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 와서 4년간 버스를 탄 적이 없다. 동경은 전차시스템이 완벽에 가까울만큼 잘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버스가 아니더라도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구석구석까지 잘 정비된 전차와 지하철만으로도 어디든 갈 수가 있으며, 간혹 택시를 이용하기도 하였으므로 버스의 필요성을 전혀 못느꼈다. 그러나 버스를 타지 않은 진짜 이유는 필요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
중, 고교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10여년전 대학시절만 되돌아봐도 내가 통학때 타고다니던 버스는 거의 청룡열차 수준이었다(-_-) 20번과 30번이 학교로 가는 버스다. 그런데 노선이 똑 같다. 간혹 두대가 앞뒤로 같이 오게되면 승객들은 자연히 뒷차를 타게된다. 왜냐하면 뒷차는 비어있고 앞차는 만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객을 한사람이라도 더 태우기위한 두 버스의 경쟁은 마치 자동차경주를 방불케하는 곡예운전 바로 그것이 되어버렸다.
20번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온다. 그런데 승객이 나를 포함해서 두명이다. 그러면 20번은 서지도 않고 달려버린다. 왜냐하면 다음 정거장은 시내이기 때문에 승객이 많다. 그러다보니 다음 정거장의 승객들을 태우기위해 내가 있는 정거장은 그냥 지나쳐버린다. 어차피 뒤에 30번이 달려오기 때문이 30번을 타라 이런 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30번은 아예 정거장 근처도 안오고 일차선으로 마치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고속버스처럼 그냥 통과해버리고 만다. 그럼 난.......(-_-)
20번 버스를 탔다. 그런데 바로 뒤에 30번 버스가 달려온다. 이제 두 버스의 레이스는 누가뭐라고 말안해도 시작한 것을 모든 승객들은 알아채고 버스 손잡이를 단단히 잡는다. 간혹 눈치없는 사람들이 있기도하다. 그래서 그들 눈치없는 승객들로 인해서 곡예운전은 극치를 더하게된다. 왜냐하면 두 버스가 한창 경쟁하듯 달려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정차버튼을 누른다. 20번이 달려가다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선다. 그러면 승객은 버스가 서기도전에 일어서서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한다. 그렇지않으면 운전기사한테 한마디 듣거나 그냥 출발해버리기 일쑤이다. 아무튼 그렇게 급정거해서 한사람을 내린 버스는 자신을 추월해 달려가는 30번 버스를 따라잡기위해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추월은 기본이고 간혹 반대편 차선으로도 들어갔다가 나오기도한다.
버스안에 학생들이 꽉 차서 더 태울수 없을땐 다음 정거장의 학생들을 태우기위해 버스안에 공간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 그럴땐 커브길에서 획 돌려버리면 학생들이 한쪽으로 밀려서 오징어처럼 납작해지고 그만큼 공간이 더 생긴다. 아무튼 그렇게 20번과 30번의 경주는 눈썹이 휘날릴만큼 치열했고 뜨거웠다. 그러던 어느날 자고 일어나 학교갈려고 정거장에 서 있었더니 이상한 번호를 단 버스가 한대 오는게 아닌가. 그것은 20-1...... 그때부터 새로이 늘어난 번호가 가세해서 레이스의 열기는 한층 더 심해졌다. 20, 30, 20-1, 30-1, ........(-_-)
일본에서 버스를 탈 때가 있으며 반드시 택시를 탄다. 기본요금 660엥을 주더라도 200엥짜리 버스는 타지않는다. 한국에서 그렇게 진하게 경험했는데 말도 안통하는 이곳 일본에서까지 그런 일을 당하면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일본와서 4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버스를 탄적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날 동경 입국관리소가 이주했는데 전차는 없고, 택시를 타기엔 돈이 아깝고, 그렇다고 걸어가기엔 너무 멀고, 그래서 뻘쭘하게 남들 하는거 보고 있으려니 딱 맞게 입국관리소행 버스가 오고있는게 보였다. 한번 타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음부턴 택시를 타야겠다라고 생각하고는 눈딱감고 버스에 올랐다.
일본버스......... 경이로움, 바로 그것이다. 일단 안내방송이 나온다.
'다음은 무슨무슨 곳이니 내리실 분은 버튼을 누르시고 버스가 선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한국에 있을때 안내방송은 믿으면 바보다. 한두 정거장 건너뛰어 넘는건 기본이고, 아니다 싶으면 운전기사가 마음대로 버튼을 눌러서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안내방송 중간에 끊기고 다음 정거장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난 버스를 타도 내 눈으로 확인을 하고 내릴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일본의 안내방송은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맞다.
버스가 선다. 그럼 한국에선 버스가 서는 곳을 따라 기다리던 승객들이 달리기를 한다. 버스가 윗쪽에 서면 윗쪽으로 우루루 달려가고, 아래쪽에 서면 아래쪽으로 우루루 달려간다. 그러니 줄서기를 할 필요도없고 의미도 없다. 완전히 운전기사 마음이다(-_-)
일본에선 승객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속으론 저래봐야 버스가 오면 다들 우루루 몰려들어 줄이고 뭐고 다 깨어질것 아닌가했는데 버스는 정확히 정차지점에 서는게 아닌가. 일본에서 버스를 따라 달려가는 사람은 물론 없고, 그런 전설조차 듣지도 못했다.
일본 버스의 가장 큰 경이로움은 버스가 서려고 해도 아무도 일어서는 사람이 없다라는 것이다. 한국에선 질주하는 버스안에서 타잔이 밧줄을 잡고 몸을 의지하듯 간신히 뒷문앞까지 가서 서있어야 했는데 일본에선 그런 일이 전혀 없다. 버스가 선다. 완전히 설때까지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다. 그리고 뒷문이 열린다. 그제서야 한두사람이 일어선다. 그리고 천천히 내린다. 물론 손님이 탈때에도 자리를 다 잡을때까지 출발하지 않는다. 급출발, 급제동은 절대 없다.
그런데 한국에선...... 손님이 탄다. 버스 계단에 한발 올리면 벌써 문은 닫히고 버스는 맹렬히 달리기 시작한다. 버스안에서 휘청휘청 거리며 자리를 잡아야한다. 내릴땐 더하다. 버스가 서기도 전에 벌써 뒷문이 열려버린다. 그것또한 어떤 종류의 경이로움이다. 달리는 버스안에서 내리라는 뜻인지.....(-_-) 아무튼 금방 안내리면 버스는 출발해버리고 뒤늦게 '아저씨 저 안내렸어요' 했다가는 버스안의 모든 사람들의 눈총은 물론이고 운전기사로부터 빨리빨리 준비 좀 하라는 쓴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일본버스가 대단한데는 그들의 경제력의 뒷바침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충분한 급료를 받고 충분히 시간을 지킬수 있는 그런 환경말이다. 한국에선 그런게 안되니까 곡예운전도 나오고, 시내버스가 고속버스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그러나 간혹 생각해보면 경제력이나 국력이 떨어지면 우린 늘 미국, 일본보다 위험하고, 불안한 환경속에서 생활해 나가야 하는걸까.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검은 세단을 타고 출퇴근하는 국회의원이 통근버스의 위험성을 알리 없을 것이며 우리의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차도로 달리는 그런 분노스런 환경조차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자전거가 달릴 길도 좀 만들고, 행시합격하는 그 똑똑한 머리들을 동원해서 버스행정을 좀 고쳐나가고, 그런 삶의 사소하면서도 필요한 곳에 신경 좀 써주는 그런 지도자가 나왔으면 한다. 그런 사람들이 선택되어지지 못하는 우리들의 죄도 결코 작지 않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