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대본, 당일 대본 리딩 하는 걸 보면, 그 배우의 기본기가 나옵니다. 진. 짜. 실. 력.
특히 드라마 오디션은 지정 연기만 보고 자유연기를 안 보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오디션에서 지정 대본을 주는 이유가 뭘까요?
'배우가 대본(인물, 씬)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함이죠.
그래서 대본 분석은 기본입니다. 이 기본부터 안 되면 사실상 더 볼 필요도 없습니다.
시간, 공간, 목표, 관계 등등... 잘 알려진 기본 분석법들은 연기를 제대로 배웠다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런 분석들을 아무리 해도 막히는 것 같다면 오늘 칼럼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대본 분석' 이 3가지 놓치면 소용없습니다.
1) 캐릭터 심지 마라.
(기실 수업 장면- 모의 오디션)
“얘는 나쁜 살인자야” “얘는 깐깐한 캐릭터야”
살인자를 맡으면, 대부분 '사람을 죽인 나쁜 놈'으로 확정 짓고, 그걸 열심히 표현하려고 합니다.
회사에서 후배들에게 잔소리하는 직장 상사를 맡으면, “깐깐한 히스테리 상사”로 확정 짓고 그걸 표현하려 하죠.
하지만 그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는 적어도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살인자 역을 맡았다면, 이 인물이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파야 합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것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까.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서,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이 “살인자” "나빠"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깐깐한 히스테리 상사 역을 맡았다면, 이 사람이 회사에서 그렇게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죠.
2) 인물을 '판단'하지 마라.
(기실 수업 장면- 모의 오디션)
1번과 연결된 내용입니다. 오늘 내용 다 까먹어도 이것만 기억하세요.
“배우는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인물의 편에 서야 한다.”
“저는 이 인물이 진짜 이해가 안 돼요. 왜 이리 나약해요? 저라면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나쁜 행동을 해요?”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판단을 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배우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며 인물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 배역을 맡았다면, 오로지 그 인물의 입장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배우는 공감을 넘어 '표현'까지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판단’이 들어가면 눈이 가려질 수밖에요.
살인자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를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걸 마냥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깐깐한 직장 상사가 자신의 일만큼은 실수 없이 해내고 싶은 성실한 직원일 수도 있습니다. 근데 후배들이 일을 자꾸 실수하니 예민해지는 것일 수도 있고요.
도덕적 잣대는 시청자의 몫이지, 배우의 몫이 아닙니다.
3) 대본에서 모르고 하는 말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기실 수업 장면- 모의 오디션)
인물이 하는 말·행동에 대해 모르는 게 있으면 안 됩니다. 단어 하나에도 그 인물의 서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그냥 넘기면 안 됩니다. 대본에 명시되어 있는 것은 기본, 거기에 대본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인물의 역사를 유추 혹은 상상해서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 인물을 ‘판단’이 아닌 오로지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가족도 오로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가요? 반대로 누군가 당신을 오로지 이해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요? 인물도 당신과 똑같이 여러 경험을 하고 긴 인생을 살아온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대본은 긴 인생 중 한 부분일 뿐이고요. 어렵고 오래 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인물을 이해하는데 끝이 있다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건방진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쉽게 포기하지 말고, 파고 또 파세요. 오늘 칼럼 내용을 전제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분석법들을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기실 - 분석 수업 후기>
(기실 수업 - 인물, 씬 분석)
1.
‘분석법’에 대해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분석이 중요하다’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분석을 해야 하고, 왜 그렇게 분석이 중요한지, 분석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어떤지를 명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분석 덕분에 인물을 대하는 관점이 확실히 달라졌고 분석과 연기가 이렇게 재밌는 건지 몰랐습니다. (7기 졸업배우 박00)
2.
코치님과 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놀라는데 코치님은 정말 우리와 애초에 대본을 대하는 자세와 깊이부터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인물의 드러난 사건뿐만 아니라 그 사건 뒤에 인물이 혼자 있는 시간을 상상해 보고 그때 느꼈을 것들을 함께 느끼고 마음 안에 다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분석은 정말 끝이 없구나.. 그냥 내가 끝내는 순간 분석이 끝나는구나.. 내가 그냥 분석을 그만하고 싶었던 것뿐이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대본을 볼 때도 자꾸 사소한 것에 빠져 말의 의미를 놓치고 본질을 놓치는 것을 캐치해주시고 잡아주실 때마다 부끄러웠다. 우리는 겉핥기 식으로 표현하려 했었고 다양하게 적용하여 연습하는 방식도 결국 형식에 얽매여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인물은 파지 않고 말의 속도, 소리 높낮이, 리액션 표정 등 보여주기만 급급했다면 코치님은 정말 대사 그 자체, 인물 그 자체에만 집중하셨고 관객에게 보였을 때의 그림을 그리되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을 계속 집어주셨다. 내가 대사를 표현할 때 가지고 있던 쪼가 있는데 그런 것들도 잡아주시면서 지금부터 미리 그런 것들을 빼고 담백하게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고치기 힘들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순간 정말 현실이 실감되면서 '헉!'하면서 진심으로 가슴이 철렁하면서 확 와닿았다. (7기 수련배우 박00)
[기실 1년 과정 - 연기 교육 커리큘럼]
https://movie119.modoo.at/?link=8ac3lfrm
<기실 칼럼>
1. '오디션장에서 긴장을 이기기 위한' 3가지 연습 방법.
https://blog.naver.com/rmrdptnf/222289677383
2. 전문가한테 가보지도 않고, 배우를 포기하는 분들은 없기를.
https://blog.naver.com/rmrdptnf/2223353566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