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한 번쯤 2인극 연습 경험을 하신 분일 겁니다. 그리고 그때 상대 배우와 의견이 잘 안 맞아서 힘들었던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셨나요?
피하셨나요? 아니면 싸우셨나요?
제 생각에는 피한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할 말이 있어도 웬만하면 참고 넘어갔을 거예요. 왜냐하면 굳이 상대와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근데 왜 우리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우린 유치원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거든요. “친구랑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야 돼.”라고요. 무난하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 그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온 우리는 당연하게 갈등을 피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연기할 때도 갖는다면, 여러분은 손해 보실 겁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면 몰라도, 배우로서 좋은 극을 만들고자 한다면 말이죠.
2가지 갈등이 있어요.
'공적인 갈등(극을 위한 의견 충돌)'과 '사적인 갈등(서로 간의 인격 모독)'
'극을 위한 의견 충돌'은 피하지 않고 부딪혀 봐야 배우로서 얻는 것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사이가 조금 벌어질 순 있으나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갈등이 생겼다는 건,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친 부분을 상대 배우가 파악해 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여기서 3가지를 얻을 수 있어요.
1) 내가 놓친 것을 상대가 채워줄 수 있다.
2) 건설적인(의미 있는) 대화가 오가기 때문에 좋은 극이 나올 확률이 커진다.
3) 나와 의견이 안 맞는 상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2인극 수업을 하다 보면, 배우들끼리 서로 잘 안 맞아서 힘들어한 경우 오히려 좋은 극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술술 풀려서 전혀 갈등이 없었던 경우, 극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같은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놓치는 걸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거죠.
3번 ‘소통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중요하니까 잠깐 이야기할게요. 현장에서 우리는 처음 보는 상대 혹은 경험 많은 선배들과 소통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럴 때 자신만의 소통 노하우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현장에 가서 어려움을 겪게 될 거예요.
그룹수업 중 2인극 작업을 하면 배우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이것입니다. “연기뿐 아니라, 상대와 작업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정답입니다. 우리는 현장에 가면 독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연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통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렇게 많은 이득이 있지만, 막상 상대랑 부딪히려 하면 덜컥 겁부터 나겠죠? 그래서 '상대와 소통 잘하는 3가지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1) 우선 듣고 공감해라.
2)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설득’해라.
3)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말하는 나만의 노하우를 연구해라.
3번은 사람마다 방법도 다르고, 장기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1번과 2번은 노력한다면 누구나 바로 적용할 수 있어요.
1번은 타인과 대화할 때 좋은 관계를 위한 기본 법칙이기도 하죠. 그런데 2번은 조금 더 난이도가 있을 겁니다. 상대에게 ‘강요’가 아닌 ‘설득’을 하려면 명확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납득시켜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철저한 대본 분석을 통해 스스로도 생각 정리가 잘 되어있어야만 합니다. “네 생각이 틀렸어!”라고 주장만 하면 누구나 반발심이 들 수밖에 없죠, 실력이 비슷한 동료의 경우는 더욱이요.
두 번째 갈등.
‘서로의 인격을 모독하며 싸우는 것’은 당연히 피하는 게 좋겠죠?
하지만 부득이하게 피하지 못했다면, 이것만 기억하세요.
“연기할 때는 절대 티 내지 마라.”
연기할 때만큼은 철판 깔고 하세요. 간혹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연기할 때도 다 티 내면서 연기까지 망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냉정하게 최악의 배우입니다. 바꿔서 생각해 볼까요? 의사가 화났다고 그날 수술을 막 해버린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무책임하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드시죠? 배우도 똑같습니다. 일은 일입니다. 공과 사 구분 확실히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처음 봐서 서로 어색할 때에도 연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아직 준비 단계인 배우 지망생이라면, 현장 나가기 전에 처음 보는 상대와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 연습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서로 다투는 신은 그나마 낫지만, 로맨스 장르를 찍어야 하는 경우는 특히나 유용할 겁니다. 저는 촬영 당일 상대 배우와 처음 만나서 인사한 후, 곧바로 오랫동안 사귄 연인 연기를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해야 했고요. 이런 경우 상대 배우에게 먼저 말을 걸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서로의 연기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내용은 글로 본다고 바로바로 적용시킬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상대 배우와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나만의 노하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셨다면, 적어도 이론은 충분히 인지하셨을 겁니다. 수업을 듣고 있다면 동료 배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역량들을 만들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많이 부딪혀보세요! 수업을 듣고 있지 않다면, 주변에 아는 배우들을 붙잡고 스터디라도 하시면서 역량 개발을 해두시면 좋을 것 같네요.
현장 나가기 전에 많이 훈련해두세요!
[기실 상담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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