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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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나의 두 남자.

jasujung
2002년 10월 24일 19시 45분 49초 1056 2 10
가실가실한 찬 바람이 마른 버짐 핀 작은 여자아이의 발그레한 볼에 작은 핏줄기를 여러 줄 할퀴어대던 늦가을...
다가올 미래의 어느 시점이면...

나는 가끔, 아주 가끔 두 남자가 생각난다.
첫 번째 남자는 완벽한 나의 이상형이었다.
마르지 않은 체구는 부드러움을 안고 있었고, 가끔은 수줍은 미소까지 지을 줄 알았다.
정말 잘생겼었다...
정말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내면 내 손가락에 파란 물감이 묻어날 것만 같았다.
그는 내 스무살 적 광고론 시간강사였다.
딱 스무살때였다.
그는 한번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거기, 거기....그런데..
이름대신 내 별명을 불렀다.
그럴때면 난 정말 얼굴이 발개졌는데 그럼에도 그의 모습을 끝까지 응시했다.
난 그 남자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참 슬퍼보인다고 생각했다.
오후 5시에 시작한 기말고사.
일찍 올라오는 초겨울의 어둠덕택에 시험이 끝났을 때
주위는 벌써부터 어둑어둑해졌다.
그는 시험이 끝나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는 못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그를 쫒아 푸른 가로등이 점점이 비추던 교정을 달려나갔을 때
멀찍이 한 점처럼 바바리코트를 입은 그는 멀어지고 있었다.
헉헉 숨차게도 입김이 몽글몽글 품어져 나오던 그때 나는 무릎을 쥐고 헐떡이었는데
그는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붉은 장미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붉은 장미향에 취해 달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보랏빛 비가 쉴새없이 내리고 있었다.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참 많이도 아팠다.
병원신세를 진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열네살 때 장기간 입원을 했었다.
내 담당의사는 스물여덟이었고, 마르지 않은 체격에는 부드러움을 안고 있었고, 아주 친절했
다.
나는 딱 열네살이었다.
그는 마르디 마른 채 눈만 껌뻑이는 나에게 아주 친절히 대해줬다.
괜히 열네살짜리는 이해하지도 못하는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해댔는데, 그게 참 이상했는데,
어느 새 어린 나, 퇴원할 즈음엔
머리를 빗고 그를 맞이하는 법을 느끼게 되었다.
"너 평상복입은 모습 좀 보자!"
퇴원하는 날, 그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내 어깨를 잡고,
살짝 웃어주었다.
나는 그와 결혼하고 싶었었다..

토마스 만은 여름이면 이미 천궁은 가을을 준비하는 거라고 했다.
아직은 가을인데 아마 계절은 이미 겨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비온다...
겨울비....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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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son
2002.10.25 10:32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그 사람....음..역시 이 노래가 괜히 만들어 진것이 아니군요..
applebox
2002.10.28 10:56
kinoson 아직 멀었구나...원래 비가오면 빈대떡에 소주가 생각나는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내 나이에 여자가 없는건 어찌보면 비정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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