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상을 받고나면세상이 달라질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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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착각이였다는걸 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반 영화제도 아닌 장애인 영화제의 대상을 누가 신경을 쓴단 말인가?
심지어 시각장애인 연합회도 창립이래 최초일 이 낭보를 남의 일인양지나쳤는데 말이다.
2009년9월 25일서울 목동 방송회관2층 브로드홀.
오후 6시를 넘어 제 10회 장애인영화제 폐막식이 시작되었다.
사실 폐막식을 참석하고 싶어서 참석한게 아니라 상영된 영화의 사운드에 잘못된 부분이 있어 수정한 DVD를 가져다 주려는데 마침그날이 폐막식이였다.
점심때쯤 전화가 왔다.
영화제인데 오늘 꼭 참석하셔달라구...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한시간정도 지나자 다른 목소리의 사람이 참석을 확인하는 전화를 다시 걸어왔다.
알았다고 대답했다.
의례적인 참석을 독려하는 전화라고 생각했다.
같은 내용의 전화가 다시 한시간 정도 뒤에 걸려왔다.
은근히 짜증이 났다.
뭔 일을 이딴 식으로 한다냐? 한번 간다고 하믄된거지...돌아가며 전화를해대누...
극장에 도착해 진행팀에게 수정한 영화 DVD를 전하며 혹시 다른 곳에서 상영을 할 경우 수정본으로 상영해 달라고 부탁햇다.
극장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자원봉사자 함명을 붙여주는거다.
보통동행인이 없는 경우 객석에 앉을때까지안내를 해주는게 보통인데 이사람 가지 않고 내 옆에 앉는거다.
다른 일 안보셔요?
감독님과 같이 잇으라는데요.
.....
어! 뭔가 느낌이 왔다.
이거 뭐라도하나 받는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였다.
냉정을 찾으려고 했지만 자꾸 입이 마르고 속이 타 들어갓다.
시간이 흘러 여러 사람들의 인사말이 끝나고 시상식이 시작됐다.
그래...장려상이라도 받으면 감사한거지...뭐...
내 이름은 불려지지 않았다.
그래 동상!
역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은상!
설마. 은상?
역시 내 이름은 부르지 않는다.
이런된장.
괜히 자봉은 옆에 붙여놔서 사람 기대하게 만들고...이런 된장...
금상
역시 금상도 다른 사람!
대상.
에이 설마아닐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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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0.24 임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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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진공상태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않고 정신이 멍했다.
지난 2년 동안 고생했던 영화작업의 순간순간이 되살아나며 가슴은 기쁨에 벅차 쿵쾅거리기 시작햇다.
자봉과 함께 무대에 올라갔고 상패와 상장 꽃다발을 받았다.
약간울컥했지만 믿고 작업을 도와준 편집기사와 촬영기사,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전하였고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먼저 인기척을 하고 도움을 받을건지를 먼저 물어봐 달라는이야기로 마무리 지었다.
폐막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았고
어떻게 알았는지 몇몇 분들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수상이기에 스텝이나 배우들에게는 연락하지 않은게 좀 속상했다.
기쁨을 같이 나눌 사람들이 현장에 없었기에 고시원으로 돌아왔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안았다.
아무리 장애인영화제라도 대상인데 여기저기서 인터뷰하자고 전화가 오면 어쩌나....
핸드폰을 끄고 잘까란 쓸데없는 고민을 하다 잠이 들었다.
투석하는 날이라 아침 6시에는출발해야 돼서 일어나 준비를 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는데 조용한거다.
그래. 인제 겨우 새벽 6신데...
병원에 가서 투석을 시작하고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며 인터뷰 준비를 했다.
꼭 시각장애인에게 다가설때는 무작정 붙잡지말고 인기척을 낸 다음도움을 받을건지를 물어보고팔꿈치를 주세요라고 해야지...
9시가 넘고 10시가 넘도록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
아는 분들의 축하 문자만 간간히 날라오기만 했다.
혹시 전화기가 고장이 났나 살펴봐도 아무런이상이 없었다..
왜 이러지? 아! 오늘이 토요일이지! 그래. 요즘은 주 5일 근무라 기자들도 토,일요일은 쉬는구나!
하지만 토요일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도 여전히 내 휴대폰은 잠잠하기만 햇다.
심지어 장애인 영화제 홈페이지에 시상내역도 올라오지 않앗다.
난 내가 무슨 꿈을 꾼 줄 알았다.
상패와 상장이 있으니 꿈은 아니고...
혹 친한 친구 녀석들이 내가 영화를 만드느라 고생했다고 깜짝 이벤트를 해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결국 다시 한번 대한민국 장애인의 현실을 깨달앗다.
아무리 날고 뛰어도우리만의 잔치 였던 것이다.
그래도시각연합회에서는 축하 전화라도 해줄줄 알았다.
사실 그게 제일 섭섭하다.
올림픽이나 국제 경기에서 우승을 하거나 선전한 선수들에게대통령이축하전화나만남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연합회에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나보다.
덕분에 다시 한번 세상은 누구에게 의지하지 말고 나혼자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후 일반영화제에 참가하면서 시각장애인 영화감독이라는게 신기했던지 TV와 잡지등에 기사가 실렸다.
물론 시각장애인에게 다가설때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빼먹지 않고 했다.
올해에도 장애인인권영화제와 인디다큐페스티발, 인권영화제등에서 상영이 결정되엇고 호주 장애인 영화제에도 심사비를 면제받고 출품된 상태다.
앞으로 혹시라도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더라도 작년처럼 허황된 기대는 안 할거다.
물론 연합회 수장의 축하전화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