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강의 영화 커뮤니티인 필커에서도 공부방 메뉴를 보면
'연기'부문이 없슴미다.
다른 영화 커뮤니티 등을 둘러봐도 회원들 중에서 꼭 올라오는 말들이
'연기자는 영화인 아녀? 아 쓰바...스텝만 영화인이냐?'라구 목소리를 높이시는 분덜이 계신디요 ^^;;;;;;;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 중에 한분이 운영하시는 까페에서 퍼온 글을 하나씩 올릴 계획을 하다가
'제일 먼저 어떤 분야를 올릴끄나' 고민 끝에 연기에 대한 글을 먼저 게재합니다요.
쬐깐이라도 돔이 되셨으면 합니다요.
좋은 감독이나 연출자는 어떤 방식으로 배우들을 다루어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 답을 찾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어떤 방식으로 배우들을 다루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연출을 할 수 있을까에 관한 글입니다.
영상문화정보 20호에 게제된 글입니다
임왕태 Lim Wangtae - 동아방송대학 연극영화과 교수
영화제작 과정에서 테크놀로지의 중요성이 점점 증대되는 요즘이지만 한 편의 영화를 창작해내는 동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작업에 관여하는 다양한 배경의 인적 구성원일 것이다. 그들 간에 조화로운 공동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영화는 성공하겠지만 구성원 간의 이런 저런 불화로 얼룩진 영화는 실패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영화를 연출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한 인간관계는 연기자와의 관계일 것이다. 결국 관객이 극장에서 몰입하게 되는 것은 연기자들의 연기이고 이것을 조율해 내는 것은 연출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연기자와 연출자가 서로 이상적인 협동관계를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상호신뢰”이다. 연출자는 연기자의 연기능력을 믿고 연기자는 연출자의 조율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럼 연출자의 입장에서 연기자로부터 믿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쉽게 말하면 그들에게 자신이 “적”이 아닌 “아군”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매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많은 촬영 크루가 모인 가운데서 큰 소리로 연기자를 나무라듯 연기지시를 보내는 연출자, 어려운 연기에 직면해서 고생하는 연기자를 도와주기는커녕 무능한 연기자라며 많은 사람 앞에서 면박을 주는 연출자를 자신의 “아군”으로 여길 연기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반면 복잡한 감정을 표출해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기자를 도와서 보다 더 정확한 연기를 해내도록 여러모로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연출자는 그들에게 분명 소중한 “아군”임에 틀림없다.
많은 유명 영화감독들은 이구동성으로 “영화연출의 90%는 좋은 연기자를 캐스팅하는 것과 그 연기자로부터 최고의 연기를 뽑아내는 것”이라고 고백하며 이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배우의 연기를 연출하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연기란 기계를 조작하는 것처럼 직관적이지 않고 오히려 끝없이 미묘하면서도 오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촬영 현장에서 연기자를 도와 좋은 연기를 뽑아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실질적인 방법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첫 번째 테이크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뽑아낸다
장래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편견 중의 하나는 촬영 중 많은 테이크를 반복해서 찍는 것이 대가의 덕목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끝없이 “다시 갑시다”를 연발하는 연출자는 연기자들에게는 여간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런 연출자의 태도에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절대 타협이나 포기를 하지 않는 집념일 것이다. 하지만 연기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연기를 수십 번 계속 반복해서 찍는 일은 “연기자 죽이기” 게임이나 다름없다. 짧게는 몇십 초 길어야 몇 분에 지나지 않는 연기를 계속 반복하면서 어떻게 연기가 매번 더 나아질 수 있을지 필자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같은 것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스크린 액팅의 정수인 자연스러움은 사라지고 기계적인 클리셰 연기만 나올 뿐이다. 더구나 연기자가 음식물을 먹으면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 음식으로 가득한 위장으로 부담스러운 상태에서 연기한 23번째 테이크가 어떻게 4번째 테이크보다 더 좋을 수 있을지 정말로 의심스럽다.
이러한 경우 많은 연기자들이 특히 불만스러워 하는 점은 연출자가 특별한 다른 지시 없이 “그냥” 다시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바로 전 테이크에 어떤 아쉬움이 있어서 그 점을 어떻게 고쳐 다시 하기를 원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또 한 번 연기를 혼자 해내야 하는 연기자의 심정은 얼마나 외로울까. 이때 연기자들은 연출자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당신 정말 좋은 연기를 구분해내는 능력은 가지고 있느냐고.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가능한 많이 찍어 놓고 뒤에 편집실에서 혹시 좋은 것이 있나 차분히 골라보겠다는 비겁한 심보는 아니냐고 말이다. 만약 연출자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면 연기자들은 또다시 묻고 싶어할 것이다. 그럼 당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내게 전달해 줄 수 있는 효율적인 의사소통 능력은 가지고 있느냐고 말이다. 너무나 많은 연출자들은 연기자에게 연기에 구체적인 도움이 될 지시를 하는 대신 뜬구름 잡는 듯한 추상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카메라 뒤로 돌아가 버린다.
오래 전 어느 유명 감독의 촬영현장에서 보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는 촬영 전 가능한 많은 시간 연기자와 토론을 하고 여러 번의 리허설을 한다. 그리고 일단 카메라가 돌아가면 바로 첫 테이크의 신선하고 자연스러움을 잡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데, 안되더라도 3∼4 테이크를 넘기기 전에 정확한 연출지시를 통해 연기자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완전히 뽑아내었다. 그는 자연스러움을 미리 깨지 않기 위해서 첫 테이크 전에 하는 다양한 카메라 리허설 등에서는 연기자가 감정의 50%만 가지고 연기에 임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2) 비디오 모니터 옆이 아닌 카메라 옆에서 연기를 판단한다
가끔 보게 되는 영화제작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대다수의 감독들이 촬영 도중 모니터 앞에 주로 앉아 있다는 점이다. 십 몇 인치를 넘기기 어려운 작은 사이즈의 현장 모니터로 어떻게 연기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카메라 바로 옆에서면 실제 인물이 라이브로 공연하는 것이 바로 앞에 있는데 왜 작은 모니터에 집착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니터로 볼 때 괜찮았던 연기가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 펼쳐졌을 때 큰 문제점을 노출하면 어떡할 것인가. 촬영도중 연출자의 위치는 카메라 바로 옆이다. 거기서 연기자들의 민감한 감정표현을 하나하나 정확히 잡아내야만 연기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다.
더 흥미있는 점은 매 테이크가 끝나자마자 연기자들 또한 쪼르르 모니터로 달려가서 자신들의 연기를 확인해 본다는 것이다. 이점도 여간 위태롭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매 테이크마다 자신의 연기를 일일이 모니터하는 연기자의 연기는 다양한 자의식으로 가득 찰 것이고, 그는 바로 다음 테이크 때는 이렇게 연기하겠다고 미리 계획을 할 것인데 이러한 의식적인 계획은 스크린 액팅에 독이 될 것이다. 모 유명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자신의 연기자들에게 절대 비디오 모니터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며, 연기자들에게 자신의 연기를 보는 감식안을 믿어 줄 것을 부탁했는데, 이것이 자신들을 위한 결정임을 이해하는 연기자들은 전혀 섭섭함 없이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에 더욱 몰입하는 것을 보았던 걸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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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서적인 것을 표출하는 데 신체적인 자극이 도움이 된다
이것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연출자들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나면 연출자들은 자신의 연기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우연히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레인메이커”라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찍은 메이킹무비를 보았는데, 그가 연기자로부터 자연스런 연기를 얻어내고자 실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카메라가 돌아감과 동시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연기를 해내는 것은 아무리 숙련된 연기자에게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클레어 데인즈가 병원에서 우는 모습을 촬영하기에 앞서 코폴라는 그 영화의 조역 중에 체격이 가장 우람하고 생김새도 무서운 배우를 세트의 한쪽 구석으로 따로 불러내서 무엇인가 지시를 내린다. 감독은 그에게 조금 있다가 데인즈에게 가서 아주 무섭고도 호되게 그녀를 야단치고 나무라라고 주문을 하고는 카메라 옆으로 돌아간다. 모든 촬영준비가 완벽하게 끝나자 그 남자 배우가 데인즈 옆에 가더니 우렁찬 소리로 갖은 호통을 치기 시작하고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답변을 한다. 그는 소리만으로는 모자랐는지 그녀가 앉은 테이블을 손으로 쾅 내려치고 그 옆의 의자까지 힘껏 걷어찬다. 이러기를 수십 초 드디어 여자 연기자가 흑흑 눈물을 쏟기 시작하고 이 순간 감독은 “조용히 해주세요. 카메라, 액션!”을 외친다.
이같은 즉흥연기는 연기에 어려움을 겪는 연기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울어야 하는 상황인지를 연기자 또한 잘 알고 있었음에도 쉽게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그 슬픈 정서상태를 콕 찔러서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는 어떤 신체적 자극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이며, 그 자극의 역할을 코폴라 감독은 덩치 큰 연기자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코폴라는 다른 신에서 맷 데이먼에게 연기지시를 하면서 등뒤에 주먹만한 돌을 매달 것을 주문했다. 데이먼은 그와 적대관계에 있는 변호사들과 담판을 짓기 위해 밤새도록 고속버스를 타고 왔기 때문에 엄청 피곤한 상태이며, 많은 고참 변호사들이 있는 회의장에 들어가면서 아주 긴장한 상태를 연기해야 한다. 코폴라는 데이먼에게 “피곤하면서도 긴장하며 들어가 달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연기지시를 하지 않는다. 그 신에서의 자신의 심리상태는 데이먼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감독은 연기자의 등에 돌을 매달라고 했는데 그로 인해 초래되는 은근한 불편함이 자연스럽게 피곤하면서도 긴장된 연기를 만들어 내도록 기대했던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것은 데이먼이었다. 그가 조약돌 서너 개를 구해 자신의 왼쪽 구두 안에 넣고 구두를 신는 것이 아닌가. 등과 발을 통해 생기는 신체적 자극이 피곤함과 긴장감이라는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연기자에게 “당신은 지금 피곤하면서도 긴장되고,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등의 추상적인 지시를 하는 연출자보다는 “등과 신발에 돌을 한 번 넣어볼까요”라는 실질적인 제안을 하는 연출자를 연기자는 더 좋아한다는 점을 연출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4) 센스 메모리(Sense Memory)를 연기자에게 제안한다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폴 뉴먼 등 메소드 연기법으로 훈련이 된 연기자들이 많이 의존하는 것이 인간의 오감 중 한 가지의 도움으로 특정한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다.
수년 전 즐겨 보았던 TV 시리즈 중에 “Inside the Actors Studio”라는 대담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한 번은 손님으로 제시카 랭이 나온 적이 있었다. 사회자는 그녀에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연극공연에서 블랑슈 역할을 하면서 왜 특정 신에서는 꼭 한 손에 손수건을 들고 그것을 수시로 입에 가져가면서 연기를 했는지 물었다. 그녀의 답변은 그녀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들여다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교편을 잡고 있던 동안 학생들에게 이성적으로 접근해 물의를 일으켜 동생 집에 와 있는 블랑슈는 문제의 그 신에서 신문 값을 받으러 온 소년에게 다시 욕구를 느껴 그에게 키스를 하고 만다. 이 신을 연기하며 랭의 고민은 자신은 전혀 갖고 있지 않는 어린 소년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연기해내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어린 소녀였을 때 남자친구로부터 받았던 샤넬 향수를 사서 손수건에 뿌려 그것을 맡으며 신을 연기했던 것이다. 그 향수는 이제 중년인 그녀를 풋사랑에 빠졌던 10대 중반의 소녀로 돌려보내는 도구역할을 했던 것이다.
후각이 아닌 청각도 가능하다.
예전의 남자 친구로부터 향수가 아닌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곡을 선물 받았다면 당신은 10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그 친구와의 연애감정을 생생하게 되살리게 될 것이다.
5) 짓거리(Business, Physical Task)를 한 가지 마련해 준다
처음엔 전혀 긴장해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카메라가 돌아가고 슬레이트의 “딱!” 소리가 남과 동시에 모든 대사를 잊어버리고 멍해지는 연기자를 가끔 볼 수 있다. 지나친 긴장 탓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경우 연기자에게 신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무언가 “할 일(짓거리)”을 만들어 주면 큰 도움이 된다. 새벽 늦게 술에 만취해 귀가하는 남편을 부엌에서 긴 장광설로 혼을 내야 하는 연기자에게 그냥 의자에 앉아서, 혹은 맨손으로 서서 연기하게 하지 말고 홧김에 냉장고에 있는 캔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연기하도록 부탁한다. 그녀는 연기를 하면서 어느 순간 냉장고로 걸어갈 수도 있으며, 남편을 꾸짖다가 캔 맥주를 딸 수도 있고, 대사 도중 숨이 차면 자연스럽게 입에 묻은 맥주 거품을 손으로 훔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신체적인 임무를 이행하면서 그 연기자는 지나친 긴장과 집중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면서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Sweet Smell of Success”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감독 알렉산더 맥켄드릭은 이 작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토니 커티스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로 칭찬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기 스스로 필요할 때마다 짓거리를 만들어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영화의 한 신을 촬영하면서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에 자신의 양복 윗도리를 팔 소매의 안쪽이 바깥으로 나오도록 벗어 의자에 미리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신의 지나치게 경직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동안 옷소매를 밖으로 꺼내고 옷을 걸치는 신체적인 임무가 자신의 연기에 도움이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6) 진지하게 경청하고 반응하도록 부탁한다
연극공연을 보면서 관객의 시선은 십중팔구 대사를 하는 사람에게 집중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컴컴한 영화관 안에서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는 행위에 열중인 영화관객들은, 대사를 하는 연기자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키기보다는 그 대사를 듣는 상대 연기자가 마음 속으로 어떤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훔쳐볼 수 있기를 더 원한다.
그래서 스크린 액팅의 정수는 잘 경청하고 그에 반응하는 것이다.
대사를 하는 주인공을 촬영한 다음 리버스 쇼트로 그 말을 듣는 조역을 찍게 되는 경우, 조역배우가 자기는 대사가 없다고 아무 반응 없이 멍하게 듣는 연기만 한다면 편집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관객의 욕구에 부응하고자 편집자는 말하는 주인공에게서 어느 순간 그 말을 듣고 있는 조역에게로 관객의 시선을 가져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가 아무런 반응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의 얼굴을 편집에 끼워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진지하게 경청하면서 풍부한 반응 연기를 해낸 조역에게는 처음 감독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비중이 주어질 것이고 이런 경우를 우리는 조역이 주연의 “신을 훔쳤다(steal the scene)”고 표현한다.
반응 연기가 어려운 연기자들에게 촬영 직전 다음과 같은 리허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비록 대본에 자신의 대사는 없지만 리허설을 하는 동안은 마음대로 상대방의 대사에 말로든 행동으로든 자유롭게 반응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상대의 말에 “웃기고 있네”라고 말하며 상대방의 머리를 한 번 톡 때려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 실제 촬영에 들어가서는 리허설 도중 했던 말과 행동을 하되 마음 속으로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답답해서 연기자의 얼굴에 미세한 눈썹의 움직임이건, 빠른 눈 깜빡임이건, 입술에 자연스러운 경련이건 아주 적극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반응 연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7) 연기의 컨티뉴어티를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한다
스크린 액팅의 가장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다양한 앵글의 촬영을 위해 한 가지 연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같은 공연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면에서 찍을 때는 “담배연기를 뿜고 나서 대사”를 했는데, 조명 셋업으로 인해 1시간 후에 진행된 옆에서 찍는 장면에서는 “대사를 하고 나서 담배연기”를 뿜는다면 편집할 때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개성있는 연기자 마이클 케인은 스크린 액팅에 관한 자신의 저서에서 자신은 이러한 컨티뉴어티 문제가 복잡해서 여간해서는 연기 도중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꼭 그러한 연기가 요구되는 경우는 촬영 전날 호텔에서 밤새도록 담배를 피우며 대사를 하는 연기를 철저히 리허설 한다고 한다. 그래서 촬영현장에서 그 연기를 몇 번 요구받더라도 항상 같은 연기를 해낼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연기는 외워서 할 수 있다지만 격한 감정을 쏟아내는 연기는 어떻게 매번 같은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제인 캠피언 감독의 “여인의 초상” 메이킹 무비에서는 니콜 키드먼이 연기 컨티뉴어티를 위해 무섭게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상당 부분이 키드먼이 우는 장면인데 영화에 편집된 분량이 그만큼이라면 촬영현장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울었을까? 그녀는 테이크마다 정확히 같은 정도의 울음을 보여주기 위해 테이크와 테이크 사이에도 계속 울고 있었다. 분장사가 분장을 고쳐주는 동안에도 눈물을 펑펑 쏟았고 캠피언과 다음 신을 토론하는 과정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그녀의 감동적인 노력에 코끝이 찡하면서 머리가 쭈뼛 솟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위에 언급한 몇 가지 방법이 연출자로 하여금 연기자와 신뢰감을 형성해서, 그들로부터 보다 훌륭한 연기를 뽑아내 영화의 완성도가 배가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배우연기 연출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모으면서 수시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상념은 우리 영화계의 연기자 가뭄에 대한 것이었다. 뉴욕 맨하탄의 식당에서 서빙하는 그 많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연기자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이 말의 사실유무를 떠나서 뉴욕에는 정말 많은 연기자들이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다. 오디션을 위해 그들의 이력서를 수백 통 받아보았을 때 그들이 연예계의 환상에 젖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아니라 대학, 대학원, 각종 연기 워크숍 등으로 연기훈련을 수년씩 지속적으로 해온, 언제든 대성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그 기억과 함께 우리 영화계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
미스코리아나 슈퍼모델에 입상하는 것이 연기자가 되는 등용문인 것으로 인식되는 우리 현실… 좋은 시나리오와 그것을 영화화할 제작비가 있어도 극소수의 스타 배우 중 한두 사람을 주연으로 캐스팅하지 못해 끝없이 표류되는 프로젝트… 배우기근을 걱정하면서도 아무런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 등. 좋은 영화배우는 오랜 기간 동안 치밀한 훈련으로 탄생한다고 믿는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전문적인 스크린 액팅을 가르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출범시켜야만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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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의 기사입니다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
“6개월째 캐스팅하고 있는데, 미치겠습니다. 배우 코빼기라도 봐야 애걸이라도 해보지….”
“6개월? 난 2년째야 이 사람아…. 내가 이 정돈데 자네들은 오죽하겠나.”
몇몇 제작자와 감독이 만난 자리에서 오간 대화 한 토막이다.
캐스팅의 고충을 토로하는 푸념 끝에, 20년 가까운 경력에 영화계의 맏형 노릇을 하는 한 제작자(몇년간 꾸준하게 작품을 만들고 있는 그의 나이는 쉰을 훌쩍 넘겼다)는 자신도 일부 매니저들로부터 ‘수모’를 당한다며 후배들을 위로했다.
“한국영화는 배우들이 다 만들어, 몰랐어?”
이어진 추임새에 모두 박장대소했지만 그냥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이날 도마에 오른 배우와 매니저가 ‘어떻게 한국영화를 만드는지’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주연 물망에 오른 톱스타들은 시나리오 수정을 요구한다. 이런 장면은 빼고, 이런 이미지를 좀 넣어달라거나, 심지어 다른 배역의 역할까지 고치라고 요구하는 배우도 있다
② 상대 배역을 누구로 해달라, 누구는 안 된다는 주문을 하며 사실상 주요 배역의 캐스팅을 쥐락펴락한다.
③ 톱스타들은 아예 투자사와 배급사도 특정 회사를 지목해서 제휴하라고 요구한다. 특히 배급사는 특정 회사의 배급 여부가 출연 전제조건이 되기도 한다.
④ 제작발표회 날짜, 크랭크인 날짜 등은 물론 전체 촬영일정도 주연 톱스타의 지극히 사적인 사정까지 감안해서 조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⑤ 일부 톱스타의 경우 자신의 개인 활동을 고려해 개봉 일정을 당기거나 늦춰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⑥ 몇달 동안 시나리오도 제대로 읽지 않고 출연 여부에 대한 대답을 미루다가 결국 거절하거나, 수락한 뒤에는 언제까지 촬영을 끝내달라고 닦달한다.
⑦ 일부 톱스타의 경우이지만 고액 출연료를 다 받고 흥행수익에 대한 인센티브나 지분까지 요구한다. 인센티브가 결과에 대해 보장받는 일종의 투자 개념이라면 일시불로 받는 출연료를 낮추든지, 출연료를 많이 받으면 인센티브를 달지 않아야 한다. 작품의 성격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절대액을 요구하거나, ‘누구보다는 더 받아야 한다’는 따위의 단세포적인 주장을 한다
⑧ 일부 톱스타들에게 시나리오는 출연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시나리오를 잘 읽지 않고, 탐독하지도 않는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다음 출연작을 내정하고 특정 시나리오를 ‘기다린다’고 대답하곤 한다. 일부는 실제로 너무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와서 읽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배우들도 있지만 심지어 몇달 동안 들춰보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⑨ 출연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감독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라도 들어보겠다는 배우가 드물다. 또 배우와 제작사, 배우와 작품의 소통을 주선하고 조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차단하기에 급급한 일부 매니저들의 관행은 일종의 횡포다.
물론 위의 사례들은 일부 배우들에 대한 제작자들의 일방적인 험담을 옮긴 것이어서 일반화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공식적이지 않다고 해도 배우와 매니저가 고유 역할을 넘어서서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사실상 행사하는 꼴이 된다면, 이에 따르는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하게 된다. 바야흐로 영화 제작사가 1천개가 넘고, 기획중인 영화가 줄잡아 수백편에 이르는 상황에서 캐스팅 경쟁은 날로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톱스타의 권리, 기능과 역할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이제 톱스타들이 영화 제작 주체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룰도 함께 만들어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