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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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기석이는..

hal9000 hal9000
2001년 04월 26일 21시 11분 34초 1375 3 9

우리 시대라는 mbc의 새 프로그램에서
기석이라는 아이에 대한 얘기를 알았다.
1998년 12월 25일에 태어났던 유아에 대한 충격적인 얘기였다.

여수의 어느 마을에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내외.
그리고 더 어렸을 적의 기석이가
돈이 없어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빈집에 들어와 살게된다.

그렇게 잠시 지내다가
아들 내외는 가난을 이겨보자고 제주도로
돈을 벌기위해 행상을 하러 떠난다.

그렇게해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남는 아기 기석이.
할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내고
기석이는 옆에서 반찬 주워먹고 한다.

기석이한테는 강아지 두마리와 고양이 한마리가 전부였다.

할아버지는 기석이가 성가셔서 외출할때는
방에 두고 문을 잠그고 나간다.
화면에 보여진 방은 방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쓰레기들과 누더기. 만들기도 힘든 그런 이상한 분위기였다.
그 방에서 하루 종일 울다가 먹을거 있으면 집어먹고 했을 기석이.

마을 주민들은
기석이는 참 예쁘게 생겼다고 한다.
어쩌다가 동네에 할아버지랑 같이 나와서 어른들이 쓰다듬어 주면
안기고
뽀뽀하고
사람하고 정이 그리워서
그들에게 안기고 웃고 그랬다고 한다.
말은 하지못했단다.
말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으니.

그렇게 몇달을 살았을테고 몇달을 더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 기석이네 집은 불우이웃이라는 이름으로
나라에서 얼마의 돈이 나오게 됐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나온 돈으로
제주도 비행기표를 사가지고 온다.
기석이를 제주도로 보내야 겠다고.
그건 옳은 일이었다.
기석이를 그렇게 두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기석이의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녔다.
얼마 후에 제주도 간다고. 기석이를 데려다 줄거라며.
기석이는 그렇게 2월 27일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로 되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마을에서는 기석이와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도로 떠났구나 하고 마을사람들은 이해를 했다.

하지만 기석이의 할아버지는
제주도로 가기로 했던 2월 27일 그날 새벽에
술로 찌든 몸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
기석이는 3살이고 아무것도 모른다.
잠자던 모양으로 그대로 일어나지 않는 할아버지를
얼마나 많이 불렀겠는가.
TV에 나오는 마을 촌로들은 밤낮으로 우는 기석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얘기들한다. 왜 듣고만 있었느냐.
할아버지만 제주도 간줄 알았다고 했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나름데로 다른 이유가 있었겠다하는 얘기들을 한다.

딱 나흘만에
기석이는 할아버지를 부르고 목이 터져라 울다가
그 이상한, 무서운 모양의 방에서
굶어서
죽었다.

기석이에게 마지막 나흘동안
4번 반복된 밤은 얼마나 무서웠을 것이며
3살짜리가 버티기 힘들만큼의 육체적 고통이 있었을까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다만 말을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못하고
나흘간 가만히 기석이 옆에서 움직이지 않았을
할아버지와
나흘째 아침에 울 힘도 없을만큼 모두 다 짜낸 울음을 듣고도
한번 찾아와 방문 한번 열어주지 못했던
지금의 이웃들을 원망하느라 괴롭지 않았으면...

기석이는
아무래도 그들을 원망했었는지,
아니면 배가 너무 고팠었는지,
아니면 너무 무서웠었는지,
갑자기 기억이 났었을 엄마얼굴이 보고 싶었는지.
그 세살박이가
눈도 못감고
할아버지 옆에서
뒹굴다가
그렇게 죽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여동생으로부터 20일 후에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기석이가 너무나 불쌍하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yethink
2001.04.27 09:05
기석이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pinkmail
2001.04.27 12:26
이순간...왜 .. 나도 죄책감이 드는 걸까요...
videorental
2001.04.28 12:35
다 팔자려니~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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