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5세대
1. 중국 제5세대의 배경
1965년 11월 문예 비평가 야오 웬웨인이 사회학자이며 경극 작가 우한이 쓴 <해서파관(海瑞罷官)>에 대하여 문예지 <문회보>에 ꡐ신편 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한다ꡑ라는 비평을 게재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중국 대륙은 ꡒ문화혁명ꡓ이라는 전례없는 회오리 바람 속에 휘말리게 된다. <해서파관>은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공연일 뿐이었으나 그 내용은 황제를 마오 쩌뚱으로, 해서를 펑 더화이로 바꾸어 볼 수 있는 풍자적 정치성이 있었다. 그러자 당시 등 샤오핑에게 권력을 양도하고 물러나 있던 마오 쩌뚱에게 지앙킹, 캉성 등이 이를 정치 문제시 하도록 호소하고, 군 중앙지 <해방군보>와 당기관지 <인민일보>에 이 문제를 게재하면서 확대시킨다. 이어 당 핵심인물들을 반사회주의자로 규탄하는 학생시위가 터지고 유혈 충돌이 발생하면서 결국 당정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고 극도의 혼란, 불안, 무질서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이에 마오 쩌뚱은 군의 개입을 결정하고 공산당 내의 반대파들을 숙청, 살해했으며, ꡐ인민으로부터 배운다ꡑ는 기치 아래 청소년들을 농촌과 공장으로 보내게 된다. 마오 쩌뚱 일가의 정권 회복 운동이며 청소년을 선동한 정풍 운동의 모양을 띄었던 이 ꡒ문화대혁명ꡓ은 혁명이념파의 이러한 외면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불신과 불안, 비탄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영화는 사상 유례없이 위축된다. 당시 모든 가치관의 척도가 되던 마오이즘에서 벗어나는 가치들은 일제히 ꡐ적ꡑ으로 간주되고 과거의 모든 영화는 비판되었다. 이 시기 영화들의 내러티브 구조는 참과 거짓, 생산과 파괴, 문화와 원시 등의 이항대립적인 단순도식의 틀을 가졌고 이로서 결국 영화는 리얼리즘의 본 궤도에서 벗어나 형식주의, 단순주의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파쇼적 상황하에서 새로운 영화 제작자들은 문화혁명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기존 영화에 대해 비판적 관심으로 반기를 들어야 했고 예술에 정치 권력이 간섭함으로서 중국영화는 그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맞게 된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살벌한 폐허 위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학생과 시민들은 결국 1976년 4월5일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일으켰고 같은 해 마오 쩌뚱의 사망은 중국에 있어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마련하였다. 사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국의 사회문화계는 말 그대로 초토화 상태였다. 영화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영화인들이 군대와 농촌으로 쫓겨나 있었고 그동안 제작된 영화도 연간7-8편의 마오 쩌뚱 사상을 선전하는 획일화된 영화가 전부였던 것이다. 문화혁명이 끝난 후 자유화 물결은 여러 분야에서 문혁을 청산하려는 움직임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동안 금지되었던 많은 영화들이 해금, 복권되었고, 1966년부터 1978년까지 문을 닫았던 베이징 영화 아카데미도 다시 수업을 재개하였으며, 문화혁명기에 현장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20대 초반의 학생들을 받아들여 전문적인 영화 인력의 충원을 시작했고 그동안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3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 대거 영화 산업에 유입되었다. 바로 이들, 문화혁명 기간 동안 청소년기를 보내고 문혁 이후 영화공부를 한 1982년 베이징 영화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이 바로 제 5세대의 근간을 이룬다.
2. 중국 제5세대의 경향
중국 제5세대 역시 과거 선배들의 영화관을 파괴하면서 등장했다. ꡒ영화는 젊은이의 예술이다. 영화에는 창조적인 힘이 필요하고 항상 새롭지 않으면 안된다ꡓ 라는 장 예모의 말은 이들 제5세대의 영화관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데, 이들은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역사, 현실, 인생에 대한 예술가의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과 이성에 대한 재발견의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부조리에 처한 인간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예술의 현대성을 추구했으며 영화 자체의 표현 방법을 개척하고 양식의 독자성을 추구했다.
사실 제5세대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들의 영화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전 세대와는 다른 ꡐ다양성ꡑ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ꡐ경험ꡑ이라는 측면에서 공통된 기본요소를 지니고 있다. 문화혁명 중에 하방(下放)되어 10년간 농촌이나 군대에서 노동을 했으며 문혁으로 비롯된 중국 현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특이한 경력의 세대인 것이다.
이들 제5세대의 사상적, 내용적 특징에 대해 영화 감독 우쯔녀우는 ꡒ첫째 제 5세대 영화는 국가보다 인민에 관심이 더 크고, 둘째 현재 생활의 리얼리티보다 민족 문화에 관심이 더 많으며, 셋째 사회비판이나 정치 문제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 피하고 운명, 종교 등 삶의 진실에 더 치중하고, 넷째 시청각 요소의 표현 영역에 더 관심을 가진다ꡓ고 요약하고 있다.
제 5세대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영상 언어의 형식적 특성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줄거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 이전 세대의 작품들에서는 스토리가 가장 중시되었다. 사건의 인과 관계 및 등장인물의 운명은 영화의 플롯 속에 적절히 적절히 배치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 5세대는 당시 중국 관객들에게 익숙했던 전통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이전까지의 중국 영화들과는 판이한 시각으로 다루었다. 예를 들어 첸 카이거의 <황토지(1984)>나 <해자왕(1987)> 등의 스토리를 기술하는 것는 어려운 일이다. 또한 스토리가 있다해도 그 스토리 자체는 영화 사상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요건이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형식적 특성은 쇼트와 쇼트의 연결에 있어 기교가 없다는 점과 불균형한 화면구성이다. 즉 제 5세대 감독들은 시간, 공간과 사건의 관련성을 유지하기 위해 화면과 화면을 조합하는 일이 적으며 구도에 있어서도 파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장 준자오의 <하나와 여덟>은 바로 이 화면의 균형을 깨뜨린 구도와 조형에 의해서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기도 한데, 이 영화는 이러한 화면의 조형에 의해 비틀리고 억압된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광선과 색채의 사용에 있어서도 그들은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제 5세대의 감독들은 영화의 구성요소로서의 색채에 관해 깊이 고려하고 있다. <황토지>의 황갈색, 황지엔신의 <흑포사건>의 붉은 색과 흰색, 장예모의 <붉은 수수밭>의 붉은 색 등은 영화 자체 내에서 모티브를 한층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내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제 5세대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특징들은 종전의 중국영화에서 놓쳤던 주제와 그것의 접근 방법을 신중히 찾으려는 노력이며, 이는 헐리우드와 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유롭고 독특한 영화에 대한 욕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5세대들은 찬사와 함께 여전히 한편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5세대가 비판을 받는 부분은 동시대의 삶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억누르고 있는 문화혁명의 그림자를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그 비판의 원인이다. 하지만 이들 제5세대가 사상의 자유로운 해방으로 인간성의 가치를 회복하고 영화를 정치적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그들의 전통에서 찾은 독특한 영상 미학으로 영상예술의 본질적 측면을 탐구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제5세대가 그들의 영화 속에서 이루어낸 커다란 성과인 것이다.
3. 대표적 감독과 작품들
1) 첸 카이거
첸 카이거는 중국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대비 또는 투영하면서 중국인의 과거와 현재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특히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면서 우화적, 직관적, 철학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ꡐ스스로가 중국인이기에 중국의 전통을 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ꡑ는 의지를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문화 혁명과 현재의 개방 정책에 이르는 자신의 경험들을 특정의 이데올로기로 구속지우려 하지 않는다. 그는 상징을 이용해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지만, 단지 그가 경험한 시대적 변화를 영화 속에 진실하게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초기작품 <황토지><대열병><해자왕>이 자신의 실체험을 근거로 한 지난 과거에 대한 반성을 뜻하는 작품이었다면 4년여의 공백 기간을 가진 이후의 작품인 <현 위의 인생>이나 <패왕별희>는 현재의 보편적 중국인에 대한 잊혀지고 지워져 버린 주체성 회복을 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표현에 있어서 과거의 상징은 극의 구조에 더욱 의존한다.
2) 장 예모
<황토지> <대열병> <노정> 등 대표적인 제5세대 영화들에서 촬영감독을 맡아 충격적인 영상미학을 보여주었던 장예모는 <붉은 수수밭>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그는 특히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분출하며 여성의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 여성에 대한 관점은 제5세대 중 장예모가 가장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여성 이미지는 힘있고 독자적이고 강한 존재로 부각된다. 그의 영상은 강렬한 색채와 자연광 사용으로 뛰어난 사실성과 극적 효과를 주며 제5세대 중 가장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실적 이야기 구성을 보여준다. <국두> <홍등> <귀주이야기> 등 장예모 작품의 내러티브 구조는 중국적이기 보다는 서구적 취향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3) 티엔 주앙주앙
티엔 주앙주앙은 82년 졸업 후 <홍가(紅家)> <9월> 등의 작품을 공동 연출하고 독립 연출 첫 작품인 <사냥터에서>를 발표하여 대담한 다큐멘터리 기법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요리스 이벤스에게 절찬을 받았다. 역시 다큐멘터리 기법의 <말도둑>은 티벳 사람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주목을 받은 <푸른 연>은 관찰자적인 구성과 유머, 아이러니 등으로 중국역사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인간의 내면, 인간의 정신 세계에 특히 관심을 둔 그의 영화들은 제5세대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내용적 특징을 갖는다.
[참고 문헌]
1. 아시아 영화의 이해(주윤탁, 김지석 편집) - 제3문학사
2. 아시아 영화를 다시 읽는다(김지석) - 한울
3. 세계 영화 기행1.2 (조재홍 외) - 거름
4. 영화론의 전개와 제3의 영화(김정옥 외) - 시각과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