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
어느새 내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하고 흘러내렸다. 그녀가 겪었을 그 고통이 내 가슴속에 찢어지듯 전해왔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그 좁은 버스안에서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어떠한 생각도 할 기회조차 없이 죽어갔을까. 그녀의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림같이 그려지며 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다리에 힘을 넣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가 겪었을 공포와 고통을 생각하니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숨조차 제데로 들이킬수가 없었다. 아아..보고싶은 그대여...
내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니 눈물이 쏟아졌다. 난 그녀의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엎드려 통곡을 하였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을 그녀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리고 내가 아니었다면 아직 평범한 어여쁜 여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그녀의 가족과 그녀에게 너무나도 큰 죄를 지어버렸다는 생각에 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런 날 말없이 바라보시던 그녀의 아버지께선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르려 주셨지만 그럴수록 내 감정은 더욱 격해져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지켜주지못해 억울하고 분한마음과 그동안 그녀를 의심하고 미워했던 죄책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난 더욱더 울부짖었다. 그렇게...아주 오랫동안 난 그녀의 집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 후 나는 내방에 누워 화장실도 가지않고 계속하여 끙끙앓았다. 가족들은 내가 무슨 병이라도 걸려서 온건 아닌지 걱정하였지만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말그대로 남은 4일동안은 벙어리가 되었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지도 모른체 난 방안에 처박혀 모든 휴가를 흘려보냈다. 휴가복귀당일 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부대로 되돌아갔다. 정확히 표현을 하면 부대로 배달되었다는 표현이 알맞은 것 같다. 부대에 복귀한 나는 완전 폐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눈은 반쯤 풀려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귓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리하여 복귀날부터 신나게 두들겨 맞고, 지옥같은 군생활을 반복해갔다. 하루하루 고참들의 갈굼과 구타를 몸으로 버텨가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그녀의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너는 지금의 나보다 더욱 힘들었을꺼야..얼마나 괴로웠을까.."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콱 박혀버려서 난 말그대로 고문관이 되어버렸다.
내가 상병이 되었을 무렵. 점점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현실을 자각해서인지 그녀의 생각외에 빈틈으로 다른 무엇인가가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즈음엔 고참들의 갈굼과 구타가 나를향해오는 일이 없었다. 그 이유는 내모습을 지켜보던 중대장님과 행보관님이 나를 따로 불러내셔서 심문하여 난 사실을 말씀드렸고, 그사실을 중대원들에게 알려 내 고참들은 그동안의 행실이 미안했엇는지 더이상 나를 괴롭히진 않았다.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 생각이란 녀석은 이런녀석이다.
'나..이대로 계속 세상을 살아가야할까?'라는 생각이었는데, 삶에 의욕도 없어지고 그녀가 없는 세상에 나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도저히 살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었다. 난 군대에있던 고참과 후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했다.
"행복이라는 날개가 하늘로 떠나가버린다면, 당신은 더이상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행복이 없는 세상에 살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곤 했는데, 고참이나 후임병들은 내 사정을 잘 알고있기에 혹여나 자살이라도 하게 될까봐 항상똑같이 위로하며 격려하는 대답뿐이었다. 그 대답에 질려버린 나는 새로 전입해오는 신병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어리버리한 신병들은 그저 좋은쪽으로만 대답할 뿐, 고참에게 찍히게 될까봐 솔직하지 못한 녀석들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내가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아 말년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말년휴가기간에는 그녀의 성묘를 갈 생각이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곁에서 그녀와 같이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난 말년휴가를 나와 그녀가 세상을 떠난 그날. 그녀의 성묘를 가기위해 또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했다.
그녀의 묘가 어디있는지 주소는 알지만 자세한 위치는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한 정류장 까지는 기억하겠지만 버스에서 내리고 난 후 부터는 도무지 어느쪽으로 가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시골이었기 때문에 이곳이건 저곳이건 다 같은 산길로 들어가는 길 같았다. 휘갈겨 그린 약도 한장만을 들고 찾아가려니 끙끙 애를먹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저씨. 서울사람이야?"
아직 어린 꼬마여자아이였다. 서울사람이라고 물어보며 신기한듯 날 바라보는 아이는 아마도 이동네에 살고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 꼬맹아. 너 이동네에 살고있니?"
라고 말하자마자 주먹으로 나를 때리는 아이.
"꼬맹이라고 하면 또 때린다!!!"
라고 외치며 날 찌릿 하며 째려본다. 물론 아프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작은 아이라도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생각에 괜시리 미안해졌다.
"에고 미안미안!오빠가 실수를했구나."
"오빠는 무슨..아저씬데!"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나 난 꼬마아이에게 약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어찌나 영악한지 수고비로 과자를 사주면 알려주겠다고 하여 난 그러겠다고 한 뒤, 정류장 옆 슈퍼에 들어가 과자를 잔뜩 사다주었다. 꼬마아이는 신이나서 과자를 입에 마구마구 쑤셔넣으며 "똬하아 어쁘(따라와 오빠)."라는 말과할께 내 손을 잡고 앞장서서 길을 나아갔다.
걷다보니 길이 조금 험하긴 하지만 그리 복잡한 길은아니라 다음에 올 때에는 한번에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의 묘가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녀의 묘를 보자 난 다시 눈앞이 흐려지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녀의 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빠. 여기가 누구무덤이야?"
난 지갑에서 그녀의 사진을 꺼내어 꼬마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사진을 보여주자 아이는,
"우와~이언니 디게 이쁘다~."
라고 말하며 뚫어지듯이 처다보더니 이내 감탄을 멈추고 내게 물었다.
"이언니 무덤인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꼬마아이는 '흐음~'하는 소리를 내며 잠시 서있더니 그녀의 사진을 그녀의 묘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내 옆에서서 가만히 나와 묘를 번갈아 지켜보았다. 난 준비해온 목화꽃을 그녀의 묘앞에 내려놓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난 꼬마아이를 보며 말했다.
"작은아가씨. 만약에..너에게 가장 소중한 무엇인가가 다시는 볼수없는 곳으로 떠났다면 넌 따라갈거니..?"
라는 대답에 꼬마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오빠에게 가장 소중한 이 언니가 있는곳으로 오빠도 갈 생각인데..어떻게 생각하니?"
보나마나 뻔 한 대답이 나올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의외의 답변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가도 되고 안가도되고. 아니면 데려오던지~"
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다시한번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말이니?"
"오빠가 언니를 따라가는 것도 좋지만 따라기지 않는것도 좋지.아니면 데리고 오는 것도 좋다는 말이야."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거니?"
"아니. 오빠가 언니를 따라간다면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수 있어서 좋긴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따라온 오빠를 이 언니가 좋아할까?아마 나라면 혼내줄 것 같은데? 그리고!! 오빠 가족들을 생각해봐!! 바보같은 오빠때문에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할텐데 생각은 해보고 그런생각 하는거야?"
여기까진 내가 항상 듣던 말이다. 헌데 이 다음말은 나에겐 정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니깐 데리고 오란말이야. 오빠에게 이 언니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이곳에 남아 그 언니를 하늘에서 데리고와. 그래서 오빠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해둬. 좋았던 기억도,슬펐던 기억도,행복했던 모든 것들을 오빠의 마음속에 담아두면 언니는 다른곳에 가지 않고 항상 오빠의 곁에 있게되는거니까. 그러니까..바보같은 생각은하지마.."
라며 아이는 날 꼬옥 껴안아 주었다. 순간 무언가 머릿속에서 '탁'하는 무엇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마음속에 굳게 닫혀있던 고정관념 이라는 문이 자물쇠가 끊어지는 소리였다. 도저히 이런 어린아이에게선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말을 들은 나에겐 그 내용보다도 의외의 상황을 연출하는 모습이 그녀와 너무나도 닮아보였다. 난 아이를 꼬옥 안고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단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었던 그녀의 모습이 이런 어린아이에게 비추어져 잠시나마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 아이에게 고마워하며 이내 또다시 눈물이 왈칵 흘렸다. 그날 난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던 마음을 뒤로 미루고 아이와 함께 산에서 내려왔다.
"오빠 다음에도 또 올꺼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내년 이맘때 다시 오도록 할께. 그때까지 오빠가 문제하나를 내도될까?"
아이는 날보며 "응!"이라고 말했다.
"난 아직 그녀를 따라갈거란 생각엔 변함이 없어. 하지만 오늘 너를 만나서 조금은 변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단다. 앞으로도 내 마음을 결정못해 방황을 할 것 같아. 내년에 내가 다시오면..그때 다시한번 너의 생각을 말해줄 수 있겠니?"
진지한 내 말에 아이는 씨익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과자 사주면 대답해 주~지."
하늘은 맑고 공기역시 상쾌하다. 적당한 세기로 불어주는 사람은 이마에 흐르던 땀을 식혀준다. 푸른 하늘아래, 묘앞에 있는 그녀의 사진. 그녀를 보며 난 이야기한다.
"앞으로 이곳엔 오지 않을꺼야. 이곳에 오면 왠지 슬픈 일들만 생각나니까. 널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 앞으론 내 가슴속에 너와의 좋았던 추억만을 새겨놓고 네가 보고싶을 때면 언제고 꺼내보도록 할께. 넌 나와함께 나이를 먹으며 기쁜일과 슬픈일 모두를 함께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 마음속에서 아주 많이 노력하도록할께.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널...죽어도 잊지못할꺼야."
그녀는 내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사진속에선 너무나도 해맑게 웃고있다. 해는 노을을 그리고 있고, 달은 이제막 잠에서 깨어나려 하고있다. 밤하늘에 별이 흐릿하게 반짝이며 내가 내려가야 할 산길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험난한 길과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귀가를 재촉한다. 그녀의 사진은 다시 지갑속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어낸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묘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마지막 인삿말을 건넨다.
"넌..그곳에서 행복하니...?"
행복했던 이야기...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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