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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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나르시시스트

s010534 s010534
2009년 09월 14일 08시 36분 06초 1965 6
영화 <달콤한 인생>은 누아르라는 장르를 표방한다.
그리고 이미지에 걸맞게 영화 속에서는 허무감이 잔뜩 베어 있다.
영화 초반 선우(이병헌)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선우의 셰도복싱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초반부 독백은 불교의 선문답이다.
그것이 벽암록의 고승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선문답은 마지막 부분의 고승의 달콤한 꿈 이야기와 겹치면서 허무감을 극도로 나타낸다.
깔끔한 외모와 그 외모만큼 깔끔한 일처리를 자랑하는 김 실장은 강 사장의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을 받는다.
자신의 젊은 애인에게 남자가 있는지 감시하고, 만약 그렇다면 조용히 처리해 줄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선우는 강 사장의 젊은 애인을 보는 순간 마음에 파장이 인다.
아주 조그만 파장.

'스승님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나무가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고 있는 겁니까?
제자야. 그것은 바로 네 마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우의 흔들리는 마음은 결국 그녀와 애인 모두를 살려두게 되고,
이것을 강 사장은 자신에게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 그를 죽이려 한다.
물론 죽이기 전 선우가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면 살려두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선우는 자신의 그 작은 파장을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파장은 이내 커다란 파도로 밀어닥쳐와 끝내 강 사장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한밤중 제자가 잠에서 깨어나 흐느낀다.
이것을 괴이하게 여긴 스승이 왜 우느냐고 묻는다.
제자는 달콤한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우는 것이냐?
그 달콤한 꿈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끝내 현실이 되지 못할 달콤한 꿈.
그 꿈을 꾸는 동안의 달콤함은 잠시 일어난 마음의 파장과 같은 것.
버드나무도 아니요 바람도 아닌 너의 마음이 흔들릴 때 그 흔들림을 끊는 방법은 바로 자기 자신의 소멸을 통해서다.
불교의 수행은 바람과 버드나무와 나와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움직임의 소멸이 아니며,
움직임 그 자체의 소멸도 아니며, 바로 자기 자신의 소멸을 통해서 모든 움직임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우에게 그 자신의 소멸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는 물 위를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에 취한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르시시트임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지막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섀도복싱을 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며, 그 허공을 가르는 주먹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창 밖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욕망의 도시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모호한 모습,
그 자체를 통해 나르시시즘과 허무주의를 모두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어요. 말해봐요'

아마 선우는 평생을 생각하더라도 알지 못할 것이다.
7년을 섬겨온 보스가 왜 자신을 내치는지 그 자신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 선우는, 창가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선우는 끝내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호수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빠져 숨진 나르시스처럼 선우 또한 우상화된 자신의 모습에 빠져
끝내 끝을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허무주의로 향해 가는 그 길의 끝을 그는 결말을 알면서도 끝내 되돌아서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자신이 생각하던 그 아름다운 선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테니까....

크리스토퍼 래시가 70년대 미국사회를 나르시시스트의 사회라고 보았듯이 그 사회는 현재 우리 서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스포츠에 열광하기도 하고, 스타에 광분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영혼을 뺏기는 모습 속에서,
나도 우리도 모두 일정 부분 나르시시스트임을 인정한다면 선우의 자기애와 그 끝없는 허무에의 질주를 이해할 법도 하다.


[출처] 나르시시스트 선우..|작성자 농디
인생 머 없어 돌아가지마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7110ckm
2009.09.14 16:56
뜻보다, 풀이처럼..

영화보다는 비평이네요,

"달콤한 인생" 은 감독에 상업성을

작가주의로 포장한 위선적 영화..

"반칙왕" 에서의 시니컬은

더이상 찾아볼수 없고,

다만,
불교의 세계관과,
염세주의의 겉핡기만이

카메라 워킹을 통해
세련되게 표현했던, 작품

하지만,

스타 마케팅과,
액션 느와르라는
고질적인 상업주의 안에서도

감독에 재능이,

아직 남아있던 작품,
aesthesia
2009.09.16 23:46
후훗, 신선합니다 영화는 늘 먼저이고 비평은 늘 후자 입니다 세월좋게 이것저것 평가하는 일종의 한가한(?) 활동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나쁜 뜻은 아닙니다 한가한것도 필요하지요 댓글은 부정적이지만 옮겨오신 평론은 좋네요
Profile
7110ckm
2009.09.17 00:41
^^

역시 댓글시간은 즐겁네요,

한가한 사람은 아니구요,

독립영화인입니다.
두번째 작품 준비하다보니,

책과 인터넷이 유일한 말동무이고..

작업실에 TV가 없는 관계로,
쓸데없는 열등감은 머릿속에 들어가질 않고,

만나지 않고도 만날수 있는,
필커 회원 여러분들에 글귀들은,

마치 살아있는듯,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달콤한 인생" 에서,

나르시스트(자기애) 까지, 느끼셨다고 해서,

몇자 적어봤어요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불현듯 느껴져서,

나쁜뜻은 아닙니다.
Profile
s010534
글쓴이
2009.09.17 03:06
꿈도 좋은 꿈이면 좋은거고
행몽도 좋으면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나쁜 뜻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저는 관대합니다.
ann
2009.09.17 13:54
크리스토퍼 래시가 70년대 미국사회를 나르시시스트의 사회라고 보았듯이 그 사회는 현재 우리 서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대목에서 절대 동감!!!!
Profile
s010534
글쓴이
2009.09.18 06:52
영화인이라면 평론도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가해서가 아니라여.
우리는 좋은 영화를 볼 때 그냥 보지 않습니다.(제 기준에서는 달콤한 인생은 상당히 좋은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보는가 하면 , 감독의 역출능력도 보며 스토리도 보기도 합니다.
그보다는 영화를 더 치밀하게 보기도 하죠.
영화를 제작하는 일원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한가하기 때문에 본다라는 생각은 굉장히 '야성적'이다.생각의 폭이 좁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인간이 동물보다 종족유지를 더 잘 하는 이유는,
생각을 할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으며 의사표현을 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론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aesthesia님이나 7110ckm님은 상당히 '양성적인'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섹시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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