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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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일상과 나

moosya
2008년 10월 03일 03시 18분 51초 1978
'내가 나일까.'

나는 거의 거울을 보지 않는다. 어차피 자아에 대한 개념은 관념적 망상에 가까우니깐.
그러다 가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이렇게 속으로 말을 한다.

'내가 나일까, 거울 속에 비친 이 생물체는 무엇일까, 나라는 개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과연, 나는 무엇일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과 사건들의 총체인가?
그렇다면 나는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단지 기억의 큰 창고일 뿐이지 않는가.

나는 살아오면서 마음 먹은 것에 대해 실패해 본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순탄했었고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어떨 땐 오만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만큼. 하지만 내가 그렇게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내가 원래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운이 좋게도 일이 잘 풀려서 실패해 보지 못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근래에 나는 모든 것이 실패하고 있고 그래서 자신감도 없다.

환경이 나를 지배하는 것일까. 내가 환경을 지배하는 것일까.
다시 이야기해서 일상이 나를 만드는 것일까, 능동적으로 나라는 자아가 일상을 조직하는 것일까.
고민의 결론은 일상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담론은 거부할 수가 없다.
나는 시궁창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내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며 그것을 확신했다.
일상이 자아를 결정한다. 그래서 지금 나의 자아는 실패한 전형적 인간의 모습을 띄고 있다.

하지만 한 가닥 희망이 있다.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다.
비록 나의 무의식이 주어진 일상과 환경에 내 이성이 닿기도 전에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하여도,
이성이 힘들게 부여잡고 있는 그 끈들을 놓지 않는다면,
힘들지만 끝까지 부여잡고 조그마한 반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반전은 있다. 생물적으로는 돌연변이, 심리적으로는 돌출행동.

그 어떤 생물이라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합리화 할 수 밖에 없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존재적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모순은 거기에서 온다. 스스로를 부정할 수 있을 때 반전을 올 것이다. 환경에 지배받지 않는 환경을 재조직하는 능동적인 인간.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부정에서부터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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