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출팀의 고리입니다.
저번에 첫 글을 올리고 조금 시간이 흘렀네요.
달력 위에서 지나간, 그 만큼의 시간이 저희가 준비한 만큼의 량으로
앵글에 담아나길 바라는 하루 하루 입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배역들이 확정되어 가고 있고
많은 장소들이 결정되어 갑니다.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의상, 소품 그리고 장소들은
다들 저마다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곧 카메라는 그것들 모두를 담아내겠죠.
오늘은 여름이 지나가는 맹렬한 소리인 듯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더니만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마치 아열대 기후 속에서 게릴라성 호우가 국지적으로 한 지역에만
내리는 것 처럼요.
담당이 미술인지라 헌팅을 다니며 손에 잡히는 공간들을 얻기 위해
동분 서주하고 있습니다.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로케이션 조건을 하나 둘 체크하며
이미 그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합니다.
때로는 공간과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도 나누죠.
사장님 아들 녀석의 진로와 매니져의 와인 따르는 법등을
듣기도 하죠.
하루의 헌팅이 끝나고 돌아오는 88도로.
그 위에 서 찍은 스텝들의 손을 올립니다.
머리와 가슴...만큼 소중한 스텝들의 손.
그 손안의 수많은 갈래들 처럼 이번 이야기도 많은 관객분들의 수 백만 삶의 가지로 뻗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단편을 찍을 때의 순간이 떠오릅니다.
그 날, 영진위에서 16mm 프린트 현상비로 17만 5천원을 내고
청량리역에서 국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늦은 시간.
노약자 석 앞에서 지친 몸을 손잡이에만 의지한 채
영진위 마크가 찍힌 프린트 통을 들고
흐느적 거리고 있을 때
나이드신 노인 한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네가야 프린트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저는
"아.. 16mm .. 프린트요.. 어떻게 아시나봐요?"
노인 분은 가만히 멀리 당신의 눈을 던지시고는
몇 정거장이 지나가도록 아무말도 하지않으셨습니다.
어느 역이었던 지
마치 그 역에 가장 어울리는 하차객처럼 자연스레 일어나신
노인 분은
작지만 굵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 소중한 거야. 무시하고 욕해도 아끼고 다듬어서 잘 해..."
전혀 만나지도 못한 누구인지도 모르는 노인 한 분이
닫히는 문 사이로 던진 말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
음. 다소 감정적으로 빠져버렸네요.
하여튼 그 날, 늦은 밤 아래 달리던 국철의 느낌. 껌벅이던 형광등 아래에서
손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손가락들을 손 바닥으로 꽉 밀어넣게했던
그 말을 요즘도 반추하고는 합니다.
헌팅을 하러 들어간 공간이 품을 많은 고민들과 결정들 속에서
스텝들의 손이 그곳을 아끼고 다듬어서 풍부한 이야기로 바꿔갑니다.
모든 영화 스텝분들의 안전을 우선시 하며 오늘의 또다시..감상적이 되어버린
글을 마무리합니다.
.
그러니깐 지금은 헌팅을 거의 마무리 했다는 말이되는 거죠.^^
조금 더 턱을 들고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