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당신의 영화를 들려주세요!!
연출부로 참여한 상업영화 두 편째 촬영이 끝났다.
여름에 한편 겨울에 한편..... 아직 두 번째 작품의 후반작업이 남아있지만 뭔가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에게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글을 쓰기로 했다.
일단 촬영이 끝나면 무엇이 제일 힘들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여름촬영이 힘들다 겨울촬영이 더 힘들다 하는 말들은 스탭들만의 넋두리일 뿐이고
어느 감독님의 어떤 성향이 촬영 진행과 영화의 완성도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느냐가
좀 더 영양가 있는 얘기며 내가 대답하기에 가장 어려운 질문중의 하나였다
두 편의 작품 모두 시나리오 작가출신인 감독님의 두번째 혹은 첫번째 작품이었으며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미장센보다는 내러티브에 집중하는 방식 이었다
내러티브를 중시하긴 하지만 영화란 모름지기 미장센이 뛰어나야 하며 화면의 연결과 시각적 아름다움에 심취해서 무엇인가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을 관객들에게 선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시작한 나에게는 두 작품 모두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 들게 한 작품이었지만 시나리오의 내용과 그 구성만을 놓고 본다면 두 작품 모두 내게 많은 도움을 준 시나리오이자 영화라는 것은 충분히 기억할 만하다
이 글을 쓰기로 한 것은 내가 나중에 감독이라는 자리에 위치했을 때 지금 내가 생각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며,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스탭들이 나중에 지금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지금 영화를 만들고 계신 감독님들께서 조금이라도 우리 스탭들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1. 씬 바이 씬(Scene - By - Scene)의 중요성
첫번째 영화에서 씬 바이씬 이라는 작업은 없었다. 감독님이 참석하지 않은 연출부만의 씬바이씬 작업...그리고 두번째 영화 역시 절반의 씬바이 씬 작업을 진행했다. 감독님과 함께한 절반의 씬 바이 씬 작업을... 감독님께서는 직접 쓰신 시나리오였기에 각씬들에 대한 화면이 머릿속에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져있지만 우리들은 각자의 그림들을 어떻게 하나로 모아야하는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콘티작업에 신경을 쓰시고 계신 동안 우리는 그 콘티들이 우리에게 길을 보여줄것이라 기대를 했었고, 각종 문서작업에 진을 빼고 있었다. 하지만 두둥...콘티가 완성되어서 우리눈앞에 펼쳐졌을때 음..그 허무함이란...
여러 키스탭분들과 대표님, 피디님등 여러분들과 계속해서 이어지는 회의와 미팅, 야간미팅(^^) 등에 지친 감독님께 개별적으로 궁금한 점들과 확인받은 것들을 정리해서 하나씩 여쭤보고 확인받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난감한 작업인지 연출부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다들 왠만큼 아시겠지만 그리 원활하게 진행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들과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감독님과의 이해의 차이에서 오는 최종결정단계의 조율은 연출부 한 두명이 각자의 생각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었다. 이 또한 오로지 감독님의 생각을 알지 못한 개인적인 연출부 한명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글이기에 감독님들의 생각과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음..잘 모르겠는데..^^”
"그래...좀더 생각해볼까?", "음..해봐야 알겠는데...", "나중에 다시 보자", "찍어봐야 알겠는데", "그래 니가 생각하는게 내가 생각하는거지...사람들 생각이 다 비슷하지 않겠어?" , "내가 그런것 까지 생각해야 돼?" 등등의 대답들에 지쳐버리면 어느덧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일을 진행해버리게 되고 각 팀(미술,소품,의상,분장 등)에선 애가 타서 직접 감독님을 뵙고 얘기를 진행하고 싶어하나 그 또한 원활하지 않음을 느끼게 되고, 서로간의 약간의 불신(나쁜 의미의 불신은 아님)이 생겨서 의심병이 도지고, 그러다보니 제작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1안과 2안과 3안을 동시에 준비하게 되는 예산과 시간과 인력과 노력의 낭비로 이어지고..촬영현장에서의 스트레스로 고스란히 이어져서 즐겁지 못한 촬영현장 분위기가 조성되고...ㅠ.ㅠ...감독님들은 왜 현장에서 스탭들이 즐거워하지 않는지 눈치를 채지 못하시고, 한국영화제작의 현실을 체감하면서 '왜 이렇게 안되는게 많지?'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고, 다시 조감독과 연출부의 무능함으로 결론지어지기도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또 그렇게 되겠지...
다 연출부가 잘못해서 그런거야!
3달이상의 프리기간동안 문서작업을 하고, 캐스팅을 진행하고, 헌팅을 하고, 스케쥴을 짜고 또 수정하고, 수정과 수정을 거쳐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결정이 내려져 있기를 바라지만 막상 현장에서 수시로 바뀌는 설정과 매회차가 첫회차 같은 정신없는 상황들로 연결되게 된다. 그런 날들은 다 연출부가 잘못해서 그런거란 자조적인 멘트들로 각 스탭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급하게 준비하고 또 수정하고 뛰어다니고 엎어지고 부딪히며 정신없이 촬영을 진행해 나가고 회차가 끝나면 연출파트의 정리는 내벼려 둔 채 다른 팀들이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미안함을 애써 얼굴가득 담고 인사하고 담에 더 잘하겠다고, 죄송하다는 말들을 끊임없이 하면서 감독님 핑계를 대기도 하지만 결국 다 연출부가 부지런하지 못해서, 좀 더 감독님을 귀찮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감독님들을 귀찮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긴장되고 어려운 일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다만 좀 더 노력해서 감독님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듣고 확인하는 작업을 자세히 체계적으로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출부들에게 말을 하는 것 일뿐....그래.. 감독님을 어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감독님이 힘드신 것은 알지만 때로는 모른척하고 좀 더 매달리자. 더 힘들어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말이다.
간혹 즐겁고 편안하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회차가 있다.
아무런 걱정도 없고 모두가 즐거운 상태...그 회차들의 공통점은 사전에 정해진 스케줄대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고, 통제여건이 원활하며, 사전에 감독님께 최종 컨펌 받은 것들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날이었다. 씬 바이 씬 작업을 통해서 감독님이 생각하고 계신 내용과 인물의 감정 기본적인 동선 ,주요 포인트, 단역과 보조출연의 이미지와 역할, 사전에 원할 하게 섭외가 진행된 촬영장소,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만족하는 준비상태가 다 이뤄져서 괜히 마음이 바쁘고 불안하지 않은 하루의 시작을 맞이하는 날인 것이다.
하루(한 회차) 촬영에 필요한 씬 바이 씬 작업의 시간은 대략 20~30분 정도...
각 파트별 담당 연출부가 감독님의 설명을 들은 후 설정들을 확인하고 다시 정리하는데 필요한 시간이다. 1차적인 씬 바이 씬 시간에서는 그 절반정도 . 감독님의 진짜 생각을 확인하는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수많은 문서에 적혀있는 텍스트와 이미지들로 복잡하게 나열된 것이 아닌 깔끔하게 정리된 몇 줄의 코멘트...그것을 전 스탭이 공유한다면 얼마나 수월하게 촬영이 진행되겠는가? 그러니 제발...우리 연출부들은 나중에 감독의 자리에 서게 되면 씬 바이 씬 작업 제발 제대로 하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감독님!! 당신께서 그리시는 영화를 들려주세요
그것이 영화현장이 즐거워지고 퀄리티가 높아지고 관객들을 즐겁게 만드는 초석이 되는 것임을 꼭 기억해주세요!
어떤 얘기만 해야 한다는건 없습니다. 연기자들을 위한 전용 자유게시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페이문제나 처우개선등에 대한 논의도 이곳에서'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