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슨 단편 소설인가, 에세인가, 아님 일기장인가,
고인이 되신 작가분에겐 명복을 빈다.
고인에 대한 미슷헤리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름 상황을 재구성해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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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마(麻)자에 참새 작(雀)
테이블 위에서 마작 패를 섞는 소리가 삼밭에서 참새 떼가 지저귀는 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동남서북으로 진행이 되는 마작은 4명이 모여야지만 완성되는 게임이다.
촬영팀이 두 명, 제작파트 한명, 그리고 시나리오 작업도 하면서 가끔씩 현장 조명팀으로 뛰는 나까지 포함해서,
마작 모임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선 마작을 하는 인구가 얼마 없는데 마작을 즐기는 인구들 중에서도 왜 옛날 충무로 촬영팀이나 조명팀 출신이 많은 줄 아냐?"
상대방이 버린 통수패 6을, 펑~을 외치며 그가 주절거린다.
"옛날에 충무로 촬영기사들이 일본영화 절라리 베끼면서 유학파 행세할 때 마작을 배워왔거든...근데 꼭 4명이 모여야지만 게임을 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촬영팀이나 조명팀 조수들에게 마작을 가르친게 지금까지 이어져서 그런 거여~"
'멘젠을 유지해야 된다. 멘젠에 당요...그럼 점수가..'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점수를 계산하고 있을 때
세 번째 놈이 패를 하나 쓰무하고 삭수패 2를 버린다.
'혹시 칠대자를 만들려고 하는 건가?'
다음 차례가 깡을 외친다...깡...깡이라
깡으로 버텼다.
5타수 무안타.
계약금을 받아도 죽지 않을 만큼만 나온다.
이제 보험료 낼 돈도 없다.
더 이상 손 벌릴 데도 없다.
도시 가스 중단 예고 통지서와 단전 단수가 될 것이라는 독촉장 위로 머리카락이 떨어진다.
나중에 남겨진 사람들 중 누구는...어쩌면 아직도 방바닥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내 머리카락을 보거나,
쓸쓸히 남아있을 전기장판 위의 물수건을 바라보고 눈물을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압이 상승하면서 급격하게 손이 떨린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촬영 훠스트(1st)가 묻는다.
"X파리 그 영화에서 조명기사를 했던 그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아~ X원이?"
"엉! 그 왜 생활고로 자살한 친구..."
"참 안됐어...영화는 떴는데 조명감독은 자살이라...세상 참, (수정과에) 잣 같지 않냐?"
"그 친구 영화일 없을 땐 보험 알바 했담서? 근데 친구 놈한테 3000만원인가 사기 당하고 돈은 안 나오고 이래저래 힘들었을 거여~"
"근데 방자X에서 생활고로 숙소에서 자살했다는 연출부는 누구야?"
"몰러~그냥 여자라고만 아는데...스크립터였나? 조감독이었나?"
따르르륵- 짤그,락 짝짝 패를 섞으며
지금은 죽고 없는 영화인들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그 중엔 특전사를 나와 스턴트맨을 하다가 죽은 선배랑
여자의 몸으로 빡세고 힘든 조명팀 일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돌연사를 했던 윤X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13개의 패를 똑바로 세우며 떠들어대는 만년 촬영 훠스트
"예전에 EBS에서 하던 ‘익스트림 잡’이라는 방송에서 가장 빡센 개 쓰리디(3D) 업종 순위를 매겼는데…1위가 게잡이 어선이고, 2위가 뭔 줄 아냐?"
난 만수패 1을 버리면서 물어봤다.
"뭔데?"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게 개 쓰리디(3D)업종 2위가 영화인이였어!"
"흠...그래서 요즘 영화판이 쓰리디(3D)가 대센가?"
나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 친구들이 웃는다.
킬킬 거리며 웃지만 그리 즐거운 웃음 같진 않아보였다.
나도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도 싶었다.
시나리오를 들고 충무로 한 복판에서 계약서를 준수하라,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라,며
분신이라도 할까,라는 어이없는 상상에 나도 모르게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중도금과 잔금을 받기는 힘들 것 같다.
계약에 묶여 다른 일도 못하고,
야간에 학원 애들 가르치며 버텼지만 이젠 체력이 안 된다.
학원 아이들이 보고 싶다.
오늘이 며칠 째지?
보리차로 일주일을 버텼다.
내 인생의 마지막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한다.
수전증 환자처럼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었다.
안구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과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펜을 쥔
손을 덜덜
떨어대며 만수패 하나를 버렸다.
그러자 치를 외치며 내가 버린 패를 가져가는 제작실장 동생.
"형님들~ 우리도 힘들어요...제작자가 스텝들이랑 계약할 땐 갑이지만 투자사랑 계약할 땐 똑같이 힘없는 을이라고요. 제작사가 무슨 대행업체도 아니고..."
패를 쓰무하며 리치를 거는 촬영 훠스트(1st)
"어 그래, 너 이새꺄~ 말 잘했다. 그럼 스텝들 눈탱이 치고 인건비나 깎지 말어! 순제작비 10억짜리 영화에 다마급 주연배우가 5억을 가져가는데…그게 어떻게 버젯이 10억이냐고? 5억 미만 저예산 영화지!"
뒤이어 리치를 외치며 언성을 높이는 또 다른 촬영팀
"우리나라에 저예산 영화가 있어? 말은 바로 하자,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 저임금 영화만 있는 거여~!장비 값이랑 후반작업 업체들 돈은 다 줘도 작가나 스텝 인건비는 눈탱이 치는게 현실인데-"
"그건 그렇고 너 이 새꺄~ 얼마 전에 트리트먼트 계약했다며? 왜 술 안 쏴?"
"쳇, 벼룩에 간을 빼먹어라! 두 달 동안 작업한 거 3.3프로 세금 떼고 100만원도 안 되는 돈 포 떼고 장 떼는데 남는 게 어디 있다고~"
"형도 참 불쌍해 ... 100만원에 영혼을 팔아먹고 싶어요? 정말?"
"50만원에 영혼을 판적도 있는데 뭐;;;"
이때 울리는 핸드폰.
액정 화면에 "대장님"이라고 뜬다.
난 친구들에게 쉿-소리를 내면스롱 조용하라며 전화를 받았다.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예 어머니!"
"살아 있냐?"
"...;;;"
"게장 해 놨다. 시간 되면 먹으러 와라"
"..."
할 말만 딱 하시고 쿨하게 전화를 끊으신다.
핸드폰…
폴더를 닫았다 열었다,를 벌써 수십 번째 반복하고 있다.
더 이상 염치가 없다.
더 이상 손 벌릴 곳도 없고
여길 뜨기 전에 누구부터 작별 인사를 해야 될지 고민스러웠다.
다시 펜을 잡았다.
내 인생의 마지막 시나리오
마지막 문장을
한줄 한줄 고쳐 나가기 시작했다.
눈이 튀어나올 듯이 아프다...납덩이를 인 듯이 온몸이 무겁고 팔과 어깨가 저려온다.
이런게 예감일까? 시간이 얼마 없다.
이 시나리오가 주목을 받게 된다면,
나중에 최대한 예쁘게 나온 사진을 써 줬으면 좋겠다.
단지 그 뿐이다.
아니면 그렇게 많고 많은 다른 영화인들처럼 단 한 줄로만 기사화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조용히 삼일장을 치르고 죽은 지 3일 만에 30년 전에 죽은 사람처럼 잊혀 질지도 모르겠다.
허연 입김에 언 손을 녹이다가 정말로 시간이 얼마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전증이 심해져서 글씨가 잘 안 써진다.
마지막 시나리오를, 마지막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이 글이 어떤 파장을 던져 줄지는 모르겠다.
단지...쉽게 잊혀 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간신히 힘을 모아 한자 한자 ...
수패를 계산해 보니 패를 잘못 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 아까비 삭수패3을 버리는게 아니었는데..."
담배 열 까치를 또 털렸다.;;;
까치 담배를 쓸어 담으며 만년 촬영 훠스트(1st)가 묻는다.
"거 왜 영화산업 실무교육센터에서 만났다는 6기 여신하고의 연애 사업은 어떻게 돼 가고 있냐?"
그 옆에서 패를 섞고 뒤집으며 양팔을 휘젓던 또 다른 촬영팀이 낄낄대고 웃는다.
"연애 사업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저 새끼가 지 혼자 껄떡댄 거여~"
"앞으로 한 달 동안 금딸을 해야 될 거 같아"
이게 무슨 오밤중에 후레시 먹고 오바이트 하는 소리냐는 듯이 모두가 날 쳐다본다.
"오랫동안 금딸을 하다보면 몽정을 하게 되는데, 꿈속에서라도 그녀를 만나보고 싶어;;;"
저마다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던 친구들이
정과 의리에 기반한 개평 값으로 담배 한 갑을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딱 한판만 더 하자!"
따르르륵 짤그락 짝짝... 마지막으로 패를 섞던 또 다른 촬영팀이 한마디 한다.
"니들 어제 뉴스 봤냐?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중간 생략) 난 정말 이해가 안되는게 친지들이나 이웃에 도움 청하는 것이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면 쪽지 역시 쓰지 않는게 상식적 행동 일듯 한데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고…….아무튼 이해가 안 돼"
난 담배 한대를 피워 물며 한숨을 토하듯 내 뱉었다.
"도움을 청하는 쪽지가 아니라 유서일지도 몰라..."
!
13개의 패가 말없이 세워진다.
마지막 게임 한판이 다 끝날 때까지 저마다 말이 없었다.
판수를 계산해 보니 리치...일발...멘젠에 당요... 핑후에 이페코, 도라3.......
아~ 개평으로 받은 담배마저도 완전히 털렸다.ㅠㅠ;;;
술 한 잔 하고 가라는 말들을 물리치고 집까지 걸었다.
쿨하게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으신 어머니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조명팀 일을 하고 있는 아들놈이 걱정되어
전화를 하신 거겠지...
내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걸었다.
"그녀는 단화만 신는 키 173의 8등신~♪ 나는야 키 높이 신발만 신는 루저에 (상)등신~♬" --;;;
한참을 걷다가
갑자기 몇 번 버스를 타야 될지 잘 기억이 안 났다.
어쩌면 나도 공범일지 모른다.
공모전 당선금을 어머니의 밀린 병원비와 수술비 제하고,
단 돈 100만원에, 50만원에...중고 LED 평면 TV값만도 못한 글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생전 고생이라곤 못해 봤을 것 같은 어린 제작사 대표에게 ‘누군 사채업자에게 쫓기면서 고시촌을 전전하며 시나리오를 쓴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영혼을 팔아버리면서까지 시나리오 트리트먼트 계약을 했던 배알도 없는 놈.
나도 공범일지 모른다.
추운 겨울 중앙 차선 위에서 생각했다.
내일은 안양 석수동에 계신 어머니나 뵈러 갈까?
갑자기 게장이 먹고 싶어졌다.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신물이 넘어온다.
비나 눈만 오면
(우산을 들고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으로 마중 나가)
자상한 아버지상을 연출하시던 윗집 아저씨
왜 비나 눈이 올 때만 자상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걸까?
아마도 사람 좋은 인상의 그분은, 비나 눈만 오면 하루 일당을 공치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일지도 모른다.
윗집 아저씨가 쪽지를 발견하고 내려오시게 되면,
손쉽게 문을 열어 볼 수 있도록 현관문은 잠가 놓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이런 몸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오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시간이 얼마 없다.
난 힘겹게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을 완성했다.
"그 동안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