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세집에 살고있다.
5월 말이면 전세 기간이 끝난다.
오늘, 집주인의 동생이라는 여자가 왔다.
나보고 '내용증명' 이라는걸 쓰란다.
5월 25일..계약 만료일이 되면 두말않고 짐싸들고 나가겠다는,
일종의 각서처럼 보였다.
우리 부부는 이미 한달전부터 온 동네 복덕방을 다 뒤지며 집을 구하고있다.
요즘 은행 금리가 낮은 이유로 전제십이 별로 없다.
집주인들이 다 들 월세로 집을 내놓기 때문이다.
때문에 월세를 낼 능력이 없는 우리같은 경우는 집 구하는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뭐 막무가내로 않나가고 버티겠다는것도 아니고,
열심히..할일도 못하면서 집을 구하러 다니고 있는데,
내가 왜 그런 서류에 또 도장을 찍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내 도장은 영화 계약할때 쓰라고 울 엄마가 비싼돈 주고 파주신 도장이다.
..도저히 그 도장은 쓰기가 싫어서 도장 없다고 지장을 찍기는 했지만..
역시 기분이 참으로 더럽다.
난 내용증명이라는게 뭔지도 모르고..
이 망할놈의 나라의 법이 어떻게 되있는지도 모른다.
난 정말 상식대로 생각했고 상식대로 살았다.
5월 달에 계약이 끝나니까 그전에 나가야 겠구나..
집구하러 다녀야 겠다.
그러다가..마땅한 집 구해서 나가면 그만 아닌가..
왜 그렇게 하루라도 빨리 내쫒지 못해서 지랄발광을 하는걸까..
왜 내가 각서를 쓰고..그걸 쓰기 위해서..생전 가보지도 못한
사법소서라나..뭐라나 하는 사무실에 들락거려야 하나..
그 여자는 왜 우리집 소파에 앉아서 소리를 질러대고..
나보고 '젊은 사람이 왜 세상을 그렇게 사냐' 니...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데..
불쌍한 우리 마누라 등쳐먹는거 외에는 하늘 우러러 별로 부끄러운 일 없이 산다.
길에 휴지를 버리지도 않고..
교통법규도 잘 지키고..
누구한테 거짓말하지도 않고..
술먹고 꼬장을 부리지도 않고..
근데, 세상을 왜 그렇게 사냐니...
내가 왜 여자한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명색이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나는 지난 몇달간 집에 돈을 단돈 1원도 갔다주지 못했다.
2년을 준비하고 매달려온 영화가 얼마전에 엎어졌다.
촬영한지 3년이나 지난 내 단편 영화의 후반작업을 지원해주려던 곳에서는 돈많이 든다고 없던 일로 하잖다.
장인,장모님은 왜 아이를 안 가지냐고 걱정이시다.
아이를 가지면 아내가 일을 못할꺼고..그럼 우린 그냥 굶어야한다.
아내가 일을 안하면 굶어야 한다......하하하.
하루라도 빨리 또 일을 시작해야 겠다고?
그 영화 역시 2년을 끌다 엎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는가...
엎어지지 않고 잘 진행이 되면?
거기서 받은 돈으로 우리 부부가 생활할수나 있는건가?
...도대체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무슨 방법이 없다.
지장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정말 '맥이 풀린다'는 말을 실감했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발걸음 하나 하나가 너무 무거운...
걷는것이 힘들어 놀이터 벤취에 앉았다.
하늘을 보니..하늘은 너무나 푸르고..
어린시절 올려다보던 그 하늘과 너무나 닮아있다.
"나 돌아갈래.."
정말 누구처럼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