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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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어느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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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7월 21일 01시 00분 33초 1266 1 5
몇달만에 집에 내려왔습니다.
영화제 구경으로 부천에 한 이틀 있다가 서울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져서 짐을 챙겨 서울역으로 갔지요.
짐이라고 해도 한 가방 다 빨랫감 뿐이었지만.

열차는 전라선, 열한시 오십분 막차였고,
다음날이 제헌절이라서 좌석이 남아있지 않았어요. 입석을 샀지요.
열차는 출발하고, 빈 자리가 꽤 있어서 이리저리 건너다니면 되겠구나 했는데 영등포에서 기다리던 손님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그냥 가방만 올려놓고 통로로 나왔지요.
세시간을 서서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어요.
몇해전에 추석 연휴 끝나고 입석으로 서울에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다리가 몹시 아팠던 기억이 났지요.
그런데 거기 서서, 객실 여기저기 놓여있던, 국정홍보처에서 나온 파란 전단을 주워 읽어보고 있는데,
그게 뭐유? 하면서 이야기를 붙이는 사람이 있었어요.
키가 내 어깨만한 아저씨였지요. 불그레한 얼굴에 황소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까만 쫄티에 배바지 차림.
그 전단을 받아 몇장 보더니 이런 건 머리가 아파서 못본다고 해요.
김씨 아저씨 인기가 한참 떨어졌다고.
그러면서, 봉천동에서 어렵게 사는 고향친구네에 다녀온다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형 말을 안듣고 무슨무슨총련 일을 한다는 막내동생, 동네로 시집온 중국여자 일본여자 필리핀 여자, 중학생을 두들겨팬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들녀석, 시골에 내려와 사기를 치고 도망간 가족, 구례 건달들, 지리산 노고단에서 먹을 것 놓고 내기하다 사고난 사람들, 작년 물난리 때 말 안듣고있다가 계곡에서 쓸려간 텐트, 구례군수 선거 비화, 오이하우스 농사, 인터넷, 술김에 어쩌다 바람 피운 일, 그렇게까지 이어졌어요. 세시간 내내. 중간에 담배불도 붙여드리고, 음료수도 하나씩 사마시면서. 한참 웃다보면 내 키가 아저씨만큼 낮아져있었지요. 시간 가는줄도 다리 아픈줄도 모르는 동안 열차는 서대전, 익산, 삼례를 지나 전주에 왔고.
구례JC, 농민회, 4H회원 보람이 아빠와 악수만 하고 헤어졌지요.
물이 찼었는지 전주역 지하통로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더군요.

병원에서 집으로 옮기신 할머니 병세가 많이 좋지 않아요.
아무것도 못드시고 두유만 삼키신지가 오래됐다는데
오늘은 물도 못드신다고 하네요.
어제 갔을 때 할머니 다리를 만져보고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어요.
내가 손을 쥐자 손가락에 힘을 주셨어요.
연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을 누르시기도 하고.
고왔던 할머니 얼굴이 정말.
동생이 수박을 으깨 떠넣어드리면서
할머니 수박 맛 나? 하자 고개를 끄덕이셨지요.
부엌 쓰레기통에서 할아버지가 끓여드신 라면 봉지가 몇개나 나와서 또 얼마나 짠하던지.
오늘은 집에서 내내 잠만 자면서도 할아버지댁에 가보지 않았습니다. 겁이 났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말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며칠 못되어서 돌아가실 것 같다고 식구들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들리고.
그만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부모님은 며칠 더 있으라고 하세요.
그래야겠지요.

오래전에 할아버지 댁 지하실 계단에서 사진뭉치를 주운 적이 있어요. 왜 버리셨는지 모르겠지만 흑백사진들이 꽤 여러장이었는데, 몰래 숨겨서 집으로 가져왔었지요. 그 중에 할머니의 젊었을 적 사진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자꾸 내 연인처럼 느껴졌습니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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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1.07.21 13:59
....어제 본 베스트 극장이 생각나네요.... 보면 안될것만 같아서, 도저히 볼 자신이 없어서, 몇번씩 채널을 돌리곤 하다가 결국 끝까지 보고 말았습니다....죽고싶을 만큼의 결말은 -다행히- 피해주더군요.... 우린 어떻게 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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