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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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식순이는 괴롭다..

indiemind
2002년 12월 25일 10시 25분 50초 1031 1
영화작업을 마치고 요즘은 쉬는 타임이다.

생활 패턴이 완전히 망가졌다.

어느날은 밤을 꼴딱 새고 아침 열시가 되서야 잠이 든다.

어느날은 초저녁부터 내리 자고(우리집 새식구 강아지 "포키"가 밥달라고 아무리 물어뜯어도 안일어난다)

새벽 한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떤다.

유일한 내친구 TV..

참 재미 없는 친구다... 멍하니 마주 보고 있다가 치직거리면 대화도 안통하는 미국방송을 틀어놓고(울집은 케이블티비를 안본다)

작은 상을 펴서 책을 읽는 답시고 낙서를 하고 있다.


식순이로 전락한지도 몇주가 지났다.

아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집안분위기 속에서 -_-; 영화하며 돈 못벌어준다는 이유로..

쉬기만 하면.. 식순이로 전락한다.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개똥치우고..

회사다니는 막내년 도시락까지 싸고 있다.. 젠장..제발 사먹어라.

아침나절에 잠깐 컴을 두드리다가 약간 자주고

오후 두시정도에 일어나 밥을 하기 시작한다.

-_-; 얼마전 감자를 자르다가 베인 검지가 물이 닿자 움찔 거린다.

손바닥의 손끔자리에선 주부습진같은게 스물거린다....

손에 물뭍히고 살팔자가 애시당초 아닌 난 일정기간동안 물이 손에서 안떠나면 뭔가 일어난다...

그러나 식순이 인생은 더럽게도 물과 인연이 많다.. 수영도 못하는 나인데..

"이것도 싱겁고 저것도 싱겁고... " "싱거운게 건강에 좋은거야.." 아빠의 반찬투정에.. 약간의 반격을 가해주고 나면..

설겆이가 날 기다린다..  

담가뒀다 나중에 하는게 더 귀찮은 나는 ... 독실한 귀차니즘 주의자이면서도..

설겆이를 더럽게 잽싸게 해버린다.

엄마 아빠가 나가면서 특명을 하나씩 내뱉는다.

" 베란다에 냉이 다 다듬어라.."

에잇!! --+ 귀차너.. " 웅 "

" 깨끗하게 다듬어서.. 삶어 "

에잇!!! " 웅 "

" 나눠서 냉동실에 넣어놔 "

ㅡ,.ㅡ+ 에잇.... " 알았다니깐!! "

베란다에 가보니.. 2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만한 퍼런 비닐에.. 냉이가 한그득 들어있다.

젠장..

컴을 쓰다듬어준다..

티비를 본다..

-_-; 한숨 자준다..

새벽 2시다..

-_-; 훔.. 냉이를 꺼낸다.

티비앞에 신문지를 깔고.. 냉이를 다듬는다..

-_-; 새벽 4시... 아직 반도 못했다..

-_-; 새벽 6시다.. 아직 한참 남았다.. 에잇.. 버려버릴까?  다 물에 담가 버린다.

도시락을 싼다.. 젠장 사먹으라니까..

흙탕물을 내뱉은 냉이를 다듬는다.. -_-;

삶는다.. -_-; 아침 8시가 넘었다.

식순이는 넘 힘들다..

월급을 받고 싶다.

-_-; 그럼 좀 덜 귀찮을 텐데...


한달정도 진득히 쉴려고 했는데.. -_- 훔...

어서 어서 일을 알아봐야 겠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uni592
2002.12.25 17:56
내가 식순이던 시절... 집에 컴터마저 없고... 분리수거도 해야 햇음. 일년동안 묵은 신문 치우다가 죽을뻔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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