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꽃봄' 이야기

iyagiya
2004년 04월 19일 11시 41분 40초 2669 2 3
비 온 뒤, 하늘은 어둡고 바람은 찹니다.
건넛산에는 연두색 새 잎들로 무성합니다.
여전히 겨울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 영화는
점점 늘어나는 분홍과 초록이 두렵습니다.

꽃이, 봄이 두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열아홉이거나 스물이거나 하던 시절.
사랑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들로 온몸이 흔들리던 시절.
타의에 의해서건 자의에 의해서건
푸른 목숨들이 '꽃잎처럼' 스러지던 시절.
구호를 외치는 입 안으로, 잔디밭에서 마시던 막걸리잔 속으로
한 점 한 점 꽃잎이 들어오던 시절...
그 사이 봄은 열 몇번 가고 오고, 대통령은 네번 바뀌고
몇번의 연애와 또 몇번의 실연...

거짓말처럼,
딸아이는 몇 걸음씩 걷기 시작합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날, 어쩌면 혼자서도 자유로이 걷고 있겠죠.

수연이 병상의 아버지를 간호하는 장면을 찍던 날,
미래 우리 부녀의 어떤 데자뷔는 아닐까... 마음이 시렸습니다.
아빠는 강원도에서 딸아이는 서울에서 유행처럼 감기에 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빠 아빠" 하는 소리가
자꾸만 "아파 아파" 하는 소리로 들리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던 아비...

다시 도계로 오던 날, 아빠가 또 멀리 떠난다는 걸 아는지 딸아이는 부쩍 더 안겨왔습니다.
딸아이 대신 커다란 가방을 안고 돌아서는데, 용석 아버지의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내가 두려운 게 뭔지 아쇼? 저 놈이 클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거요.
... 그래도 이런 아버지지만, 없는 것 보단 있는 게 나을 테니까."

'눈에 밟힌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울컥울컥 치밀어오르는 뜨거운 것...

아이가 자라듯 우리 영화도 점점 살이 붙어갑니다.
언젠가 딸아이가 수연이만큼 자라서 우리 영화를 보게 되는 날,
그땐 매정하게 돌아설 수 밖에 없었던 아비의 마른 등짝을 이해해주겠지요...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vincent
2004.04.21 10:06
제발 안타까운 상상은 하지 마세요. --;;;
지율이가 퉁-하고 아빠 등을 두드려줄거에요. 아빠 힘 내라고.
maaroo
2004.06.10 14:33
꽃봄팀 화이팅 하셔요~ 표현할수 없는 마음 벅참을 넘어 즐작 되시기를..emtc_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