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실에서 배운 연기는 현장에서 통한다.
기실 졸업생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기실에서 1년 배우고 자립한 배우들은 바로 현장에 나가도 본인의 역할을 잘 해내기 때문입니다. 1~3기 졸업생 중에는 요 근래 넷플릭스 드라마/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3명 이상 되는 것 같네요. 전부 다 소속사 없이 본인 실력으로만 배역을 따냈습니다. 그 외 독립 현장에 나가는 배우들은 기실에 훨씬 많고요.
저 역시 기실 졸업생인데, 이번에 넷플릭스 드라마 촬영장에 가서도 기실 안에서 현장에 필요한 것들은 모두 배웠기 때문에 바로바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현장에 다녀온 후에 느꼈던 ‘프로 배우들이 알고 있어야 할 핵심 5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나가는 행인 1 등 이미지 단역은 아직 해당이 안 되는 내용들이고, 배역 이름이 확실히 있는 단역/조단역 급 이상 배역을 맡았을 때 배우들이 알아둬야 할 내용들입니다. 아직 현장에 나가지 않은 배우들도 미리 저장했다가 나중에 캐스팅되면 촬영장 가기 전에 보세요. 반드시 도움 될 겁니다!
기실_ 촬영 실습수업
1. T 바 & 더블 - 카메라와의 약속
T 바는 배우 위치를 잡아주기 위한, T자 모양으로 된 도구에요.
바닥에 놓아서 배우들이 연기할 때 서 있어야 하는 곳을 알려줍니다.
연기를 하며 이동하거나 움직임이 필요한 경우, 카메라와 약속된 자리에 정확히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바닥에 표시를 해둡니다. 배우는 바닥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그 약속된 위치로 움직여야 해요.
추가로 동선이 있는 경우, 상대 배우와 더블(= 상대 배우와 겹치게 서서 카메라에 가려지는 것)이 되지 않게 움직여야 합니다.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는 배우는 반드시 이성적 사고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더블 되면 어차피 그 장면은 못 쓰기 때문에 바로 NG입니다. 그래서 몰입에 집착하며 충동으로만 연기하는 배우는 상대 배우와 모든 스태프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카메라 무빙에 맞춰서 배우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요구될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 "카메라가 빠지는 순간, 오른쪽으로 미세하게 몸의 중심을 이동해 주세요." 이런 디렉팅이 오면 처음 현장에 나가는 경우 괜히 긴장할 수 있습니다. 연습실에서 하면 잘 해낼 것도, 현장에 가면 나의 그 움직임을 조용한 가운데 100명 이상이 지켜보고 있으니 떨릴 수밖에요.
2. 감정선 유지
어떤 배역이든, 그 역할이 갖고 있는 감정선이 있을 겁니다.
특히 이번에 제가 캐스팅된 배역은 감정이 깊은 역할이었는데, 5시간 이상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감정선 유지가 몹시 중요했습니다.
연극과 다르게 매체는 이런 특징이 있어요.
① 배우의 감정선을 따라 순서대로 찍는 것이 아닌, 촬영하기 좋은 순서대로 찍는다는 것.
② 몇 시간이고 반복해서 여러 테이크 찍을 수 있다는 것. (컷 수도 많음)
이렇게 나눠 찍더라도 편집을 했을 때 붙어야 하기 때문에, 그 감정선을 배우가 반드시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감정 유지를 위한 집중력과 자신만의 노하우 있어야 합니다. 또 상대 배우나 스태프들이 잘 모르고 계속 말을 걸어도 정중하게 거절하고, 연기를 위해 당장 해야 할 것, 인물의 전 상황 생각과 감정선 유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실_ 촬영 실습수업
3. 감독과의 소통
드라마 주연/주조연은 크랭크인 전부터 감독과 지속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연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 배역은 감독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그러면 보통 현장 도착해서 촬영 리허설 들어가기 직전과 씬 중간중간에 스태프들이 세팅할 때 감독과 소통을 하게 됩니다.
'이 씬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왜 그렇게 연기가 나왔는지' 등 짧은 시간에 핵심적인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자신의 연기에 대한 정당성을 갖고 설명할 수 있는 연습을 해두면 좋습니다. 배역에 대한 생각, 씬에 대한 생각들도요.
4. 책임감 + 멘탈
상업 현장은 규모가 정말 큽니다.
촬영지 근처로 들어서는 순간, 대형 차량 버스가 줄지어 있고 신인들은 그것만 봐도 겁을 먹을 수가 있어요. 촬영장에 도착하면, 헤어 메이크업, 의상, 심지어 옷 입는 거까지 전부 다 케어를 해줍니다. 감독 컨펌이 끝나면 촬영에 들어가고, 촬영지로 차 타고 이동하면 벌써 세팅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 100여 명 가량의 스태프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다 검정 패딩...
넷플릭스는 스태프 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있어요. 케어도 정말 좋고, 따로 교육을 받는 것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를 대하는 기본적인 매너들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다들 너무 좋은 분들인데, 자칫 처음 현장 가면 그 큰 규모와 분위기에 압도될 수 있습니다. 멘탈 관리 잘 해야 해요.
요즘 OTT 드라마 촬영은 거의 다 사전제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화처럼 천천히 시간을 두고 찍습니다. 특히 넷플릭스처럼 자금이 받혀준다면 더더욱이요. 다 프로 스태프들이 모였고,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방영이 되기 때문에 배우 연기는 물론이고 카메라 무빙, 특수효과 등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을 안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모든 게 완벽해야 OK가 납니다. 될 때까지 찍어요.
이날 정말 더 실감한 건, 100명 안 밖의 스태프들이 너무나 감사하게 배우의 연기를 위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CUT 소리가 날 때마다 헤어 메이크업 팀, 의상팀, 소품팀, 연출부 등 열댓 명이 우르르 달려와서 저를 케어해주었습니다. 그러니 배우들은 '내 꿈을 위한 일이에용' '진실되지 않은 것 같아서 도중에 연기를 끊었어용' '몰입이 안 되어서 연기가 잘 안 나와영~' 뭐 이딴 허접 소리 하면 진짜 그만둬야 해..
현장에 있는 모두가 다 돈을 받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걸린 일일 수도 있어요.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연습실에서 훈련할 때, 수업에 참여할 때부터 이 마인드를 심어야 나가서도 잘 하게 됩니다.
기실_ 촬영 실습수업
5. 카메라 테크닉
- 가장 중요!!!
"진심으로 와닿니? 아니면 틀린 거야."
"진정성을 갖고 하렴. 니 연기는 가짜야!"
실제로 제 제자들이 과거 다른 학원에서 '진정성에 갇힌 연기 교육'을 받았을 때 들었다고 한 말입니다.
연극만 해봤거나 큰 현장에 가보지 않은 코치는 이렇게 가르칠 수도 있어요. 혹은 러시아에서 내려져온 고전 책들만 잔뜩 보며 연기를 혼자 공부한 사람들은 여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진심’ ‘진정성’.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내가 무엇을 느끼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가수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저는 진정성을 담았어요'하며 계속 삑사리 나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진심이 담겨있지 않아서 노래 시작을 못하겠어요..' 하면 무슨 생각이 드시냐고요.. 배우도 똑같아요. 여기서 못 벗어나면 현장에 나오긴 어렵고 연습실에서 연습한 게 마지막 배우 커리어가 될 겁니다.
반드시 카메라 테크닉을 배워야 합니다. 연극배우가 아닌, 카메라 앞에 서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연기를 배우고 있는데 이거 안 알려주면 지금 본인이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연기를 배우고 있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지금 카메라가 나를 무슨 샷으로 찍고 있고, 카메라 무빙은 어떻게 되는지 거기에 따라 내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면 현장에서 문제가 터집니다. 그에 맞게 호흡, 감정, 시선, 움직임 처리를 다 해줘야 하니까요.
기실_ 촬영 실습수업
현장 배우가 되기 위해서 연기를 배울 때는 반드시 촬영 실습을 하고 가는 게 좋습니다. 기실도 그래서 후반부 수업에는 단편이나 씬을 촬영하는 촬영 커리큘럼이 꼭 있어요. 우리는 독백만 하다 끝날 배우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니까요.
프로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를 배울 거면,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연기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9년 동안 기실이 폐업(부도)을 안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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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명이 아까워했던 기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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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지식 저장 가능한, 기실 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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