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에 처음 영화가 들어온 때는 언제인가?
미국인 여행가 엘리아스 버튼 홈스(Elias Burton Holmes)가 1899년 무렵 한국을 여행할 때 영화를 소개했다.
그는 왕궁을 방문해 고종황제 앞에서 영화를 상영했으며 고종황제는 비단과 부채 등을 하사품으로 주었다.
이때의 상영은 고종황제를 비롯한 한정된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상영이었다.
버튼 홈스는 당시 서울 시내 풍경을 영화로 촬영하기도 했다.
참고로 인도는 1896년 7월, 중국은 1896년 8월, 일본은 1896년 11월에 처음 영화를 상영했다.
2. 한국 최초의 대중상영은 언제인가?
1903년 6월 23일, 미국인 헨리 콜브란(Henry Collbran)과 H. R. 보스트위크(H.R Bostwick)가 발전소 겸 전차 차고로 사용하고 있던 한성전기회사 (현재 서울의 동대문 부근) 마당에서 입장료를 받고 일반인들에게 영화를 보여주었다.
영화는 유럽이나 미국, 서울의 풍경을 찍은 단편 필름을 상영했으며,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계속했다.
입장료는 10전. 매일 저녁 1천 여명(당시 서울 인구 20여 만명)이 몰리는 성황을 이루어 첫 대중상영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그 뒤를 이어 영화상영이 더욱 확산되었다.
영화를 상영했던 한성전기회사 마당은 처음엔 단순한 야외설비를 갖춘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이름도 특별히 없었지만 1905년 무렵에는 '동대문 활동사진소'로 불리게 되었으며 점차 관람시설도 갖추게 되었다.
동대문 활동사진소는 그후 1907년부터 '광무대'라는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3. 최초의 극영화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극영화가 처음 제작된 것은 1923년, '서선 키네마'라는 영화사가 "국경"이란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당시 5만원의 제작비를 들여서 만든 이 영화는 한국과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있던 중국 땅 안동현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을 소재로 한 활극으로, 한국인 배우와 중국인 배우들이 공동으로 출연했다.
1923년 1월 13일 단성사에서 상영을 시작했으나 어떤 이유 때문인지 하루만 상영하고 말았다.
이 영화의 감독, 주연 등의 스텝과 캐스트, 정확한 내용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당시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이 한국내 흥행을 목표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문에 실린 "국경"에 관한 기사나 광고 등의 자료는 다음과 같다.
활동영화계 신기록으로 조선서도 서양 활동사진처럼 박은 사진이 이제부터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래 소위 연쇄활동사진을 유감으로 여겨 모 문학사의 걸작인 {국경}이란 소설을 각색하여 신의주 일대를 배경으로 순전히 조선인, 지나인(중국인)의 배우를 사용하여 최장척 열권의 대활극 조선 활동사진을 만들어 지금 현상중인즉 본월 15일 경이면 단성사 무대에 처음으로 봉절(개봉), 상영할 예정이라는바 그때는 조선인 애활가가 환영할 것은 물론하고 조선인 활동사진으로 열권짜리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매일신보 1923.1.5>
<국경> 광고
예고 (1월 13일부터)
예술계를 위하여!
정신계를 위하여! 생(生)한 조선영화 대활극 국경 전10권
조선 초유의 대영화요!
사계 최선(最先)의 대복음!
경성부 수은동
송죽특약 단성사
전화(본) 959
<동아일보 1923.1.11>
우리 조선 안에 활동사진 상설관이 많으나 오늘까지 이르도록 우리 조선의 사정 을 표본으로 삼아가지고 우리 조선사람들의 배우로서 활동사진을 박아 일반 관람 자에게 보이게된 것은 없었으므로 금번에 처음으로 오만원이란 큰돈을 들여 두달 동안을 허비하여 20여인의 조선 배우가 활동하여서 "국경"(國境)이라는 활동사진 을 송죽회사에서 박게 되었다는데 이 사진으로 말하면 중국과 조선 간에 있는 안 동현에서 생긴 사실을 박은 것이라하며 이 속에 중요 배우로 활약을 한 박순일 (朴順一)군은 서양 활동사진에서 역사로 자칭하는 [로로]이상의 강력자이라하며 이 사진은 오늘부터 시내 단성사에서 영사한다더라. <조선일보 1923.1.13>
조선 영화라는 국경{國境} 전 열권은 13일 밤에 상장하였으나 부득이한 경위로 하루만 하게되고 중지한 대신에 너무 유감이라 하여 일간 문예영화 대회를 열고 고급봉절인 서양문예영화를 상장코자 지금 준비중이라고 하더라. <매일신보 1923.1.15>
단성사에서 수일 전에 영사하던 사진(국경)은 사고에 의하여 영영 중지하기로 되 었고 불일간 새로 수입된 사진을 영사하기로 되었는데 그 사진은 불란서에서 유 명한 문호 [위고]선생의 걸작인 [희 무정]이라는 사진과 [괴퇴]박사의 고심작인 [로레아에이]라는 사진을 영사한다더라. <조선일보 1923.1.17>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