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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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그냥 적어봤습니다.

CapEx
2019년 09월 30일 23시 32분 11초 115634

무제

 

나에겐 네 명의 대학교 친구가 있다. 서울 토박이 A D, 그리고 어릴 때부터 친구인 BC. 우린 정말 잘 맞았다. 정말로. 9시 수업 땐 9 5분에 지하철 개찰구에서 서로 마주 보며 또 늦었냐라며 나무라며 뛰기 시작했다. 중간, 기말이 끝나면 늘 학교 쪽문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거하게 소주를 마시고 한강 둔치까지 걸어가 치킨과 맥주를 마셨다.

이런 우리가 늘 갈라지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도서관 정문에서였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지하 2, 지상 9층짜리 건물이다. D는 항상 지하 2, 그러니까 맨 밑에서 공부를 했다. 반대로 A는 항상 꼭대기 9층으로 향했다. BC는 각각 5층과 3층에서 공부를 했다. 문득 이유가 궁금해서 애들한테 물어봤다.

, 니들은 왜 다 다른 층에서 공부하냐?”

그러자 A가 말하기를,

“9층에서 밖에 바라보면 진짜 이뻐!”

에휴, 다 부질없다. 뭔 소용이냐 그게. 지하 2층 오면 깜깜 해가지고 공부하기 좋아.” D가 말했다.

C는 그런 D에게,

요즘 젊은 것들은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 ! 해질녘 하늘도 좀 보고, 봄이 오면 벚꽃 지는 모습도 공부하다 튀어 나가서 봐야지 인마.”

BC를 바라보며,

병신, 니 학점이 그러니까 그 따위지. 에휴. 10분에 한 번씩 벚꽃이 지냐? 이 새낀 자리에 앉아서 10분이면 쳐 기어나가요, 아주. 내가 그래서 5층으로 옮겼다. 공부 좀 해라 제발.”

참 같으면서도 다른 네 명이다.

그리고 다르면서도 같은 네 명이다. 친구들은 다 회계사를 준비했다. 다들 휴학을 하고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A는 바로 종로로 가서 학원을 등록했고, BD는 학교 고시반에 가입을 했다. C는 일단 휴학은 했다. D랑 반반해서 인터넷 강의도 끊었다. 열심히 듣지는 않았지만, D에 비해서. D는 절박했다. 자신이 투입한 돈과 시간을 합격으로 보상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차라리 공무원을 하라며 원성을 듣기도 했다. B는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었다. A도 열심히 하는 듯 보였다. 가끔 인스타에 가족끼리 해외여행 간 사진도 올라오긴 했지만.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공부를 한 지 거진 1년이 지났다. 1차를 합격한 사람은 B 한 명이었다. 합격이 난 바로 다음 날, 우리 모두가 오랜만에 그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한잔 했다. C는 역시 내 친구라며 제일 신나게 마셨다. A도 축하한다며 골든벨을 울리기로 했다. DB도 술잔을 부딪혔다.

같이 합격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내년에는 꼭 합격한다.”

미묘했다, 둘 사이의 감정은. 그러나 진심이었다, 그들이 나눈 대화는.

다 같이 학교로 돌아온 후 B는 고시반을 나가 7층에서 혼자 공부했다. C는 갈 길이 아닌 것 같다며 포기를 했고, A는 학교와 학원생활을 병행했다. D는 여전히 지하 2층에서 공부를 하며, 후문에서 알바도 했다.

시간이 흘렀고,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D의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우린 다 같이 모이길 바랐으나, D는 원치 않는 눈치였다. D의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합격하는 것.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어두운 지하 2층을 벗어나 3층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약간 밝아진 것? 그뿐이다.

매미소리가 선선한 바람소리로 바뀐,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BD는 최종 합격을 했다. D는 소식을 듣고 B가 있는 7층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B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D는 조심스레 8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반쯤 올랐을 때, B의 실루엣이 보였다. 창밖을 지긋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DB는 서로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B가 말했다.

하늘 참 이쁘다. 이게 A가 말한 모습일까? 우리 9층 가볼래?”

아니5층이 편해. 5층에 있을래 그냥.”

B는 서운했지만 D의 심정을 이해했다. B5층까지 걸어서, 8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지만 D는 지하 2층에서 이까지 걸어올라 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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