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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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곱창전골

cryingsky
2001년 10월 20일 03시 36분 51초 2536 1 4
이번 주는.. 단 하루도 새벽 세시 전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급기야 오늘 낮에는.. 거의 탈진하고 말았다.

하루 종일 제작실에서 비몽사몽 어떻게 어떻게 시간이 가고..
비록 늦은 시간이지만.. 단 하나의 약속만을 남겨 놓고 있을 즈음..
감독님이 부르신다..
'술한잔 하자.. ..'
뜨악~
미치겄다.. 하는 생각이 맘속에 굴뚝 같았지만..
간만에 편한 술친구가.. 술을 먹자 하는데
냉정하게 거절 할 수도 없고..
내일이 토요일이라는 약간의 잇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
'그러세요.. '
하고 곧장 터덜터덜 근처 포장마차로 향했다.

'어제는 저 건너 포장마차에 곱창을 먹으러 갔으니..
오늘은 제발..거기 가지 않기를.. '
이라 했던 바램이 하늘에 닿았는지..
이틀 연속 곱창을 먹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포장마차와 야채 좌대를 함께 운영하는 할머니 집으로 가서..
또 영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을 시작한다..
액션에서 포르노까지..
그 사이 홀짝홀짝 마셔 대던 술이.. 제법 됬는지..
어느새 너끈히 취하신 감독님,
뒤늦게 (난 항상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
오늘 자신이 해야 하는 그림 작업을 마무리 하셨다고 고백하신다..
몰랐다.. 어제 조감독 생일인것도 몰랐고.. --+

순간 '판 커지겠구나.. ' 싶어 아찔 했지만..
그래도 개인 작업 쫑인데.. 마시고 회포를 풀어야지..

조감독이 오고.. 또 다른 한명의 스탭이 오고
뒤늦게 있는 미팅은.. 포장마차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가자.. '
예상치 않은.. 감독님의 반응..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안되지...
축 늘어져 키가 3미터 이상 늘어난 것 같은 몸을 이끌고..
감독님께..
'홍대 가서 놀아요.. 이대로 가믄 섭하지.. '
하고는.. 급하게 차에 감독님과 조감독을 태우고..
신촌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길을 따라..
나름대로 신이나신 감독님의 다소 못미더운 길 안내를 따라..
골목 골목으로 가니..
"곱창전골"이라는..
불꺼진 간판의 식당이 보였다.

뚜벅뚜벅 그 쪽으로 가시는 감독님께..
'거기 문 닫았는데요.. '
했더니.. 웃으시며 그냥 들어가신다.
'주인을 아나 보구먼.. '
쭐래쭐래 쫓아 갔더니..
'곱창전골'이라는 이름의 카페다~!
이름도 신기한데..
한쪽 벽을 가득채운 LP판들은 더더욱 신기하고..
7,80년대 국산음악만 틀어 주는 곳이라는 설명을 듣고..
'올커니!' 했다.

갑자기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 처럼..
기운이 되살아 나기 시작해서..
심수봉, 남진, 김추자에 이어지는 신청곡을 적기 시작했고..
언제 피곤했냐는 듯이..
두런두런 옛날이야기가 시작되는거다.

(그 음악들은 마치..
필커 방송의 컬렉션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

김수철의 노래.. '정주고 떠나시는 님.. ~' 하는 노래 제목이 생각나지 않은게.. 가장.. 답답하고 속상한 일이었다. 돌아오니 생각나네... '별리'

어쨌거나 계란말이까지 있는 인심좋고 술값싸고,
추억을 말할 수 있는 '곱창전골'은...
하루의 피로와 시름을 잊어 버리게 하는...
특효약이었음엔 틀림없다. 또 가야지..

어제 오늘 곱창 속에서 엄청시리 헤매다닌 것 같다.. --+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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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1.10.20 11:57
혹시 신중현선생님에 관한 글인가? 클릭했다가, 진짜 곱창얘기구나... 했는데, 멋진까페 이야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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