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구석 큰 아들로 태어나 맞벌이부부의 무방비 방목지도아래, 공고를 졸업하고 마지막 방위생활을
거쳐 스물다섯에 시골출신 여자를 덜컥 임신시켜 결혼한 우리 오빠에게는
벌써 빠른 일곱살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귀여운 딸과 네살짜리 개구장이 아들이 있다.
큰 딸과 막내아들을 얻었으니 200점짜리라고 하겠다.
작은 연립주택이지만 평생을 개미처럼 일한 부모님이 전세금 보증금에다가 올해 대출까지 더해서
당신들 아들앞으로 집을 사주셨으며
가장인 오빠는 회사를 다니고, 중고차지만 마이카 시대에 살고 있으며 새언니는 토끼같은 조카들과
살림과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며 그럭저럭 살고있는데...
넉넉하지 않아도 열심히 살고있는 소시민 가족인데 말이다,
오늘 아침 엄마는 새언니에게 세째애를 임신했다는 전화를 받고는
자빠져 자고있는 나를 깨우더니, 기가 막힌 뒷다마를 까기 시작했다.
전화통화로 직접 새언니에게 뭐라고하시지는 않았겠지만,
당신 아들 등골 빼먹으려고 집에 가만히 앉아 놀면서 임신을 하고 셋째를 낳겠다고 니 새언니가 그런다,
며느리가 제정신이냐는 둥,
왜 알아서 수술하지 않느냐는둥, 엄마는 알아서 했다는 둥
(낙태를 너무 쉽게 말하는 이 대목에서는 눈물이 나기까지 했다)
여자가 피임을 제대로 못해서그랬다는 둥..... 아,
아, 지금 난 지옥에 있어.....
이건 김영하의 단편<오빠가 돌아왔다>에도 나오지 않는거다.
난 솔직히 엄마 머리가 어떻게 된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 임신은 혼자 하나? 그 아이는 엄마 손주가 아닌가?
새언니가 밖에서 애를 배가지고 온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런 매몰찬 말씀을 악다구니를 쳐가며 하실까?
정이 뚝 떨어졌다.
너무 뼈골빠지게 삼남매를 키우며 인생을 전투하듯 살아오셔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가족에 대한 예절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막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엄마를 보니 인간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엄마를 그렇게 만든 엄마의 운명에 대한 가혹함에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내가 만약 결혼을 했는데 시어머니가 우리 엄마처럼 말한다면 나는 심장이 터져서 죽었을것이다.
위대한 독재자가 통치권자로 대한민국을 지배하며 경제, 경제를 외치며 밀가루, 밀가루를 뿌리던 시절,
맨몸으로 상경한 20대 초반의 부부는 네번째 아이, 다섯번째 아이가 생겼어도 기뻐하지 못했으리라,
세 아이의 젊은 엄마는 아예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혼자 애를 떼러 병원에 갔으리라,
그리고 다음날은 또 찬밥으로 도시락을 싸서 공장으로 출근했겠지.
엄마에 대한 동정,
그러나, 엄마는 먹고사는 것이 최대 문제인 전쟁터같은 삶을 살았고, 아빠보다 더 강인해졌으며,
수많은 친정식구들의 병원비나 대출금, 주택문제등으로 골머리를 앓으며 또한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제는 낙태따위는 별 문제도 아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머리가 아프다.
충돌중이다.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루다가....
여자,
엄마도 여자고 며느리도 여자인데 왜 그 문제를 그렇게 쉽게 생각하실까?
임신은 정자와 난자의 미팅이건만, 왜 새언니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뒷다마를 까셨을까?
평생 돈버느라 건강을 다 해치셨으니, 애 낳고 집에서 살림만 하는 며느리를 질투하고 계신가...
그럴수도 있지만.
오빠 돈버는 것도 힘들지만, 새언니가 애낳고 키우는것도 힘든데.....
생명,
교회는 열심히 다니시더니, 예수님이 아니라, 돈을 믿으신걸까? 돈 많이 벌게 해주는 예수님을?
소중한 생명인데, 난 당연히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청승떨고 살고 싶어서 셋째를 낳냐? 미련한것, 저그 테레비에 나온 9남매못봤냐?
시골에서 예수믿으면서 생기는 데로 다 낳아서
9남매 데리고 사는 거지같은 부부....어쩌구 하실땐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아들,
우리 둘째 조카가 또 딸이었으면 이번에도 그렇게 난리를 치셨을까?
둘째조카가 아들이었을때, 엄마, 아빠는 얼마나 좋아하셨었나? " 다 이루었다......." 그런 분위기였는데,
다 이루었는데 왜 또 ......그거라구???
부부의 문제,
아이를 낳고 말고는 그 부부의 문제다, 오빠와 새언니가 결정할 문제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새언니 욕을 하면서 낳아라, 말아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냉정히 얘기하자면 이 핵가족화 시대에 시어머니는 아들며느리 문제에 신경 좀 껐으면 좋겠다.
피곤하다.
쿨한 시어머니들은 아들내외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 에잇, 엄마가 오빠네 집을 사주지 말았어야했는데.....
최선을 주면 또 뭔가를 기대하고 간섭하고 싶어지는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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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은 나를 위해서 쓰는 것 같다.
엄마에 대한 엄청난 실망과 그렇게 척박해진 엄마를 보았을떄 오는 비통함때문에
눈물이 쏟아졌건만 이 글을 쓰는 동안 정리를 좀 해보니 냉정을 찾았다. 지금은.....
여동생은 입이 셋이나 딸린 오빠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작년에 사들인 구두만도 오빠의 한달치 월급은 될것이다.
오빠식구들을 보며 "참 구질구질하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무턱대고 결혼은 왜 해서 저 고생이야?"
하는 여동생.....
그러나, 나는 오빠가 임신한 여자친구에게 병원가라고 수술비를 쥐어주는 대신
집에 결혼하겠다고 데려왔을때,
다른 친구들이 "우리오빠는 서울대 물리학과 수석했다"고 자랑하던 시절,
공고 졸업한 우리 오빠가 창피해서 쪽도 못쓰고 입다물고 있었을때를 회상하며,
오빠를 자랑스러워했었다.
오늘의 엄마는 나를 너무나도 놀라고 화나고 슬프게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세째조카의 전신인 수정란이 새언니의 자궁에 착상된 이 마당에
낙태같이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산모의 낙태에 대한 자유-행복추구권과 태아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기본권 충돌이
이발사법에 나온대로 사사오입으로 결정되지 않더라도.)
나는 세째조카를 만나고 싶다.
먼 훗날 ,
"야, 큰고모, 왜 엄마, 아빠는 날 낳은거래?? 이 좃같은 세상에 말이야???
할머니가 말렸는데 니가 그렇게 낳으라고 지랄했다며? 씨발...."
이런 얘기를 들을찌라도 말이다.....
마음을 다스리며, 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를 다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