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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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양심

jelsomina jelsomina
2003년 07월 23일 22시 34분 13초 1054 2 13
작업하러 가기 위해 동네를 벗어나려 하는데 차도에 보행자쪽 파란색 신호등이 들어온다
서기가 귀찮다. 게다가 언덕 오르막길이다.
길을 건너는 사람은 없었고 본능적으로 백밀러를 본다.
뒤에 시멘트 수송하는 커다란 레미콘이 달려온다.
잘됐다 싶어서 그냥 신호등을 통과한다.

“저런 커다란 차는 언덕길에서 멈추면 곤란하지. 내가 먼저 가줘야지 사람도 없는데 머 ”

또 그 귀청 떨어질듯한 빵 ~ 하는 소리를 들을까봐 겁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 트레일러만한 커다란 차(그런 차 이름이 머더라?)는
보행자 없는 건널목에서 얌전히 차를 멈춘다.
이런 ~..
무안해 진다. 누가 봤을까봐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양수리 국도다
여기는 항상 오가는 길이지만 예전에 정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싶은 그런 길이다
앞에는 얌전히 운전중인 하얀색 EF 쏘나타.
자세히 보니 뒷모습이 꼭 재규어 같다. 속도를 내지 않는다.. 시속 80킬로 미만.
나도 천천히 따라간다.

동네를 지나면서 신호등이 나온다. 보행자쪽 파란색이 켜져있다.
운전자는 빨간색.

그 얌전한 쏘나타는 신호등을 그냥 지나쳐 가버린다. 그리고 바로 나오는 커브길 .
길 가운데 그 하얀색 쏘나타는 서 버린다.
이건 또 뭘까 ?

사이드 밀러로 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 운전자
지켜야 할 신호등은 이미 어겨놓고 커브길 지나 있을지 모를 경찰차를 경계하나보다.

신호등을 어길만큼 급한 일이 있다면 그냥 갔어야 하지 않을까 ?
자기가 신호등을 무시한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 커브길 너머 있을지 모를 어떤 위험(?)도 굉장히 빠른 감으로 알아챈다.

아까일 때문에 양심이 찔린 나는 건널목에 정지하고 신호를 기다린다
신호가 바뀌고 ... 내가 출발하는걸 보더니 앞차도 출발 거의 동시에...
커브길 너머 물론 경찰차는 없었다.

하얀차는 또 천천히 길을 달린다. 앞차를 추월하는 법도 없다.

세상사는 법일까 ?. 나도 무식하게 신호등을 어길때가 많다.
그리고는 냅따 달려대다 .. 퍽퍽 ~ 속도위반 카메라에 찍히기 일쑤다
그래서 돈이 없어 못내고 있는 교통위반 딱지가 얼마인지 모른다.
아마 이 낡은 차를 폐차할 때 준비해야 할 돈이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를만큼...

저 앞차처럼 저렇게 얄밉게 똑똑할 정도로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싶다.
나 내키는대로 살 것. 하지만 손해 볼 짓은 하지 말 것.
보행자 없는 신호등 따위 지킬 필요는 없지만
괜히 귀찮은 경찰차 만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국도 한 복판에서 자기 맘대로 서 버리는 뻔뻔함.

세상은 원래 그렇게 살아야 하는걸까
아니면 바쁜 현대인들의 모습일 뿐인걸까
앞으로 한동안 하얀색 EF 쏘나타를 보면 그 생각이 나겠지.
젤소미나 입니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namjune
2003.07.24 03:40
내 양심이 지금 내안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photo7982
2003.07.30 15:26
융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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