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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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아주머니의 새로운 소식

sadsong sadsong
2005년 03월 06일 00시 01분 01초 2647 11 141
마흔이 다 되어서야 얻은 두 딸을 둔
아버지의 절친한 중학교 동창인 아저씨.
아저씨 부부는 사내 아이 셋이 바글대는 우리집을 종종 찾으셨고,
오실때마다 우리들을 반갑게 맞으며 듣기 좋은 말씀을 해주곤 하셨다.

특히 아주머니는,
아들들 많아서 든든하겠다거나,
다들 키도 훤칠하게 크다거나,(실제로 우리 형제들은 어느 누구 하나 키가 크질 않지만.)
그 녀석들 참 잘 생겼다거나 하는 식의 인사를 거의 매번 빼놓지 않으셨다.
그저 의례껏 해 주시는 인사겠거니 여기기도 했던.

그러다가,
아주머니의 그 밝은 인사 뒤에 담긴 어떤 아릿한 눈빛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내 나이가 어느정도 더해져가던,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느새 저마다의 독립된 울타리를 갖고 살아갈 나이가 되어버린 그날의 아이들에게,
'울타리 밖'의 아저씨, 아주머니를 만날 기회는 자연스럽게 줄어갔다.
잊혀져 가는 어린날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사이,
어려서 몇번 어울리기도 했던, 나와 동갑인 그집의 큰딸 OO는 결혼을 했고,
아주머니가 한 두 차례의 어떤 수술을 받으셨고,
그것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로 도시를 떠나 강원도 한적한 곳으로 이사했다는 소식들을
엄마를 통해 가끔씩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 역시, 울타리 주변을 잠깐씩 맴돌 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흘러지나가 버리는 이야기로.


그리고 오늘,
어느 결혼식에서 그 아저씨를 만나고 오신 부모님은 나에게 새로운 소식을 들려주신다.

"OO엄마, 몇 달 못 산댄다.."



지난날의 그 모습들이, 그 웃음이, 그 웃음 사이로 묻어나던 아릿한 눈빛이.. 이렇게 생생한데..

"아이고, 잘생겼네.... 어머.. 많이 컷구나...."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mojolidada
2005.03.06 01:17
형! 슬픈 노래는 어릴적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알아가며 좋아지더라구요.
커간다는건... 나이가 든다는건...
슬픔이란 감정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일수도...
웃음은 점점 잃어가고...
말은 많아지고...
'나'라는 존재를 알리지 않으면 안될것 같고...
서르은 즈음에...
luij
2005.03.06 21:12
쌔드쏭아...안되겠다.
술먹자.ㅋ. 재밌는 일 많거든...
전화해. 내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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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글쓴이
2005.03.07 02:13
모조리,
슬퍼지는 네 모습이 보기 좋다.
그래.. 다른 것 보다도, 내가 말은 참 많아진 것 같긴 해..

루이제이님,
술도 좋고 재밌는 일도 좋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우리 아직.. 서로 전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정말....
서로의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으니까요.
luij
2005.03.07 08:33
엄머.......
너무한거 아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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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220
2005.03.07 10:14
새드송님 너무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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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글쓴이
2005.03.07 13:54
제가 너무했던 것 같습니다.
유통 과정이 어찌되었건, 제 전화번호를 알고 계셨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동일 중개인을 통해.
luij
2005.03.07 14:34
이런식으로 넘어갈순 없음..
술은......중개인이 산다!!.. 이미지도 증인으로 참석한다!! 땅땅땅!!!
vincent
2005.03.07 15:44
요즘 들어 오랜만에 들리는 그 옛날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소식은 거개가 저런 슬픈 소식들이네요.
그 분들이 이제는 이 곳 저 곳 덜컥거리는 몸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다는 걸 잊고 살아요.
더불어 우리들이 아주머니 아저씨가 되어간다는 사실도.
ty6646
2005.03.15 00:42
새드송님
"잊혀져 가는 어린날의 다른 것들" 이라는 단어배열이 참 맘에 드는데
이 구절 제가 다른데 써 먹어도 되겠습니까 ?
가령 제가 수필이나 소설, 또는 일기를 쓸때, 제목이나 내용의 일부로 써 먹는다든가(^^)
부디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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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글쓴이
2005.03.15 11:55
'허락'이라고까지 하시니 오히려 제가 더 쑥스럽네요..
(일기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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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글쓴이
2007.06.20 02:38
오늘, 아니 어제까지
결국 그보다 몇배의 시간을 더 살아내셨지만
그 늘어난 시간만큼 아픔과 눈물 또한 늘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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