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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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이름바꾸기 - <2/2, 마무리>

sadsong sadsong
2002년 05월 04일 15시 49분 09초 1092 1 29
닭의 알인 달걀이 '닭의 알'이라서 '계란' 인 것을 안 것은 중학생때일까 고등학생때일까.
어려서부터 알던 넓게 생긴 물고기 넙치가 횟집의 '넓은 물고기' '광어'와 같은 놈인걸 안 것이
중학생때일까 고등학생때일까.
달러($)가 '불'이고 프랑스가 '불란서'인 것에 속 뒤집어지던 것은 좀 다른 종류이긴 하지만.
그런것들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것과  생각없는 기성세대에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때쯤일까.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서 일부러 익히지 않았던 내 이름의 한자를
불가피하게 알아야만 했던 것은 주민증 만들던 고등학생때이지.

한자어가 차지하는 어휘가 70%라나 80%라나.
어차피 한자 없는 의사소통이야 불가능한건데,
적어도, 100년 200년 뒤에 순 한글만으로도 살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그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나.
억지를 부리자는건 아니고, 고칠만한 것들부터 조금씩은 고쳐나가면 좋겠지.

쉽고 빠른 이해를 위해선 한자어가 편할때가 아직은 많은건 인정하고,
-그러면 안되는데- 나 역시 좀 잘난척하고 싶을땐 이런저런 한자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어디선가 한자어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절 보고 너무 욕하진 말아주세요.)


어쨌든, 그리하여,
<2002년 4월 22일,  서울 가정법원.>

각종서류 / 보증인1 / 보증인2 / 8,500원
신청취지 : ...."덕재(德載)"를 "덕재(한글)"로 개명하는 것을....
신청이유 : 어려서부터 불필요한 한자 사용에 거부감을 가지고 가능한
한글을 사용하는 것을  생활화해왔습니다.
가장 기본적이랄 수 있는 이름이 한자인 것이, 그러한 제 삶의 방식에 걸림돌이 되어
스스로 떳떳할 수 없는 부담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한국인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서 한글 이름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며,
이제 스스로의 이름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개명을 신청합니다.
  (그 자리에서 급하게 써내린거라 좀 유치하긴 한데....)
사건본인 : 정덕재


<2002년 5월 3일,  특별송달>
주문 : .... 호주 ***의 호적중 사건본인의 이름 "덕재(德載)"를 "덕재"로 개명하는 것을 허가한다.
이유 : 이 신청은 그 이유 있다고 인정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판사 : * * *



사실 갈등한 것은,
한글로 바꾸면서 엄마의 성을 함께 쓰는 것까지 생각해보았는데,
도리상 당연히 그렇게 해야 마땅하지만....
뒤따르는 책임과 수습해야 할 일들이 꽤 많아, 조금은 비겁하게 보류.
법적 책임이 따르지 않을 비공식적인 일에 가명정도로만 사용을 하기로.


어찌되었던 이십 몇 년간 함께 했던 "鄭德載"를 떠나보내고,
"鄭덕재" 와 가끔의 "정허덕재"로 새출발 하려는데....
(성은 못바꾼다고 하니, 내 이름 누더기. 나중엔 법을 바꿀테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마음 한쪽이 '몹시' 허전한 것은 한가닥 미련인가.
태어나면서부터 함께해온.... 그래도 오랜 시간이었는데....
니가 미워서 버리는건 아니야....
애초에 만나지 말았을 것을....
다시는 만날 일이 없겠구나....
안녕.

이제 내 이름엔.... 아무런 뜻이 없다.

sadsong / 4444 / ㅈㅎ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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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길.... 나도 가끔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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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drama4u
2002.05.05 01:29
전 아직도 해삼에는 '멍게'가, 멍게에는 '해삼'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쁜 붉은 해 같은 것은 정말 해삼인줄 알았는데...바다해'자 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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