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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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어떤 기다림

ty6646
2008년 02월 29일 06시 36분 14초 1827 1
해그림자가 길어지고 사라져 갈때까지 집앞에 나와 앉아있어도
누구 한사람 나를 찾아오는 이 없다.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바람을 타고 온 향기에 정신을 잃고 있는 걸까.
덤덤한 표정을 얼굴에 걸어두고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은 채 앉아있었다.
주위가 어두워져서야 겨우 밤이 되었음을 깨닫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한밤중에 잠을 설치다 깨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풀냄새나는 바람이 내 코끝에 내려앉는다.
동전을 호주머니에 넣고 골목길을 걷다가 인적없는 길가에 서 있는 자판기 앞에 섰다.
"밀크커피" 하나를 입에 물고 걸어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비스듬히 쏟아지는 가로등불안에 내게 커피한잔을 권한 자판기가 우두커니 서 있다.
설마 내가 오기를 지금까지 기다린 건 아닐텐데......
지난 가을, 바람을 타고 멀리 떠난 낙엽하나가
다시 내 발밑에 굴러떨어져 오기를 기다리는 아득한 심정으로
어떤 기다림에 화석이 되어간 듯한 자판기에서 내 모습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날,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건 사람도, 바람도 아니었고,
담옆의 고목에서 떨어져나간 낙엽도 아니었다. 나를 힘들게 하던 외로움이 사라질때까지
단지 그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커피 한 모금이 내 몸안으로 퍼져나간다. 손끝 발끝을 돌아
심장으로도 뼛속으로도 커피 한 모금이 내 몸안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은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위에 많은 가로등과
그 불빛안에 잠들어 있는 보다 많은 자판기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 방앞에 나있는 좁은 골목길 건너편에
잡초가 피운 꽃을 보고서야 겨울이 지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계절이 나를 향해 까닭없이 웃어주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moosya
2008.03.01 10:17
언제나 커피를 즐기시는 군요.
즐긴다기 보다는 단지 공허함을 커피로 채우시는 듯 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마시진 마세요. 좋을 건 없으니깐요.
왠지 님의 기다림은 또 다른 자신을 기다리는 바람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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