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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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그와 그녀

ty6646
2009년 07월 30일 03시 04분 54초 1766 2
새벽, 인적뜸한 거리, 그 길 중앙에 선
출근길인 듯한 한 중년의 남자가 내 시선안에 들어왔다.

남자,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팔을 든다. 손을 흔든다.

한번, 두번, 세번.... 머리위로 한참 올라간 팔이
인적뜸한 새벽거리를 휘젖는다. 멀리,
그 남자가 바라보는 저어기 멀리
너무 멀어서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저어기 멀리
앞치마를 두른 여인하나가 남자를 바라보며 서 있다.

새벽, 인적뜸한 거리, 일직선 아스팔트 길위에
중년의 남자하나와 중년인 듯한 여자하나가
서로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먼 거리에서 마주보며 팔을 흔든다.

100미터도 더 걸어 나와서 뒤돌아본 남자
100미터도 더 간 남자를 계속해서 바라보던 여자,
그들이 중년이란걸, 이제 곧 하얀 머리 파뿌리의 노인이 될거란걸
생각하면 웃겼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니 그냥 웃겼다.
마음속이 촉촉한 웃음으로 젖어간다







할배는 할매의 손을 잡고있다
차들이 달리는 도로, 그 옆, 인도위를 그들이 걸어가고 있다.
발맞주어 왼발, 오른발, 왼발, .... 그리곤 멈춰선다.
한 5초간 멈추었다가 다시 왼발, 오른발, 왼발.... 5초간 멈추고,

한낮, 어른인 두 사람이, 손잡고 나란히
정확히 세걸음 걷고나서 멈추었다가 다시 세걸음 걷고,
이렇게 반복하며 걸어가는 그 모습을 보고 난 생각했다.
ㅋㅋㅋ 웃긴다^^

몸이 불편해보이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한낮의 그 시간,
내가 이 길 저쪽에서 이쪽까지 오는동안
그들이 걸어간 거리는 불과 십수미터
그 길은 아마도 그녀를 위한 산보가 아니었을까...
ㅋㅋㅋ 그래도 웃긴다. 무슨 태엽인형도 아니고...

이제 사랑이란 마음조차 지겨울때도 되었을 법한
쭈글쭈글하고 온갖 크고 작은 점들로 가득들어찬 얼굴....
이젠 사랑이란 기억조차 삭아서 사라졌을 법한
듬성듬성, 새하얗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녀의 발걸음에 맞추어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그, 그 쭈글쭈글한 손끝엔
그가 평생 만져왔을 그녀의 쭈글쭈글한 손이 잡혀있다.

무심히 지나치는 차들과, 표정없이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세상의 바쁜 길위의 잠시잠깐 정지된 듯한 걸음걸이가 너무나 아득해서
마치 초침의 바쁜 걸음걸이뒤에 누워있는 움직임을 느끼기 힘든 시침을 떠오르게 한다.
바라보는 내 마음에 촉촉한 출렁임이 뱃속깊은 곳으로부터 전해져온다
바라보는 마음에 탄성이 배어온다. 아 ... 저렇게도 늙을 수 있는거구나...

할배할매와 같은 나이가 되면 아내와 함께 천천히 한낮의 길을 걸어가는 것
내 바램이다. 그와 그녀가 보여준 내 꿈이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sandman
2009.07.31 10:43
영화 <블루>중에...
병 한개를 분리수거 하며 쓰레기통에 끙끙대며 넣는
몸도 잘 가누지 못하던 할머니 인서트가 생각납니다.
Profile
s010534
2009.09.15 21:01
집에서는 이제 늙었다고 사람취급도 안하고 뭐 갑갑하기도 하고
적적하기도 해서 양로원에 간 겁니다.
할아버지가.

적적함도 달랠겸 노인내들이랑 쩜(십) 화투를 치다가 만난 것이죠.
그 할매를.

뭐 어쨌든,
할아버지가 두집살림 하시는 것 같구요.

저는 분륜도 사랑이라 생각을 하는 쪽이라
그 할아버지를 부정하진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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