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명화극장에서 방영한 <길>을 보다가
내가 안소니 퀸의 진짜(!)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걸 알았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에 국내에 TV로 방영된 영화에서
안소니 퀸의 목소리는 성우이자 탈렌트인 '이치우'씨가 늘 도맡아했다. <노틀담의 꼽추>에서도 그랬고 <바라바>에서도 그랬고... 기타 등등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수많은 영화들에서...
중3때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였다, 이치우씨는. 탈렌트이기도 했지만 유명한 분은 아니었던지라 다른 아이들은 그 친구가 우리 아버지는 탈렌트라고 해도 그 분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내가 '안소니 퀸'을 언급했을 때 그 친구가 참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진짜 안소니 퀸의 목소리가 기억 안날 정도로 그 분의 목소리는 딱이었다.
'이치우=안소니 퀸'과 버금가게 그 성우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배우들이 있다. 지금, 이규화와 '데이빗 듀코브니'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재미 있는게 명화극장에서 <채플린>을 방영했을 때 단역으로 나오는 데이빗 듀코브니의 목소리도 이규화가 맡았다).
여배우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장유진이 그랬고
비비안 리와 송도영(물론, 장유진이 한 적도 있지만 이 쪽이 더 어울린다),
캐서린 햅번과 이선영,
제시카 랭 같은 요부를 주로 맡는 이경자(미니 시리즈 <V>에서 외계인 다이아나가 인상 깊다),
삐삐(배우 이름 모르지만)와 주희 등이 그렇다.
오드리 햅번은 장유진과 송도영 모두가 어울리는 조금 특이한 경우였다.
남자 배우로는,
그레고리 팩과 박일(가끔 유강진이 맡기도 하지만 이 쪽이 낫다),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김도현(고뇌에 찬 목소리에서 TV시리즈 <레밍턴 스틸>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의 가볍고 까부는 목소리로 변신하는걸 들으면 정말 놀랍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목소리),
로버트 테일러와 이강식(이 분은 옛날에 신성일씨 전담 성우였다),
콜롬보 피터 포크와 최응찬,
TV씨리즈 <도망자 >의 갑자기 이름이 생각 안나는 그 배우와 김종성(이 분은 요즘 사극 해설을 주로 하신다),
클라크 게이블과 유강진(이 분은 케리 그란트와 게리 쿠퍼 및 로널드 콜맨 같은 조금 기름진 배우들을 총체적으로 커버하신다),
더스틴 호프만과 배한성,
6백만불의 사나이와 양지운,
브루스 윌리스,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왈츠네거 등의 액션 스타들을 커버하는 이정구(이 분은 <전격 제트작전>에서 데이빗 핫셀호프로 큰 인기를 모으기 시작해서, 최근엔 브래드 피트까지 커버한다),
모건 프리먼의 현명한 느낌을 한껏 살려준 그 이름이 생각 안나는 성우분,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남궁윤 등등.
요즘엔 사실 배우와 성우의 목소리가 탁탁 들어맞는 그런 재미를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x파일>이 그런 재미를 주긴 하지만...
더빙판으로 보면서 우리가 그 배우들 연기의 반밖에 못봤다고 하지만, 대신 걸출한 우리 성우들의 연기를 본(?) 재미도 있는데...
어쩐지 난 그 재미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