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혼자 늦은 밤까지 이렇게 일하다가, 문득 내가 깨어있다는걸 때닫게 되면
홀연히 '쓸쓸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때는 일손을 제껴놓고 인터넷을 뒤적이며 뭔가 재미꺼리를 찾는다.
뉴스도 읽고, 뭔가 영양가있는 프로그램이 없나.. 혹은 재미있는 영화라도 볼까'라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하고...
그러다 간혹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음을 깨닫고, 잠시동안의 추억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러다가.. 이제는 어느새 취미가 되어버린 회상으로 떠나는 '추억여행...'
오늘은 중학교 시절, 애틋했던 사춘기때의 추억 하나를 꺼내어 회상에 잠겨보기로 한다.
...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때였다. 당시 난 소중한 추억 하나를 가슴에 담아두게 되리라는
상상도 못한 채 시골로 향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매년 겨울방학마다 시골 이모님댁에 가는게 무척이나 설레였던 기억에...
이모님께는 나와 동갑내기인 딸이 있었는데, 서울 사는 큰언니네 집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마침 나와 함께 열차를 타고 내려가게 되었다.
이모님댁은 전라남도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벌교..에서 조금 떨어진 낙안'이라는 곳이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당시 그곳에는 대나무숲이 무척 많았다.
시골에 도착한 난 하루이틀 집뒤의 대나무숲에서, 뒷산의 호랑이굴에서, 들녘에서..
혼자 뭐가 좋다고 그렇게 한참을 뛰놀다 저녁이 되면 나무로 떼는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워먹곤
했었다.
그러다가 이틀째? 아니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이모딸인 '경옥'이가 내게 제안을 했다.
자기 고향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더니 같이 놀자고 하더라는...
(뭐 나쁠거 없지?'라며 대답을 했었을게다. 아니, 나야 당연히 좋지~라고 했던가? ㅡㅡ;)
밤늦은 시간으로 기억된다. 10시가 넘어선.. 내 대답이 끝나자 마자 내 손목을 잡고 끌고간 곳은..
근처, 경옥이의 친구네 집이었다.
달빛이 희미하게 돌담길 골목을 비추는 어두운 밤.. 골목을 몇개 지나, 싸리나무로 만든 대문을
조용히 열고 마당을 건너 사랑방 비슷한 구석의 불켜진 방문 앞에 섰다.
'잠깐만..'하더니, 경옥이가 방문앞에 슬그머니 다가서 노크를 한다. 방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들어오라고 한다. 나도 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마침 영숙이라는 친구의 집에는 부모들이 서울 오빠네 갔기 때문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방안에는 이미 몇명의 친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까지 모두 다섯명..
나 빼고 모두가 여자애였고 순간, 난 얼굴이 빠알개져서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게중 한 친구가, '어머,어머, 얼굴 빨개졌다'라며 웃기 시작하니 모두의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순간, 경옥이가 '모두 나랑 어릴적부터 친한 동네친구들이니깐, 너두 편하게 대해, 괜찮아~'라고
말하니, 옆에 친구 한명이, '그래~ 너두 우리랑 동갑이라며, 같이 친하게 지내자~,응?^^" 하며
말을 건넨다.
아뭏든, 그렇게 잠시동안의 어색한 시간은 몇분이 지나지 않아서 너무나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다. 게임을 몇개 하고나니, 모두가 오랜 친구였고 좋은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섯명이서 뜨끈뜨끈한 온돌바닥에 두꺼운 솜이불 하나를 가운데 놓고 덮은 채 둥글게 모여않아
007빵,곰발바닥 개발바닥,진실게임등(아마도 그와 비슷한 너무도 재미있는 게임들이 많았다..)..
한 두시간여를 그렇게 놀았을까, 누군가 실수를 할 때마다 서로가 웃겨서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고 또 웃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야..잠시만 쉬었다가 하자. 쉬는 동안 노래부르기 하자'라고
하는데, 노래부를 사람을 내가 지목을 하라는 것이다.
사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난 본능적(?--;)으로 얼굴을 하나씩 둘씩 살펴보게 된 것 같았다.
당연히 그중 눈에 확 뛰는 친구가 한명 있었던게다. 그녀가 바로 '영숙'이었다.
(지금의 남상미..닮았다. 아니, 더 이뻤다. 게임끝이다.--;)
모두 시골스럽게 착하고 선하게 생겼는데, 유독 영숙이만은 너무도 예뻐보였고, 아니 실제로
지금 기억해봐도 무척이나 이쁜 얼굴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첫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를 지닌
여자애였던 것이다. 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속일 수가 없었나보다. 잠시 망설이다가..
영숙이를 지목했던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 '치. 그럴 줄 알았어~'라며 웃는다.
내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표시였겠지? 하지만, 난 정말 그녀의 노래를 듣고 싶었고 게임을
하는 내내 그녀에게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다른 친구들에게는 이 자리를 빌어(?)
사과를 하고 싶다. 미안하다. 영숙이가 너무 이뻤다. ㅡ,.ㅡ
영숙이는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망설이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마음따라 피어나는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아래 구름속에... '
'얼굴'이라는 노래였다.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바알개진 얼굴로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너무도 이쁘고 동그란 얼굴...
조용하고 깊어질 대로 깊어진 밤. 너무도 깊은 시골구석의 그 작은 골방같은 그녀의 방에서
울려퍼지던 그 낭랑하고 아름답던 그 목소리...
마침내 그 아련한 시간이 흐르고, 그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내가 꿈을 꾼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어젯밤의 일을 생각해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분명
그녀는 내 가슴에 천사로 다가와 내 모든 것을 사로잡아 버린 듯 했다.
... 중략 ...
영숙이와의 너무나도 멋진 추억에 난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면, 이모댁에 돌아와
방에 들어서기 전에 뒷산의 대나무숲에 올라서 달빛을 올려다보며 한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떠나야 되는 날이 다가왔다. 날이 새고 다음날이면 영숙이와 헤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며칠을 행복하게 보냈다. 너무나도 행복한 설레임을 가슴에 안은 채...
헤어지기 전날 밤. 그날도 역시 친구들이 함께 모였다. 한참을 재미있게 논 후,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모두가 이별 인사를 했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서 헤어진 뒤, 난 잠시 뒤를 돌아
영숙이를 불렀다. '잠깐만 얘기할 수 있어?'라며 골목을 돌아 한적한 곳에 둘이 섰다.
그러나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정말 몰랐다. 잠시동안의 적막이 흐르는 동안...
내 가슴은 쿵쾅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순간.. 영숙이가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즐거웠어. 덕분에 재미있게 놀았고..'라며 웃는게 아닌다.
나도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느낌. 겨울이라 기온이 낮았고,
입에서 김이 날 정도의 추위였기에, 난 덥석 그녀의 손을 두손으로 감싸면서 잡아쥐었다.
'그래.. 나..도.. 너무 좋았어. 재미있었고.....'
그러자, 그녀의 입에 미소가 번졌다. 순간 난 그녀를 안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저 침묵이 흐르고, 마침내 잡은 손을 놓고 헤어져야만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 그 긴 골목길에는 어스름 달빛만이 한없이 처량하게
내 뒷모습을 비추는 듯 했다. 군데군데 대나무숲에서 들려오는 스산한 갈잎소리와, 뺨을 스치는
추위.. 얼어붙을 듯한 심장...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이었다. 1년이 지난 뒤, 다시 시골을 찾았을때는 그녀는 이미 그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용기를 내어 경옥이에게 그녀의 안부를
물으니 그냥 뜸하게 연락만 된다고 한다. 당시 학생신분에 지역을 초월한 사랑을 이루려
노력하기에는 내게 너무도 숯기가 없었다,
'그녀를 만나고 싶어, 연락처좀 알려줄래?'라고 말하기에는 특별한 이유를 말할 수도 없었고,
그럴 용기가 없었던거였다.
또 시간이 흘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한참이 지난 후에.. 명절때 집에 찾아온 경옥이에게
다시 그녀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경옥이는 내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줬다.
'영숙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네의 아는 오빠와 결혼을 했다'라는 것이다.
...
지금도 눈에 선한 그 때의 아련했던 영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겨울밤. 대나무숲, 그 어둠속에 들려오던 대나무숲의 바람소리, 어스름 달빛, 그리고..
그녀와 헤어지고 난뒤, 난 시인이 되었고 모든 유행가 가사의 의미가 내 이야기를 다루는 듯 한
착각에 빠지곤 했었다.
한참이 시간이 지난 어느날엔가 무척이나 바람이 불던 겨울 밤..
라듸오에서 들려오는 음악 하나가 내 가슴을 파고들고 있었다.
G선상의 아리아....
그 음악속에 내 중학시절, 그 애틋했던 추억의 모든 영상이 담겨져 흐르는 듯 했다.
그날 밤. 그녀와 이별을 고한 뒤, 이모님댁 건넌방 한켠에서 켜놓은 라디오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그 바람소리와 함께 가슴속에 파고들었던 그 음악이 G선상의 아리아'였던 것이다.
정말 보고 싶다. 그때의 그녀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