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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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일회성 제작일지를 쓰셔도 되고, 제작일지의 개설과 관련한 질문도 할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바쁜 남편 대신에...

푸코
2000년 06월 15일 21시 43분 58초 4963 1
여긴 영화가 제작되어 가는 상황을 쓰는 곳이죠.
난 사실 여기 뭔가를 끄적거릴 자격은 없는데...
그래도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 지금 이순간에도 (미루어 짐작컨데) 영화에 몸바쳐 일하고 있을테니까...대필을한다해도 말릴 분은 안계시겠죠.
...
어제는 우리 결혼 기념일이었는데, 대략 사일만에 난 나의 남편 얼굴을 보았습니다.
지난 일요일 일주일예정으로 합숙 작업에 들어간 남편을 중간에 한번 만난건만으로
너무 행복했습니다.
사실 기대도 못했거든요...안한거죠. 실망하기 싫었거든요.
그는 아무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가난하니까...
돈이 있을땐 내가 좋아하는 꽃을 사주는게 그 사람의 행복인데...
난 아무것도 받지 못했지만 .. 그래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 사람 얼굴을 보는것이 내겐 굉장한 선물이었거든요.
...
오랫만에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남편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뭔가 일이 잘 안되가는 모양입니다.
촬영이 몇달뒤로 미루어진것이 그를 맥빠지게 만든것 같은데...
도와줄수 있는일이 없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영화는 무조건, 빨리 , 잘되야 합니다.
왜냐면 그 사람은 나만큼 사랑하는 영화를 위해
너무 오랜 시간을 너무 힘들게 기다렸거든요.
...
영화판에 시네마서비스의 힘은 아마 굉장하다죠.
그런데 그 사람 말에 의하면 상상이상 이라고 하더군요.
밑에 줄줄이 붙은 영화사들이 충성싸움하느라 바쁜 모양들 입니다.
안돼던 캐스팅도 누구말 한마디면 다음날로 계약이 성사되고..
스텝들의 계약도 바로바로... 진행비도 바로바로...
그렇다면...
...그 누구의 눈밖에 나면 내 남편처럼 유능한 사람도 감독되기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
...
며칠전 연출부 계약이 있었던 모양인데..남편은 왠지 씁쓸해 보였습니다.
난 철없이 계약금 받을일에 들떠 있었는데...
...
지난 일요일부터 하루도 안거르고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는 하루도 안거르고 못봅니다.
컴퓨터를 친구 삼아 살던 그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바쁘긴 한가 봅니다.
편지안에 사랑과 용기를 주는 말들도 많이 써놓았는데...
한꺼번에 읽으면 약효가 떨어질거 같아 조바심만 납니다.
...할9000님
이글 읽으시면 오빠에게 좀 전해주시죠.
오늘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편지 시리즈를 접어야 겠다고.
독자없는 편지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
매일 같이 주문을 욉니다.
제발 엎어지지말고 무조건, 빨리 빨리, 잘되라고...
암튼 무조건 잘되야 합니다.
잘되라는 주문...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입니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vincent
2000.06.17 04:40
한 번도 얼굴 뵌 적은 없지만, 저도 잘 되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푸코님의 글을 읽고 나서 잠깐 가슴이 시렸는데요....
영화 한 편을 만들어 개봉하고 평가를 기다리는 지난한 과정은 물론이려니와
한 편이 들어가는데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들이 때론 소진되기도 하는지
지켜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잘 모를꺼에요.
옆에서 지켜보시기에 때론 안쓰럽고, 때론 답답하시겠지만
계속 응원해주세요.
영화하면서 가장 어려운건 기다리는 일인거 같아요.
그런 시간과의 싸움에선 지쳐서 포기하는게 결국 지는거겠죠.
그럴 때 옆에서 누군가가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응원해주고 격려해준다는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저도 그럴 때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늘 옆에
있었기 때문에 아직 뭔가를 쓰고 있는거 같아요)
도와줄 수 있는게 없다고 하시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푸코님의 마음은
이미 많은 걸 도와드리고 계시네요.
그럼.. 푸코님도 힘내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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