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방안에 있는 포터에선 하얀 김이 뿜어지고 있다.
커피잔에 미리 넣어둔 커피 한 숟가락과 프림 두 숟가락,
그리고 사 놓은지 오래되어 각설탕이 되어버린 가루설탕을 한덩어리 깨서 넣고
방금 끓어오른 물을 붓고 잘 저으면 내 마음도 저렇게 고운 갈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 같다.
난 지금 컴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나 잠시 시간을 내어 이 순간, 아무 생각없이 입을 벌리고 가만 있는다.
깊은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그러면 내 앞에 놓여진 커피잔에서 피어 오르는
따스한 커피냄새가 세상 공기로 거칠어진 내 목구멍을 씻듯 그렇게 샅샅이 훑고 내려가는 것 같다.
그 어떤 푹신한 침대위에서보다 바로 이것이 내가 고집하는 쉰다는 것에 대한 마음이다.
밖에는 삼일째 계속되는 봄비가 어린아이들의 솜살처럼 내리고 있다.
도로위를 소복히 덮고 있는 많은 벗꽃을 보면서 꽃은 나무가지 끝에서만이 아니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도 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내일 쯤 봄비가 그치고 햇살이 내리쬐면,
물기마른 꽃잎들은 봄바람에 실려 어디론가로 하나둘 떠나갈 것이다.
내년 이맘쯤에 오늘 처럼 그 자리에 솜사탕인 듯 쌓여있을 꽃잎은
오늘 내가 본 그것과는 다르겠지만 어쩌면 일년을 기다린 내 그리움을 받아
되돌아 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되는 것일까....
기분 좋은 이 시간, 기분 좋은 이 시간, 기분 좋은 이 시간.......
밖에서 내리는 봄비가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고, 물끓는 소리도 들리고,
물길을 헤치고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도 들리고, 들뜬 마음같은 꽃잎들의 속삭임도 들리고,
그래서 오케스트라 같이 재잘거리는 그네들의 중심에 내가 졸듯이 미소짓고 있다.
기분 좋은 이 시간, 내년 봄에도 찾아오시길,
그리움 안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찾아가시길,
그리고 내후년에도, 그 내후년에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매년 만날수 있는 마음이기를 쑥스럽게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