 안에서 화이가 철진에게 운명을 빌려주는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사용된다. 시작 부분에서 간첩이 자살하는 장면은 뉴스나 다큐멘터리 같은 역동성과 현장감을 준다. 하지만 리철진이 낯선 땅에 와서 적응하는 동안의 모습에서는 핸드헬드가 두 가지의 기능으로 작용한다. 하나는 낯선 땅에 와 있는 리철진의 어색함과 회의하는 감정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동일한 기능으로 말이다. 또 하나의 기능은 낯선 그를 관찰하는 관찰자의 기능이다. 예를 들어 리철진이 빨간불에 신호등을 건너는 장면에서처럼 관찰자에게는 낯선 인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핸드헬드는 관찰자의 호흡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양식화된 기존의 문화 관습과 패러다임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은 영화 형식에 있어서 핸드헬드 촬영으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히 테크닉이 아니라 영화 미학을 담아내는 역할까지도 수행함으로써 도그마 95 이후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펼쳐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