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렇게 헌팅이라는 작업을 하기위해 강원도를 갔어요.
아시다시피 헌팅이라는 것은 촬영장소 사냥을 말하는 것이고
내용은 촬영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지요.
우리 영화 중에 주인공 남녀가 대관령 가는 길에 여차저차해서
일행과 떨어지게 된 후 인가가 없는 산속 외딴 시골집에 묵게 되요.
그 집을 찾는 것이지요.
그런데 번지수만 있고 지도에도 없는 그런 집.. 어떡해 찾아야 할까요.
강원도 진부에 도착한 나와 제작실장은 어디부터 시작할까 다른곳을 찾으며 고민을 합니다.
번지수.. 지도.. 편지. 집배원 아저씨에게 여쭤봐야겠군요!
진부 우체국으로 갑니다.
이런.
집배원 아저씨가 아무도 안계시네요. 시간은 없는데 어떡할까 두 사람 잠시또 볼을 부풀리는데.
그럼 역시 한분이 등장하죠. 자 보시죠.
이층에서 발길을 돌려 내려오려했던 우리 둘은 누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그 분을 쳐다봤죠.
어느 사십대 순박한 강원도 말투와 검소한 외투의 아저씨가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하시네요.
'집배원 아저씨 만나뵙고 여쭤볼께 있어서요..'
그리고 아저씨 따라서 이층 집배원의 아지트로 들어 갔어요.
그러면 보통 무엇을 알고 싶은가. 또는 우리의 임무에 대한 자세한 애기를 꼬치꼬치 하게 되는게 순서 이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군요 이 아저씨.
어디 앉으라고 말씀 한마디 안하시고 본인만 철책상에 걸터 앉으시고는 얘기를 꺼내십니다.
자세히 다 떠오르지는 않습니다만 최대한 옮겨 적을께요. 물론 강원도 사투리십니다.
"지금 사람들 다 배달 나갔거든요. 오후 저녁때나 들어올텐데......
아 그럼.. 그런 영화면 티비 문학관 뭐 그런거랑 비슷해요? 그런거래요?"
"네.. 저희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에요.. 저 혹시 라이터를..."
"아 내가 왜냐하면요. 내가 써놓은 얘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네. 아저씨의 본심이 드러나는 군요. 사실인즉 이 아저씨는 우리의 헌팅도 헌팅이지만
아저씨께서 써놓으셨다는 그 얘기가 얘기의 중심입니다. 계속 보시죠.
"전에 티비 문학관 보다가 생각이 나서 쓰기 시작한거래요........
제목은 소나기........
월정사 밑에 한 집이 있어. 그 집에는 서로 결혼해서 살고 있는 자매가 있는데..
언니는 아들 둘을 낳고 동생은 딸을 둘을 낳아..
(중략) ..바꿔서 키우자고 그렇게 얘기가 되..
그래서 언니의 둘째 아들과 동생의 둘째딸을 바꿔서 키우게 되는데 말이야........(후략)"
아저씨가 우리 마음을 무척이나 몰라 줍니다.
아저씨의 희곡 스토리가 참 끊이지 않네요. 하지만 듣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다가 동생은 충북 제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서 자매가 헤어지게 되.. (중략)
...그 아들, 사실 언니의 둘째야. 그 아가 월정사로 여행을 오게되. 그 날 소나기가 좍좍 내려서
그 아가 할수 없이 묵는곳이 언니의 집이거든?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지 자기 아들인지도 모르고.
그 아도 모르지 근데 사람 피 땡기는게 있거든. 언니가 그걸 감지해......(후략)"
사실 헌팅도 중요하지만, <불어라 봄바람>에 찍혀야할 외딴 시골집도 중요하지만,
아저씨 얘기 듣는다고 그 집이 도로시의 집처럼 다른데로 날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감독님께서 가셨더라도 그 얘기 듣고 계셨을 겁니다. 참 재밌고..
아저씨가 영화의 소망으로 지으신 얘기거든요.
책으로 만드셨답니다. 작게. 그냥 제본만 하는 수준이긴 합니다만.
그렇게 책을 50권 만드셔서 그 이야기를 우체국 직원분들께 나눠드린거죠.
저희가 그 책을 달라고.. 아니면 저한테 보내주십사 제 주소도 적어드렸죠.
'일 포스티노'가 생각도 나고 영화를 좋아하는 집배원 아저씨가 발 품 팔며 지으신 스토리 잖아요.
그것도 너무 좋고... 전 이 아저씨가 스토리 아닌가 싶습니다.
별로 긴 시간 아니었지만 여러가지 생각듭니다.
"나 전에 배달 했었거든.........
그렇게 다닐 때 월정사 풍광도 좋고, 진부 다니면서 그거 이것저것해서 기억하고 싶어서 하다보니까..........
티비 문학관. 베스트셀러극장.........
소나기가 원래 세번을 좍좍좍 오거든...........
그래서 원래 엄마집에 가게 되............."
그 날 오후 다섯시 다른 집배원 아저씨들 오시면 여쭈려고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했던 그 시간에
그 진부 우체국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핑계대자면 일정때문이지요.
그렇게 강원도 진부를 다녀오고 다음 날 아침 전화가 와서 잠이 깼습니다.
주소와 함께 적어드린 핸드폰번호로 그 아저씨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여보세요. 정현두씨죠. 저 진부우체국 ooo에요..."
그렇게 나눠줬던 책 중에 한권을 어떻게 구하셨다고. 그래서 빠른 등기로 보내신다고 하시네요.
"꼭 영화로 만들어 줘야 해요... 허허.. 그럴수 있죠? 진부 함 놀러와요......."
우체국 아저씨가 보내주신거니까 안전하게 잘 오겠죠.
제가 어떤 약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헌팅은 영화 찍을 곳을 찾는 것이고
시나리오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의지이고
제작비는 영화를 만드는 몸인데.
내일 중이면 저희 집에 소나기가 도착하지않을까 싶습니다.
책이 집에 도착하면 함께 돌려 봅시다.
그리고 강원도 진부에서의 헌팅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근데여,, 조감독님 욕심쟁~
우리한텐 그런 얘기 없었잖아여,,
근데여,, 참 이쁜 얘긴거 같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