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당연한 소릴하냐고?
너무 당연한 소릴 하는거다.
시나리오는 쓰기전엔 시나리오가 아니다.
세상이 놀라고 영화제작자가 오줌을 질질 흘릴 아이템도 끝까지 써내려가야 시나리오로 취급받을 수 있다.
아니 설령 그런 기가막힌 아이템을 갖고 있더라도 머리속에서만 굴러 다닐땐 그건 잡생각에 불과하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 보면 이외로 쓰지 않는 작가들이 꽤 있다. 왜 그러는 걸까?
먼저 숙성형 작가들을 들수있다.
머리속에 들어 온 아이템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서 충분히 숙성될 때까지는 안쓴다는 주장이시다.
훌륭하다.
당신은 대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다.
하지만, 그건 대가가 된 다음에 해라. 당신은 아직 대가가 아니다.
(혹여 시나리오의 대가가 이글을 읽고 있다면 쓸데없는 짓하는 거니까 놀이터란에서 음악이나 들으시라)
당신같은 초짜가 아이템 숙성시킨답시고 머리속에서만 아이템 굴리다간 반드시 그거. 썩어문드러진다.
현실적으로는 충분한 훈련이 없이는 머리속에서 숙성시킬 수도 없다.
머리속에서 아이템을 숙성시킨다는 것은 상당한 내공을 요하는 일이다.
잡생각 할 거 없다. 그냥 써라. 왜? 그런거 묻지마라. 오늘 아이템이 떠오르면 그냥 쓰기시작하시라.
당신은 충분한 실패를 경험해야할 초짜아니신가.
두번째로는 안락형 작가의 경우다.
머리속에 들어 있는 아이템은 달콤하다. 하지만 그것이 시나리오의 형태로 바껴나가면서
달콤하던 열매는 고통으로 변해 버린다.
처음에는 그리도 아름답던 아이템이 추악한 마녀로 돌변하면서 계속 당신을 괴롭히다가
급기야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초라한 잡설로 전락해 버린다.
안락형 작가의 경우는 달콤한 쾌락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서 손가락을 놀리기보다는 머리속에서만 뱅글뱅글 굴리면서 환락의 시간을 연장한다.
이건 약도 없다. 그냥 써라. 고통도, 매도 맞다보면 내성이 늘어난다. 그러니까 쓰시라.
당신은 환락에 시간을 허비할 새가 없는 초짜 아니신가.
세번째로 소심형 작가가 있다.
머리속에 들어 있는 아이템은 훌륭하지만 그걸 써 내라가다보면 남 보여주기가 겁이난다는 종류다.
다른 작가가 쓴 글 을 읽어보면 문체가 날아다니고 묘사는 춤을 추는데 너절한 자신의 글쓰기는 되려 훌륭한 아이템에 누가된다는 거다.
절대 그런 일없다.
당신의 글쓰기가 너절한게 아니고 아이템이 너절한거다. 이건 인정하기 실으실거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시도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영화화를 목적으로 한 바탕이 되는 스크립트다.
그리고 영화는 혼자서 하는게 아니다. 시나리오 읽으면서 문체가 허접하니까 이 아이템 별로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넘 븅신이다. 절대 그런 일없다.
행여 눈뜨고 읽지 못할정도로 문체가 허접하드라도 아이템이 훌륭하고 그걸 제대로만 풀어냈다면 문체야 읽기 거슬리지 않을정도로 다른 사람이 다듬으면 될 일이다.
문제는 당신의 소심성에 있다. 그러다가 평생 한 작품도 못쓸수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인터넷 게시판에라도. 부지런히. 글 써보는 습관이라도. 들여보시라.
당신의 글에는 감동이 있다. 분명히.
당신은 위대한 초짜 시나리오 작가 아니신가.
마지막으로 완벽형이다.
이 경우는 숙성형 작가가 위험스럽게 진화한 경우다.
어쩌다가. 화장실에서 응가라도 하다가 떠오른 아이템을 가지고 지상최고의. 불후의 명작의 모태가 될. 그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그런 아이템으로 착각한 경우, 이런 유형이 종종 나타난다.
그 불후의 아이템에 걸맞게 완벽한 작품이 나와야 한다고 굳게 믿는 작가는 모든 자신의 역량을 바쳐, 심지어는 끼니마저 거르며 이 하나에 몰두를 한다.
도입만 수십번 고쳐보고 일년이고 이년이고 시높시스의 정교함에 올인한다.
이거 정말 위험하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시나리오가 누구에게 씹힌다면?
거의 살의를 품고 달려든다. 그리고 세상은 명작을 알아보지 못한다며 세상을 원망하는 지경까지 나아간다.
정신차려라. 명작 아니다.
그게 그렇게 명작이라면 애시당초 그 시나리오 당신 손에 없을거다.
명심하자. 무릎까지 써보기전에는 당신 손에서 절대 명작 안 나온다. 어떤 경우든 부동의 진리로 받아들여버리자. 그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당신의 손에서 탄생한 시나리오는 언제든지 쓰레기통에 쳐박을 준비가 된 초짜 시나리오 작가의 시나리오다. 잔인해지시라.
누구는 두번 째. 혹은 첫 시나리오부터 떳다고? 오호. 그럼 당신도 로또 함 사보던지.
다소 거칠게 안 쓰는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해서. 다소 장황하게 늘어 놓았지만 결론은 단 하나다.
종이에. 꺼먼 활자가 박혀 있는 게. 아니면 시나리오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가 시나리오가 없다면 개가 웃을 일이다.
견계에서 개그맨으로 나설게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써라. 당장.
아, 지금은 시간이 없다고.
목욕재계하고 유니폼 챙겨 입고 면벽 수도 쫌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쫘악 써내려갈 시간을 확보하고난 다음에 진짜 제대로 써보겠다고?
평생 그런 시기가 안 올걸? 변명이 필요없다.
시나리오를 써보겠다면 지금 당장 써 보시길....
(얼마전 감독준비를 하는 후배가 찾아 와 고민을 털어놨다. 일년간이나 조물딱 거리던 시높을 정리하고 새로 다른 아이템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말. 그리고 이번에는 조만간 시높을 보낼테니 모니터링 좀 부탁한다는 요지. 이 넘 저번 아이템은 완성될 때까지 안 보여준다며 고집을 부렸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긁어내린 글이라 기분이 상하셨을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는. 당신들의 기분따위야 내가 무슨 상관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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