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다.
7년 동안 일을 했지만, 이제야 장편 상업 영화 한 편을 마친 정식 작가가 되었다.
거의 하루도 안 쉬고 뭔가를 끊임 없이 생산 했지만, 만들어진 것은 한 편 뿐이다.
나도 안다. 상업 영화가 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정해져 있다.
상업 영화가 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못 만들고 헛지랄 했던 게 내 실수다.
그건 그렇다 쳐도, 나는 매일을 매월을 매년을 일을 했다.
연휴에도 주말에도 쉼 없이 일 했다.
6년 차가 지나고 영화 일이 가뭄일 때, 드라마 판에 가서 월 구십 몇 만 원 받으면서 보조작가질도 했다.
그때가 내 영화가 투자를 받고 촬영 직전일 때 였다.
(보조작가질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
지나간 7년을 돌아보니, 남은 것은 매년 몇 백 씩 쌓여 가는 빚들의 결정체다.
티끌 모여 태산 같은 빚이 되었다.
그런데 웃긴 건, 나는 쉼 없이 일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이란 '계약'을 한 것들을 말한다.
따져보니 나는 사치를 한 적도 없더라.
일년에 몇 백 씩 쌓인 빚은, 나랑 계약을 하고 내게 일을 시킨 회사들 때문이었다.
몇 백 씩 떼어 먹고 배쩨라는 식으로 나오는 개새들에게서 뜯긴 돈은 고스란히 빚이 되었다.
돈 떼어 먹은 씨발놈들 중엔 한국 영화를 좌지우지 한다는 '파워 몇 인'의 상위권에 오르는 새끼도 있었다.
그나마 받은 게 더 많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섭섭하다.
돈 천만 원을 받을 게 있다고 치자, 그건 몇 달 동안 일한 것의 보수다.
그런데 몇 달 동안 일하고, 그 일이 끝난 후에 지급 되지 않으면 어떨까.
일 하는데 6개월, 돈 받으려고 지랄을 떠는 게 1년 6개월이다.
천만 원의 가치가 백만 원으로 변하는 건 다반사였다.
그나마 작가는 낫다.
작가는 뼈가 부서지게 쓰면, 그래서 그게 괜찮은 시나리오가 되면 돈으로 바꿔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수많은 데뷔 감독들, 사실상 감독 지망생들을 감독 이랍시고 모시고 시나리오 써서 바쳤다.
돈 때문이다. 회사에서 돈 주니까 '감독님 감독님' 하며 시나리오 썼다.
그런데 이 감독 지망생 좆도 개새들은 지들이 영화사에서 감독 소리 듣는다고, 벌써 데뷔라도 한 줄 안다.
시나리오도 좆도 모르면서 작가를 원격 조종 하려고 든다.
(그런 둔한 새끼들은 대체로 영화사에서 자길 감독이랍시고 앉혀 놓고 작가를 들여서 시나리오 다시 쓰게 하는 게
어떤 의미인줄도 모른다. 데뷔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쓸 줄 모르면 사람 대접도 못 받는 다는 걸 모르는 거다).
그래, 그래도 좋다. 어차피 돈 벌러 간 거지 작가 대접 받으러 간 거냐.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런 짓거리들이 세월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하고, 감독이 그 시나리오를 잘 찍으려고 카메라 앞에서 매일 108배를 해도
영화는 터질까 말까다.
아니, 터지고 안 터지는 걸 떠나서 괜찮은 영화가 되는 것도 어려운 지경이다.
그런데 이 거만한 씹새들은 뭐 대단한 영화 공부라도 한 양 까불어 댄다.
다들 그 정도는 아는 걸 대단한 자기 지식인양 떠들어 대는데.. 이건 뭐, 돈 안 받으면서 견딜만한 것이 아닐 정도다.
(감독 지망생은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을 밥 먹듯 씹어댄다. 그래도 지들 보단 난 인간들인데도).
※ 어떤 씹새는 나한테 밥 사고 찻값 내라고 노골적으로 하더라. 자기는 학생이라고.
뭐 이런 씹탱..
감독 지망생 욕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
언급할 가치도 없으니까.
어차피 나 같은 가격 싼 작가 년, 놈들 데려다가 메이드 못 시키면 백수 되는 건 지들이다.
면전에서나 감독님이지 밖에서 만나면 형 씨다.
이쯤에서 감독 지망생들에게 하는 당부.
감독 지망생들은 알아야 한다.
영화과 나와서 연출 공부 하고 영화사 들어가면 왠만하면 자기 보다 선배들이고 프로들이다.
기획실에서 몇 년 삐댄 직원 년, 놈들도 갓 졸업하고 단편 하나 끼적 거리고 들고 다니는 지망생 핏덩어리 보단
훨씬 프로라는 거다.
(걔들이 그런 년, 놈들 커피 타다 주고 물 떠다 주면서 감독님 감독님 아양 거리는 건, 절대로 자기에 대한 존경 때문이
아니라, 월급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대해야 한다.
아니, 친절하지는 않아도 된다. 대신 예의바르게는 해야 한다.
왠만한 놈 아니면, 좆도 아닌 영화 몇 편 찍고 노가다나 나가야 할 것 같아 보이는데,
자기 미래를 지만 모르는 것 처럼 행동 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 같은 애송이가 봐도 보이는 걸..)
영화판에서 10년 이상 버틴 사람들을 보면, 분명히 한 가지 씩 재능이 있다.
영화를 잘 찍거나, 시나리오를 잘 쓰거나, 앞의 두 가지를 교묘하게 잘 속이거나,
관객이 좋아하거나, 착하거나, 예의바르거나, 인간성이 좋거나, 영화는 좆도 아닌데 해외에서 자꾸 상을 타오거나,
술을 잘 마시거나, 영화 친구가 많거나.. 돈을 잘 쓰거나.. 싸바싸바를 잘 하거나.. 등등..
애송이 같은 감독 지망생 새끼들아, 똑바로 해라.
졸라 정신 차리고 시나리오 공부를 해도 될까 말까다.
나는 내 재능을 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작가로서 나도 잘 못 했을 거다.
나도 좆같은 새끼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지금 벌을 받는 중이다.
극한의 가난에서 헤어나질 못 하고 있으니까.
어차피 포기 했다.
뭐, 상을 받고 깐느를 가고, 영화 흥행 보너스로 집을 사고,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있어도 딱 한 번이나 될까.
마누라 한테 이혼 당할 건 거의 확정이고,
그게 언제냐가 중요하겠지.
엊그제, 돈이 없어서 몇 달을 질질 끌던 영화 촬영이 끝났다.
감독은 촬영 끝내고 다음 날 부터 대리 운전 나가더라.
아파트에서 반지하로 이사 했는데, 이제는 반지하에서 땅을 뚫고 더 내려 가야 할 판이라더라.
나는 감독과 우리 다음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 시나리오를 마무리 중이다.
결과야 어찌 됐든 이 시나리오는 끝내 놓아야 나도 대리를 나갈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미래를 많이 생각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당장 담달이면 수능철이고, 수능이 오면 추워진다.
겨울을 준비 해야 하는 거다.
영화 한 편을 완성하여 비로소 작가가 되었는데,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거지가 되어버렸다.
올 겨울은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 해는 정말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오늘은 왠지... 나를 숨기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