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넘게 보관해온 100권짜리 '소설 모음집' 이 있다.
100권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린시절 상상의 날개를 한껏 펴줬던 책들이다.
10년 넘게 보관해온 "아이큐 점프"라는 월간 만화책들이 있다.
중학생때 새로 나온 것인데, 창간호부터 시작해서 2~3년정도 매달 사서 모아두었다.
("보물섬" 등의 아동대상 만화책과는 차별화되던 바로 그....)
말이 보관이지, 이 두가지 모두 커다란 종이박스에 넣어둔 채,
한 4,5년간은 열어보지 않았나 보다.
어린시절의 그 책들을 딱히 꺼내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그럴 기회도 없었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절대" 버리고 싶지 않은 그런, 작은 보물들....
그렇게 몇 년을 베란다에 묵혀두던 책상자들이.... 이번 비로.... 젖어버렸다.
빗물이 벽 틈을 타고 흘러들었는지, 창 틈으로 흘러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젖어서 흐느적거리는 상자에서 책들을 꺼내보니,
물맛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이라!
무심했던 지난 4,5년동안 적어도 한번 이상은 젖었었고,
그때부터 몇 년간을 서로 달라붙고 우그러지고, 이미 곰팡이가 피어난 것....
그나마, "100권 소설책"들은 70%가량 온전하게 수습했지만,
"아이큐 점프"는 한권의 예외없이 표지와 표지가 서로 달라붙고, 검은 곰팡이가 피고,
책들은 쭈글쭈글....
"망가진" 책들을 서로 떼내고 닦으면서 그간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신문 깔고 넓게 펼쳐놓으면서 '다시한번 읽어보리라.' 다짐을 해보지만,
다 마른 뒤, 생각처럼 들춰볼지 다시 새로운 상자를 찾아 장기보관에 돌입할지는 미지수.
단, "아직, 절대 버리진 않는다!"
다른 일도 못하고 하루종일 이 책들과 씨름하면서,
일에 대한 짜증, 손상된 책들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하던 중,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절망적인 재해현장들 모습과 사고 소식에 할 말을 잃는다.
젖은 책 몇 권에 투덜대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하루종일도 아닌, 하룻밤 쏟아진 비에 그렇게 많은 피해가 있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떠내려간 차들, 끊긴 지하철, 완전히 잠겨버린 어느 반지하 주택, 넋나간 아주머니....
그리고.... 아까운 생명들....
남겨진 사람들....
누구에게 탓을 해야 하나.... 누굴 붙잡고 울부짖어야 하나....
sadsong / 4444 / ㅈ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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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주변 정리할 시간이라도 주어졌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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