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을 말하다

montazu
2003년 06월 02일 18시 06분 29초 2917
까만 얼굴에 빡빡밀어버린 머리

사이사이 흰가닥이 보이는 조금은 덥수룩해진 수염

조감독님이 선물해준 약간 복고형의 동그란 안경에 변색 렌즈

빨간 모자, 빨간 셔츠, 검정바지에 등산용 샌들

일명 나까무라가 연상되는... 우리 감독님이십니다.

말하는 것이 제일 좋은 감독님... 밤이 새도록 혼자 이야기하셔도 지칠 줄을 모릅니다.

그사이 스텝들은 한 숨자고 또 일어나도 일장연설은 계속됩니다. --;;;

술을 잘 못하시는데, 오랫만에 연출하시겠다 맘먹고선 스텝들하고 이야기 하려면

술 연습해야 한다고 작년부터 매일 소주 한잔씩을 드셨다고 합니다.

요즘 감독님은 알콜중독 증세를 보이십니다.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시면 속이 허하다고...

그렇다고해서 주량이 많이 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 술마시는 동안 한두잔 놓고 계속 이야기를 하시지요.

스물둘에 결혼해서 이제껏 가족에게 할만큼 했고, 이제는 홀로서기를 하고 싶으십니다.

그 첫번째로 가출입니다.

촬영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자취 생활을 하시겠다는 감독님,

그러나 우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숙소에서 한시간도 혼자 못계시는 감독님이십니다.

매일 연출부와 기사님들을 찾습니다. 목적은 콘티라는데,

우린 심심한 것이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회사의 사장으로 자리매김하시면서 비즈니스를 위해

해외 영화제도 자주 다니고, 골프도 치고, 차도 그랜져XG지만

천성이 럭셔리하지 못하다는 감독님은 충무로 닭꼬치집에서 소주 한잔이면 만고 땡! 입니다.

미대에 다니던 중 덜컥 사고를 쳐 이십대 초반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감독님은

김 외판원, 청사 수위, 극장 간판 그림 그리고 영화 마케팅을 거쳐 키드캅이라는 영화를

감독하면서 (주) 씨네월드를 만드셨죠.

이후, 외화 배급을 하고, 5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이제는 감독을 하고 싶으시다고 하십니다.

우리 감독님 직업이 몇가진 줄 아십니까?

김외판부터 감독까지... 서른 여섯가지의 직업을 거치셨다고 합니다.

감독님 연세는 마흔 다섯입니다.

이따금 감독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바쁘게 살아온 인생의 선배같은 느낌이 더 짙죠.

몸이 깨끗한 사람은 안 씻어도 된다. 몸이 더러운 사람들이 씻는 거다.

난 몸이 깨끗하니까 안 씻어도돼.

요즘은 촬영 기사님에게도 전위된 것 같습니다.

빨래하는 게 싫어 옷도 단벌입니다. 통풍이 잘 된다는 등산웨어 한벌이면 한달을 지내십니다.

작년에 연출부 용기 오빠가 참다 못해 콘티 회의차 지방에서 합숙할 때

몰래 빨래하러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30분이 지나도 안 나옵니다.

연출부 오빠들이 찾습니다. "용기야 뭐해?"

화장실 문을 열자 용기 오빠... 손에는 비누를 흠뻑 뭍히고, 얼굴은 누렇게 떳습니다.

"형... 거품이 안나요..."

나름대로 감독님도 충격을 받으셨는지 이번에는 한 세벌은 가져 오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선은 붕어찜이신 감독님.

어제 식당에선 얼리지 않은 싱싱한 생선이 나왔습니다.

모두들 감탄하며 먹는데, 대체 이게 뭔 고긴지... 궁금했더랬죠.

감독님은 대뜸 제작부를 부르더니 "이거 붕어냐?"

우리 감독님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허허실실... 오케이! 오케이!를 연신 내뱉는 감독님...

하지만 일년 동안 뵌 결과 <이런 사람이 더 무섭구나>싶습니다.

잔머리 굴리며 계산하는 사람 안 좋아하고, 단순하지만 있는 감정 그대로 표현하는

순수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시도때도 없이 연출부를 찾아대고, 한번 이야기 시작하면 칠판까지 놓고 일장 연설을 하시지만

밉진 않습니다.

다만, 감독님... <우리에게도 자유시간을 달라!!>

귀도 얇고, 한 입으로 두말하기를 매일매일 하시는 감독님...

그래도 제일 무서운 사람들이 조감독님과 연출부라고 하십니다.

똥고집 부리시다 일이 틀어지면 조감독님한테 야단도 맞으시고,

기껏 밤새 고민해서 콘티 들고 나타나면

거침없이 반박하는 연출부들 이야기에 얼굴이 빨개지시는 감독님,

그래도 아직은 우리들을 믿어 주시고

저희 역시 이따금 안타깝고,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믿어야 한데이>라고 맘을 다집니다.

그래서 서로 배우고, 느끼고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요.

멋지지 않나요?

사람을 아낄 줄 아는 감독님... 대박을 위해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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