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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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분명 이곳에

ty6646
2009년 03월 15일 01시 31분 26초 1896 1
옛날 집을 허물고 신축한 콘크리트 새집엔 아들내외가 살고
소여물먹이는 문간방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내신다.
며느리가 차려온 손바닥만한 밥상위엔 두어가지 반찬이 있고
아들내외의 밥상은 한사람이 들고일어설 수도 없을만큼 무겁다.


할머닌 중풍으로 거의 전신마비를 앓으셨다.
하루종일 누워만 계셨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 곁을 지키셨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는 농사짓기에 바빠서 할머니를 돌봐드릴 형편이 아니었다
식사때가 되면 노부부가 지내는 방안으로
작은 상에 차려진 식사를 던져놓듯 놓고는 사라진다.
그래도 밥을 굶기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할머니 속옷은 할아버지가 손수 빠신다.
할머니 얼굴을 씻겨드리고,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얹어 할머니에게 먹이신다
명절이라 찾아온 나이 어린 손주들은 밖에서만 빼꼼히 인사하고는 사라지고
어쩌다가 방안에 들어와서는 냄새난다며 코를 막고 여기저기 킁킁거리고 그랬다.
그럼에도 순주를 바라보는 노부부의 눈망울은 깊고 따뜻했고
깊게 패인 주름사이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라는 소식을 받고 시골로 내려갔다.
마을사람들과 친지분들이 많이 모이셨고 며느리의 화기애애한 모습도 보였다.
마지막 할머니의 상여가 나가던 시간, 마당을 한바퀴 빙 돌던때
그때까지 굳게 닫혀있던 문간방 방문이 슬그머니 열리면서 할아버지가 상여를 바라본다










아.......










어린 손주는 보았다.
대문밖으로 나가는 할머니 상여를 한없이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쭈글쭈글하던 눈매사이로 물줄기 하나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의 할아버지께서 나의 할머니를 바라보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할어버지께서 돌아가셨다라는 소식을 듣고 시골로 내려갔다.
상여맨앞에 선 손주는 푸르고 맑은 가을 바람을 맞으며 굽이굽이 산길로 걸었다
그리고는 할머니 옆에 할아버지를 모셨다.
두분 곁에 앉아 바라보는 멀고 먼 곳엔 어렴풋이 바다가 보인다.






반세기 조금 더 전에
건장한 청년하나와 건너마을 총각마음까지 설레게했던 앳된 처녀하나가
부부의 연을 맺는 식이 그 시골마을 언저리에서 있었을 것이다.


부부가 된 여자와 남자는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사랑하여
귀엽고 사랑스런 아들과 딸을 가지게 되었고, 보릿고개시절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냈다.
힘들고 어렵고 울고싶을땐 젊은 부부는
손을 잡고 멀고 먼 곳에 어렴풋이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반세기 조금 더 전에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건강하고 행복하던 젊은 부부가 분명 이곳에 있었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anicted
2009.03.22 06:41
지금은 더 좋은곳에서 더 행복하게 함께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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