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금>
한 사이비 종교가 있다. 그 종교의 교주는 사람들의 손금을 통해 그들의 운명을 점칠 수 있고 그에 대해 기도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고 교인들에게 믿어졌고, 그러한 이유로 최소한 교인들에게는 굉장히 과학적이면서 그야말로 숭배해야할 종교이다. 그리고 주인공인 석규가 있다. 그는 30대 초반의 한 남자로 안정된 직장과 사랑스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그 종교의 집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 된다. 의사는 아내가 살아봤자 식물인간이라고 단념하라고 한다. 너무나 상실에 빠진 남자는 교주를 찾아간다. 항상 부교주의 진행으로 예배는 행해졌기 때문에 석규는 한번도 교주를 본 적이 없다. 쉽게 만날 수 없는 교주를, 이번엔 마치 석규의 상황을 아는 듯이 만나도록 허락된다. 너무나 진한 화장과 화려한 장신구와 옷 때문에 교주의 나이를 정확히 아는 건 힘들지만, 석규는 대충 자신의 나이보다 조금 밖에는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석규는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그녀는 얼마나 이 종교에 헌신했는지, 그런 그녀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교주에게 알리며 그녀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교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석규에게 아내를 살릴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자신의 지인을 시켜 한 병원의 시체실을 열어놓을 테니 일주일간 매일 밤 그곳을 찾아가서, 한명씩 꺼내어져 있는 시체의 손금을 자신이 주는 칼로 바꾸어 놓으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손금에는 생명선이 있어. 죽은 시체의 생명선을 연장시켜놓으면 어떻게 될까?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건 신이 허락하지 않아. 대신 그들이 태어난 연도를 훨씬 이전으로 돌려놓아 결과적으로 생명이 연장되는 셈이 되지. 그럼 그들의 태어나는 시대와 환경, 주변인물도 변하기 때문에 크게는 그들의 인생이 아예 바뀌어 버릴지도 몰라. 이때 신도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틈이 생기네. 내가 아까 알려준 대로만 자네가 잘 한다면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자네의 아내를 살려놓겠네” 석규는 교주가 준 신성한 칼을 가지고 매일 밤 몰래 시체실에 들어가 꺼내어져 있는 시체들을 하루에 하나씩 교주가 알려준 대로 손금을 조작한다. 매일 아슬아슬하게 시체들의 손금을 조작하던 셋째날 석규는 옆 집에 살던, 아내의 일로 죽은지도 모르던, 꽤 친분이 있던 할아버지의 시체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다. 당황하지만 아내를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먹고 할아버지의 손금에 생명선도 연장한다. 교주가 알려준 일곱날 중 마지막 날, 석규는 시체의 손금을 조작하는 일을 끝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자마자 뒤에서 지켜보던 경찰들에게 연행된다. 궁금한 아내의 얼굴을 찾아 볼 겨를도 없이 경찰서에 갇히게 된 그는, 할 수 없이 손금에 관련된 이야기를 경찰에게 이야기한다. 경찰은 석규를 정신병자로 인식하고 정신병원에 가둔다. 석규는 정신병원에서 자신을 지키는 천하게 껌 씹는 불친절한 흑인 간호사를 본다. 그 흑인여자는 자신의 옆집에 살던 여자였고 그의 아버지는 석규가 셋째날 죽인 노인이었다. 석규는 ‘저 여자는 분명히 의사였는데?’하며 간호사에게 아는척을 한다. 하지만 흑인여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 듯 석규의 행동을 정신병자의 헛소리 정도로 간주했다. 석규가 바꿔 놓은 노인의 운명 때문에 딸의 운명도 잘 나가는 의사에서 동네 정신병원에 천한 간호사로 전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석규는 이렇게 자세한 사정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석규는 뭔가 불안한 마음에 아내를 보기위해 정신병원을 탈출하려 한다. 하지만 그 도중 석규는 반 고의에 반 실수로 흑인여자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놀라며 도망가는 석규. 곧장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뛰어간다. 병실에 가보니 아내는 없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그런 이름의 환자는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다고 한다. 석규는 말도 안된다며 병원에서 행패를 부린다. 그때 뒤에서 교주의 손이 석규의 어깨를 잡는다. 간호사와 구경꾼들은 신기하게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교주는 석규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가 부드럽게 말한다.
“침착하게, 아까 예전에 자네 옆집에 살던 흑인여자 봤지? 자네가 손금을 조작해 노인의 운명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 딸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조금씩 변했네. 그 여자가 자네를 못 알아 본 것도 당연하지. 아마 자네 옆집에 산적도 없을걸?” “그럼 제 아내는?” “들어봐. 자넨 일곱명의 운명을 조작했어. 원래는 일곱명 서로 전혀 관련이 없던 사람들이었지만 자네가 운명을 바꿔 놓은 후론 그렇지 않게 되었네. 첫 번째 사람은 두 번째 사람에게, 두 번째 사람은 세 번째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여섯 번째는 일곱 번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주었어. 자네가 마지막으로 운명을 바꾼 사람이 누군지 아나? 자네 아내의 어머니와 결혼한 사람이네. 즉 자네 아내의 원래 아버지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거지. 그말은.... 자네 아내는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말이야” “내 아내에게 왜 그런짓을!” “그 여자는 신에게 바치기에 충분할 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어. 나는 신께서 그 여자를 이 세상에 내놓으실 때의 산고를 덜어드리고 대신 그분에게 꽤 멋진 선물을 바친 셈이지.” 석규 넋이 나간 표정. 교주는 석규의 뺨을 살살 치며 달랜다. “당신은 누군가?” “네?” “그 여자의 남편인가?” “네” “아냐! 당신은 그 전에 앞서 우리 교의 집사네! 자네도 우리의 신께 점수 좀 땄을 테니 만족하고 얼굴 피게! 난 자네를 오늘부터 우리 교의 장로로 임명하겠어” 석규 넋이 나간 듯이 하지만 결연히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밤 모든 집사들을 다 불러 대교주님 댁에서 자네 취임식 겸 저녁이나 하지”
대교주이자 교주의 아버지인 백발의 노인을 가운데 의자에 앉히고 양쪽 의자에 교주와 석규가 앉는다. 교인들이 들어오면서 환환얼굴로 석규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곧이어 시작하는 예배. 세 개의 의자를 한 점으로 원을 그려 교인들이 무릎 꿇고 앉아 이상한 그들만의 찬송가를 부른다. 찬송이 끝나고 교주의 부탁으로 석규는 대표기도를 하게 된다. 모두 눈감고 손을 모은다. 석규는 천천히 기도를 한다. 입은 기도를 하면서 천천히 일어나 칼로 대교주를 찌른다. 대교주의 입을 막고 있어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헐떡이는 대교주의 배를 보고 석규는 목을 조른다. 석규의 기도소리가 거칠어지자 교주와 몇몇 교인들이 석규를 쳐다보고 놀라서 달려든다. 이때 석규는 교주에게 받았던 칼로 대교주의 손바닥에 생명선을 긋는다. 순간 교주와 모든 집사들, 집과 석규가 들고 있던 칼까지 모두 사라진다. 남은 것은 잔디밭과 가로등, 석규와 대교주의 시체 뿐이다. 석규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 석규의 얼굴 클로즈업 되면서 나레이션 나온다.
“모든 것이 이렇게 사라져 버렸는데 나만 이렇게 남아있다.
아내의 운명이 바뀌면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사람은 난데
난 이렇게나 멀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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