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같은 배경속에 들어가 있는 내가
어딘가를 걷고 있다. 주위에는 무너진 공장굴뚝과 철근뭉치들,
길위엔 널부러진 벽돌들과 흩날리는 전단지,
아무리 돌고 돌아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대체 어디로 가는건지, 어디에 서 있는건지,
검고 깊은 구름속에서 태양은 보이지 않고,
사방에 보이는건 피폐해진 세상과
내 어둔 마음을 돌아 쓸쓸히 사라지는 바람,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
그러다가 찢겨지다 남은 듯한 문짝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창문이 닫혀진 엷은 남색 나무창틀이 보이고,
빛바랜 노랜 벽과 담이 보이고,
햇살 소북히 내려앉은 흑판과 책상과 의자가 보이고,
열려진 창너머로 연두색 잎을 가진 나무가지하나가
흔들린 듯 아니 흔들린 듯 내 기억속을 잔잔히 들추고 있다.
여긴,
여긴,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실이다.
오래전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실이다.
오래전 저 교탁앞에서 환한 덧니를 보여주며 웃어주었던 그녀가 있던 학교의 교실이다.
교실 창가아래엔 내가 그녀에게 줄려고 몰래 가져온 사과바구니가 보이고
사과사이엔 하얀 백장미 한송이가 숨죽이며 숨어있다.
곳곳에 묻어있는 나와 그녀의 흔적들,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나와 그녀의 마음들
그리고 그날과 같은 바람냄새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렇게 그날과 같은 모습일까,
되돌아본 세상은 그대로이다.
무너진 건물과 부서진 벽과 파괴된 공장들,
길도 없고 사람도 없고 하늘도 잃어버렸고 사람도 사라져버린 세상
난 그 세상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아무리 되돌아가고싶다고 발버둥쳐도 안된다라는 걸 안다
아무리 되돌아가도 그곳에 내 그녀의 마음이 없다라는 걸 이젠 안다.
아무리 내가 그녈위해 태풍속에 미친 듯이 달려가도
내가 나간 그 자리에 그날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라는 걸 안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못잊은 시간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내 마음도
그 누가 뭐래도 내겐 소중하고 내가 보듬어 안아주어야한다
그걸 다 버리고 이미 사라져버린 과거속에 다시 내 마음을 던져넣을순 없다
과거는 과거로 끝내야한다
난 이 파괴된 세상으로 갈지언정, 되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잘가라 오래전 내 마음이여
오래전 내 사랑이여
부디 잘가라
그리고 다시는 날 찾아오지 마라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가듯이
오늘 낮꿈에 오래전 교실을 찾아갔었다.
교실은 내 감성을 터뜨릴만큼 그 모습 그대로였고
그리움으로 도배를 한 듯 했다.
하나하나 만져보고 냄새맡아보고 실감을 했다.
연두색 잎을 단 나무가지로 손끝이 닿을때쯤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왔다.
파도에서 해일로 바뀌어 밀리듯 그 자릴 박차고 나와야할만큼 쓰라렸다.
살다보면 머릿속의 기억은
가끔 꿈안에서 선명한 과거의 모습으로 홀연히 나타나
마음안에 떠돌고 있던 상처를 건드린다.
꿈속에서조차 이뤄주지 않을거면서
가끔 꿈은 나를 정신없이 아프게 하고는 사라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