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남북톨일은 베트남방식을 많이 따라가는 것 같지만,
제 생각에는 독일방식이 돼야 할것같은데, 여러분 의견은 어떤신가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어느때 보다도 긴박하게 급변하여 한국전쟁의 종식을 내 걸고 “평화협정”을 저울질하고 있다.그리고 남북한은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미,북 간의 정상회담을 점치고 있다.그러나 북,미간의 핵폐기를 위한 외교(정치,군사)전쟁과 한,미간의 FTA에 의한 경제전쟁이 미국,남한,북한 간의 삼각관계로 미묘하게 작용되고 있다.그래서 한반도는 미국의 양다리 두 축인 대북한 외교(정치,군사)전과 대남한 경제전의 양상으로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백지에 상상의 만화를 그려보고자 한다.세계최강 미국의 맹주 부시대통령이 큰 권투 글러브를 끼고 링위에 올라가 두 주먹을 불끈 쥔채 오른손의 주먹으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머리 정수리를 내리 칠려하고, 왼손의 주먹으로는 한국 노무현대통령의 왼편 옆구리를 돌려 치려는 위세가 등등한 모습을 그린 만화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부시로부터 급소를 얻어 맞아 녹아웃(knockout)되지 않고서는 핵폐기는 불가능 할 것이다.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지혜롭게 부시의 FTA에 의한 주먹을 피하면서 FTA로 경제동맹을 맺어 승부수를 건다면 경제적 도약의 기회가 올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격투의 링주변에 미국의 전 국무장관 키신저와 올브라이트가 등장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벽두인 2000년 하반기에 남북관계가 급격한 변화가 거듭될 무렵에 미국 국무장관인 올브라이트 (Madeleine Albright,1937-)가 가슴에 하트형 브로치를 달고 평양을 방문 김정일을 만난(2000,10월) 파격적인 사건은 전세계가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환영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의 세계노벨평화상 수상이 올브라이트 북한 방문과 무관하지 않았다.최근에 왜 올브라이트가 나타나 평양을 방문했는지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또한 북한의 핵폐기를 위한 6자회담에 관련하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1923.~)가 나타나 평양을 왕래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평양에 올브라이트와 함께 나타난 키신저는 누구인가 ? 그는 미국 닉슨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써 닉슨독트린에 의해 “파리협정”을 성사시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베트남은 적화통일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독설의 표현을 한다면 키신저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베트남적화통일에 주역을 담당한 특출한 외교관이라 평가하고 싶다.
필자가 평소에 보는 관점인 Fax America시대에 미국의 대한반도의 정책은 이스라엘을 둘러 싼 중동문제와 이라크전쟁에 관련되어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디렘마에 빠진 부시 대통령에게 돌파구를 제공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초점을 두고 있는 유태계인 키신저와 올브라이트가 북핵문제에 관여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북한의 외교부부상 김계관이 미국에 갔을 때도 만찬장에서 만나 자주 접촉이 있었던 사실은 향후의 활동에도 주목이 간다.
한반도의 남북관계가 베트남이 적화통일되기 직전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주월군 초대사령관 채명신 장군을 비롯하여 군사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필자는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주월군 청룡부대에서 전투지휘관인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한 사람으로서 베트남의 적화통일의 배경을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측면에서 아래와 같이 간단히 요약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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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베트남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다가 전후에는 북위 17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할하여 북베트남은 장개석 군대가, 남베트남은 프랑스군대가 각각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북에서 장개석 군은 손을 떼었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베트남 총선을 약속했으나 프랑스 군대가 철수(1954년)하게 되면서 총선이 무산된 상태에서 17도선 이남에 남베트남 공화국(1955년, 고딘디엠 정권)이 세워지면서 사실상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남베트남은 친미정권이 수립되어 미국의 지원을 받게 됨으로써 미군이 파견되고 대규모 군사시설이 건설되었다. 이에 반하여 1960년 12월 남베트남에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결성되었고, 북베트남의 초대대통령(재임:1946-1969년)인 호치민(胡志明,1890.5.19-1969.9.3)의 지원을 받아 베트콩의 세력이 확산 되었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J. F Kennedy,재임:1961-1963.11.22암살)은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억제하여 아시아의 공산화를 막기위한 정책으로 남베트남에 처음으로 미정규군을 파견했고, 이어 존슨 대통령(L.B Johnson,재임: 1963-1969년)은 1964년 통킹만사건(미국구축함에 북베트남이 어뢰정으로 공격)으로 미군을 직접 전쟁에 투입하였다.
그리하여 미국은 통킹만에 있는 두섬을 공격하게 되어 이른바 “통킹만 사건”으로 미국과 북베트남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1968년까지 미지상군 투입이 54만명으로 증원되기에 이르렀고, 미국에서는 반전데모와 반전정서가 확산되는 가운데 1968년 5월부터 평화교섭을 위한 “파리회담”이 계속되었으나 전황은 캄보디아(70년), 라오스(71년)로 확대되기에 일으렀다. 그간 한국을 비롯하여 타이,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뉴질렌드 등 우방국의 지원군이 참전했으나 군사적 승리는 기대할수가 없었다.
미국 닉슨 대통령(R. M Nixon, 재임: 1969-1974. 8월사임)은 닉슨독트린을 발표하여 중국을 방문하는 등 외교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69년 닉슨이 밝힌 아시아에 대한 외교정책인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괌 독트린(Guam Doctline)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닉슨 독트린에 의한 1973년 1월 27일 “파리협정”이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베트남남부공화임시혁명정부(베트콩 주축)의 4자간에 불란서 파리에서 체결되었다. 그 협정내용은 ①미군의 철수 ②전쟁포로 송환 ③현 상태로의 정전 ④남베트남에서의 사이공정부와 임시혁명정부간에 연합정부 조직을 위한 협의 ⑤정치범의 석방 등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파리협정”을 무시하고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베트남남부임시혁명정부는 사이공을 공격ㆍ점령함으로써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은 적화통일이 되고 남베트남은 패망되었다.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대한 적화통일을 위하여 교묘한 유격전술, 대중을 향한 정치투쟁, 남베트남군에 대한 설득 등을 전개하여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면서 미국을 심히 괴롭혔다. 오늘날 북한이 한반도 적화를 위한 통일전선전술을 전개하는 동시에 핵문제로 미국을 괴롭히는 것과 너무나 유사하다.
미국은 세계최강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지칠대로 지쳐 협상에 의한 협정을 체결(1973년 1월) 함으로써 미군은 월남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미군이 철수하자 남베트남의 내부는 더욱 혼란과 무기력 상태에 빠졌으며 군인 마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베트남의 적화통일의 과정을 거울삼아 남한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반미 친북세력과 북한의 정전체제 무력화의 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남베트남의 내부 혼란이 가중되고 있을 때 불교 승려들의 분신자살 소동은 더욱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고,결국 불교 중심 국가 였던 남베트남은 무력에 의하여 미군이 철수한지 2년만에 적화통일(1975, 4, 30)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베트남전쟁은 사망자 120만명(한국군: 4,960명), 부상자 300만-400만명(한국군: 10,962명부상, 고엽제 피해 6,600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 했다.또한 해상으로 탈출한 난민이 15만명이나 발생하여 “Boat People"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우리는 남베트남의 패망의 원인과 결과를 교훈으로 삼기위해 아래와 같이 간추려 본다.
첫째,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의 실체와 음모에 대해 무지했으며, 북베트남 지도자 호지명이 애국자요 반불독립투사라는 환상적인 이미지 속에서 “통일이 되면 지금보다 10배 이상 잘 살게 된다”는 선동의 감미로운 말에 속고 있었다. 그래서 북베트남의 선전과 심리전에 말려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김정일을 영웅이라 생각하는 단체들이 있죠.
둘째,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들은 밤에는 동굴에서 무기를 가지고 나와 미군 및 남베트남군인과 싸우고 낮에는 양민으로 가장하여 도시 및 부락에서 교묘한 이간책을 전개하며, 주민들에게 반미감정을 격화시키면서 미군의 철수를 부르짖도록 책동 하였다. 베트콩이 학살한 민간인들을 미군의 만행으로 조작했고, 미국에서 저명한 흑인 지도자 킹 목사는 “미국 젊은이 들은 자기 양심에 따라 베트남전을 거부하라”고 역설하였다.
=>우리나라의 베트콩은...: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100393&sc=naver&kind=menu_code&keys=1
세째, 북베트남의 간첩들이 남베트남의 대통령의 측근은 물론 모든 기관, 종교, 학계, 언론, 문화, 예술 등의 조직체에 침투하여 거미줄같이 망을 구축하고, 각종 정보를 수집할 뿐만 아니라 교묘한 선전, 모략, 이간책, 경제파탄과 혼란 책동 등 온갖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유포시킴으로써 극도의 혼란과 상호 불신을 조성하여 반목과 불만을 격화 시켰다.
==>우리나라에는 전교조(중고생좌파세뇌),한총련(대학생좌파세뇌),민노총(노동자좌파세뇌),범민련,한겨레,오마이뉴스(좌파에유리한왜곡보도) 등이 있죠.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105052&sc=naver&kind=menu_code&keys=1
(DJ떄 민노당과 전교조가 DJ의 도움을 받아 정식단체로 진출했죠.)
넷째, 전반적인 극심한 부패였다. 정치 지도층, 권력층, 군부 등 각계각층의 만연된 부패로 인하여 베트콩의 활동과 세력확장에 좋은 조건과 절호의 기회를 주게 되었다. 정부(官), 군부(軍), 국민(民)이 상호 불신하고 반목하므로 국민적 단결력과 전쟁 수행 의지와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 질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이 정도까지 부패하지는 않았습니다. 좌파들에 의해 부풀려지는거죠.
특히 남베트남은 적화되기 전에 12번의 군사 구테타와 국방력의 약화,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 의한 내부교란으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을 자초했다.
현재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etnam)은 도이모이(쇄신)노선을 취하면서 경제적 탈사회주의를 선언(1986년)하고 농민들에게 토지의 개인 소유를 허용(1989년)하며 헌법을 개정하여 시장경제의 장려와 외국인의 국내 자산 보유를 허용하는 등의 급속한 변화를 보였으며 한국 기업진출도 활발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키신저의 머릿속에 적회통일된 베트남의 현실에 만족하고 “파리협정”의 환상적인 꿈에 사로잡혀 한반도 문제를 “평화협정”으로 해결하고자 하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된다.
결론적으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가 북한의 핵인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핵폐기를 위한 미국의 대북한정책에 국익차원에서 지혜롭게 대처하고 협력하며,한미동맹체제를 유지하여 한국안보를 튼튼히 지켜야 한다. 또한 한,미 FTA협정에 의한 경제동맹을 강화하여 선진화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할수 있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오히려 FTA로 인하여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고,산업간계층간의 갈등으로 양극화의 현상이 심화되면 IMF사태 이상의 경제적 위기가 올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안보가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고,경제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예상치 못할 정도로 급변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면서 최고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베트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파리협정”이 적화통일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의 교훈을 분명히 상기하면서 한반도의 정전협정체제를 탁상에서 흥정하여 전쟁종식에 의한 “평화협정”의 함정에 빠지게 하려는 전략에 철두철미하게 대비해야 한다.
북한의 위장된 “평화협정”의 전략적 음모(戰略的 陰謀)는 과거 6.25남침의 미완(未完)의 한반도 적화통일을 교묘히 성취,완성하려는 것이다.북한은 6.25의 무력 남침전쟁(武力南侵戰爭)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핵무기와 대량살상 무기의 위력을 보유한 후 한반도 주변 4대강국을 교묘히 이용하여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동시에 무혈 적화통일(無血赤化統一)을 획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베트남이 적화통일 된 역사적 사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우선적으로 우리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남남갈등의 반목을 청산하고, 반미,친북 좌경세력의 발호(跋扈)를 과감하게 삼제(芟除)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때 보다도 절실하다.
<八達山 一隅에서>
원문:
http://blog.naver.com/chungpha?Redirect=Log&logNo=40036126626
어떤 얘기만 해야 한다는건 없습니다. 연기자들을 위한 전용 자유게시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페이문제나 처우개선등에 대한 논의도 이곳에서'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