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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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눈만 스쳐도 마음에 남는다

ty6646
2008년 04월 25일 08시 05분 57초 1750 3
언젠가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참 이상하다. 어떤 여자라도 눈동자를 10초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좋아져버리니 말이야』

『........(-_-)』

『그래서인가.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좋아......(^^)』

『미쳤군......(-_-) 내 애인은 1초도 쳐다보지 마라』

『어쩌지. 벌써 10초이상 봐 버렸는데......(^^)』

『오빠. 그럼 나도 좋아진거야』

『응.....(^^)』

『둘다 미쳤군......(-_-)』




옛날 옛날에 이웃집에 한 꼬마여자 아이가 살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때는 꼬마라고 불리웠던 시절이었고......
그녀는 양지에 앉거나 서서 사내아이들이 노는 것을 즐겨보곤 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술래놀이, 내가 그렇게 친구들과 놀고 있을때마다
그 아이는 담벽에 붙어서서 그렇게 구경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 그 아이는 다른 여자아이들과 같이 어울리지 않는지, 조금은 의아한 마음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녀에겐 오빠가 둘이 있는데 둘다 내 친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 놀곤하는 나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싸우질 않는가.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그녀의 오빠들과 자주 싸우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담벽에 기대 서 있는 그녀 또한 미워지곤 했던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그 아이였지만 오빠들과 싸우고 난 다음엔
그 아이역시 어린 내 마음안에선 내 적이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번 그렇게 물들어 버린 마음은 쉽게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까닭없이 그 아이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따돌리기도 하였다.
오빠들과 다시 어울리며 구슬치기를 하면서도
그녀에 대해서만은 차가운 한기가 거둬지질 않았던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고 미친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나 자신조차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루하루 그 아이에 대한 내 미움은 커져만갔고, 어떤 날은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던 적도 있다.


국민학교 4학년이 되어 시내로 이사를 가게되면서
자연히 그들과는 멀어졌고, 연락도 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 대한 모든 것들도 다 잊어버린채 그렇게 어른이 되어갔다.
세상 것들에 대해 마음이 열려가면서 남자도 보이고, 여자도 보이고,
그러다가 옛날 일들도 하나하나 기억속에서 흐릿하게나마 되살아 나면서
그 아이에 대한 내 잘못도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 아이를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하고, 울리기까지 했을까.
그렇게 귀엽고 조용하기만 하던 아이를 내가 왜....... (-_-)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의 그 원인을 찾을 수 없고, 답답하기만 했다.
다만 그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만이 커져갈 뿐이었다. 사람을 잘 모르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미워하기만 한 나 자신을 참 많이 나무랐다.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던 그 아이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잘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슴안에 꼭꼭 채워갔지만
그 이후로 그 아이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난 어른이 되어버렸다.


선배도 생기고, 후배도 생기고, 친구들도 생겼다.
지나치는 여자들과 썸씽도 생겼고, 우연챦게 만나는 여자들도 많아졌다.
같이 앉아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때론 술도 마시며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것들을 주절댔던 청춘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여자를 만날때마다, 그리고 여자의 눈동자가 젖어갈때마다 내 마음속에선
아련하게나마 그 옛날 내가 울린 꼬마아이가 떠오르곤 했다.


꼭 그런 이유때문이라서는 아니지만 여자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눈에서 눈물나지 않도록 잘해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친구여자이든, 선배이든, 후배이든,
아니면 방금전에 애인한테서 채인 여자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잘해주고 싶다라는 내 마음은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한 여자에 대한 경계심으로도 나타났다.
잘 모르면서 평가할 순 없고, 그렇기에 한발자욱 다가서기에도
겉으로 보이는 편안함과는 달리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모든 여자들에게 잘 해주면서도
어느 한 여자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어정쩡한 청춘을 보냈던 것이..........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moosya
2008.04.29 06:56
재밌게 잘 봤습니다.
73lang
2008.05.04 12:39
공감...............ty6646님 글들은 가끔씩 가슴을 칠때가 있슴다..
doggy4945
2008.05.08 12:41
맞아요.. 님 글은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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