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쯤, 친구 하나가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힘들게 살아가던 시절,
하루는 연습을 마치고 선배집에 후배 5명(여자 셋, 남자 둘)과 같이 갔다.
재밌게 잘 놀고, 저녁식사도 맛있게 하고나서는
카드뽑기로 설겆이 당번을 정하기로 했다.
제일 낮은 숫자를 뽑은 사람이 설겆이를 하기로 했는데
친구와 여자후배 제이가 제일 낮은 숫자인 3을 같이 들었다.
두사람이 같은 숫자를 선택한 탓에 플레이오프에 들어갔다.
먼저 친구가 Q를 선택했다. 이정도면 충분할거라 생각한 친구는
살짝 웃으며 제이의 카드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제이가 뽑은 카드도 친구와 같은 Q였다.
친구 : 야 우연이 겹치는구나(-_-) 너랑 나랑 운명인가
제이 : 선배 벌써 노망들은거야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돌입했다.
이번엔 제이가 먼저 카드를 뽑았는데 10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카드를 뽑았다.
설마... 하고 카드를 뒤집어보자 친구가 뽑은 카드도 10이었다.
후배들 : 이야 이거 진짜 이상하네, 왜 자꾸 같은 숫자야? 벌써 세번째아냐
선배 : 너네 둘 혹시 진짜루 뭐 있는거 아냐?
제이 : (카드를 전부 정리하여 넣으면서) 됐어요, 내가 설겆이 할테니 절루가서 쉬어염, 전부 절루가 훠이훠이
후배들과 선배는 거실에 앉거나 비스듬히 누워서 비디오를 보고 있었고
친구는 피곤하다며 혼자 선배방에 들어가 침대위에 누웠다.
눈을 감고 쉬려고 하는찰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실눈을 뜨고 그 누군가가 제이임을 확인하고 나서는 다시 눈을 감는다.
친구 : (눈을 감고서) 뭐니? 무슨 할말있어?
말이 없는 후배 제이, 친구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침대 머리 맡에 땡그러니 앉는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친구의 얼굴을 쳐다본다.
친구는 다시 실눈을 뜨고 제이를 보고 말했다.
친구 : 왜 그래, 나 이대로 조금만 쉴꺼야.
가만히 쳐다보기만하는 제이는 역시 말이 없다.
친구는 돌아누우며
친구 : 용건없으면 나가서 얘들고 놀아, 나 지금 무척 피곤하거든... 잠깐만 쉬다가 나갈께
그러고 나서 친구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때...
제이가 일어서더니 발을 들어 친구의 입을 밟아버리는 거였다.
친구 : 너 이게 무슨 짓이니 이러지마.. 화낼거야
여자후배 제이에게서는 그 어떤 대답도 없다. 얼굴표정의 변화도 없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쉬고싶었던 친구는 돌아누워서 피해보려 했지만
제이의 발공격은 멈추지를 않았다.
친구 : 아이참.. 이러지 말라니까...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거니... 조금만 쉬다가 나간다고 했쟎아
드디어 친구는 화가 났다. 제이의 발을 잡고 벌떡 일어났는데
제이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거였다.
친구 : 뭐야 이거 분명히 제이가 들어와서 내 입을 밟았었는데... 꿈이라도 꾼건가
꿈일까하고 생각하려든 친구는 그런데 입이 너무 아파서
침대 반대편 벽면에 걸린 반달거울에 얼굴을 비쳐보았다.
그러자 입에서 피가 흐르는게 보였고,
역시 꿈이 아니라 실제로 제이가 내 입을 밟고는 잽싸게 토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피를 보고 화가 난 친구는 참을 수가 없어 그대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거실로 나가보니 여자후배 제이는 다른 후배들과 천연덕스럽게 비디오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게 아닌가.
친구는 화가나서 제이 앞으로 달려가 큰 소리로 나무라며 화를 냈다.
친구 :
제이.. 너 왜 쉬고 있는데 들어와서 방해하고 그러냐? 잠깐 쉬었다 나온다고 그랬쟎아
그리고 선배 입을 발로 밟고 그러는 거, 그거 무슨 경우냐. 너 그렇게밖에 안돼?
그러자 제이는 물론이고 곁에 있던 다른 후배들도 눈이 똥그래져가지고
화가 나 있는 친구를 돌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후배1 : 선배... 제이는 선배가 들어가 쉬고있던 그 방안에 들어간적 없어요..
후배2 : 아까부터 쭉 우리랑 여기서 비디오보면서 놀았는데...
제이 : 선배.. 전 화장실도 안갔어요, 선배 꿈꿨나 보구나
친구 : 꿈? 꿈이라니, 여기 피 흐르는거 안보여?
제이 : 피. 라. 뇨?
친구 : 여기 말야 입가에 피.. 아까 니가 들어와서 여기를 밟는 바람에 찢어져서 지금 피가 흐르고 있쟎아
후배들 : 선배 피 안나요
친구 : 무슨 소리야, 일어나서 거울 보니까 입에서 시뻘건 피가 흐르더만
그때 밖에서 소주를 사들고 들어오던 선배가 친구의 말을 듣고는
선배 : 너야 말로 무슨 소리냐, 너 입가에 피안나
입가를 쓰윽하고 닦아보니 정말로 피가 묻어나오지 않았다.
재삼, 재사 닦아보았지만 역시 피는 없었다.
친구 : 어 정말이네, 그새 멈춘건가, 아까 거울에 비쳐봤을땐 분명히 피가 났었는데..
선배 : 거울? 거울이라니?
친구 : 선배방에 그 반달거울 말이에요,
선배 : 내 방엔 거울 없어
친구 :
거울이 없다니.. 하하 지금 농담하세요?
침대 반대편 벽에 걸린 반달거울, 모르세요?
선배 : 반달이고 온달이고 내 방엔 거울자체가 없어
친구 : 무슨? 방금전에 입가에 흐르던 피를 분명히 봤는데,
선배와 제이와 나머지 후배들은 친구를 따라 모두 그 방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친구가 문을 열어 가리킨 침대 반대편 벽면에, 그러나 반달거울은 없었다.
그 방안엔 그 어떤 거울조각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친구가 그냥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찰나적인 영적체험을 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이면 멀쩡하게 잘 살아있는 후배 제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