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 부턴가
술에 취해 코알라가 되면
소주 한병 사들고 종합병원 응급실 앞에서 술 먹는 버릇이 있었다.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음..그래
나한테 오빠라고 불러주던 그 친구...이제 기억난다.
아마 그 시절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아는 후배의 전화는
'제과점엔 왜 돌림빵이 없나요?'라는 제목의 음란 스팸을 확인하고 있을때 걸려왔었다.
"형...**이가 죽었데 ㅠㅠ"
초겨울의 찬 바람이 제법 길게도 불어오던 그 때
바람이 여러겹으로 겹치자 머리를 앞쪽으로 휘날리며
나는 있는 힘껏 정류장을 향해 뛰면서 중얼거렸다.
"C8!! **이가 죽었다 ㅠㅠ;;;;;;;;"
아무리 인명은 제천이라지만
너무나 허망했었다.
아내되는 **이는 결혼하고 나서 조명일 관두고 (실내)포장마차일을 했었고
남편되는 oo이는 열심히 영화 현장에서 조명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두 편의 영화에서 같이 작업하며 고된 밤샘 촬영후에 술을 먹던게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그 친구들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행히 애는 없었지만
너무나 안타깝고 황당해서 말이 안나왔다..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 지수가 1부터 10까지 있다면
10에 해당하는게 배우자의 죽음이라던데..
충혈된 눈으로 울먹거리는 OO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이가 잠자던 모습 그대로 돌연사했다는 다른 스텝의 말에
난 그나마 편하게 갔을거라고 위로 아닌 위안으로 삼으며
눈물짓는 OO이를 말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기분이 너무나 참담했다..
제 한몸 제대로 건사하지도 못하는 놈이
갑작스런 비보에 병원으로 갈 차비도 없어서
공익근무요원 눈을 피해 몰래 지하철 개찰구를 뛰어넘으며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후배들 앞에서 선배노릇 좀 할겸
여기저기서 급전을 구하려다 결국엔 GG치고--;;
어머니가 내 명의로 들어놓으셨던 보험들을 죄다 해약 했지만
환급 받을 수 있는 돈이 전부 다 합쳐서 10만원이 채 안됐었다. --;;;;
발인까지 OO이 곁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다음날 잡힌 아는 피디님과의 미팅 약속때문에
서둘러 장례식장을 나섰었다.
너무나 참담하고 비루한 심정에
꼬박 밤을 세운후에 피디님을 만나러 갔었다.
그 피디님 앞에서
간살맞은 웃음을 흘리며
"피디님 이런건 어떨까요?
남자 주인공의 핸드폰에 여자의 핸드폰 번호가 저장되어있는데요
이 남자가 저장된 번호를 누르자 그 여자가 전화를 받는겁니다.."
'근데??'하는
시큰둥한 피디님의 얼굴
나는 더욱 마음이 조급해져 진지한 얼굴로 침을 튀어가며 줄거리를 설명했다.
"근데...이 여자가 사실은 이미 고인이 된 죽은 여자였거든요.."
그제서야 피디님의 얼굴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난 계속해서 게걸스럽게 주절거렸다.
"즉, 이 남자 주인공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던 여자를 잊지 못해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지우지 않고 있다가
어느날 술을 먹고 전화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와 비슷한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거든요..
어떻슴까? 죽이지 않슴까요???"
피디님은 노트북을 꺼내
자기 시나리오 파일에 내 아이디어를 메모해 나가기 시작했다.
...
이런 줴길~;;;
'결국 또 남 좋은 일만 시켜줬구나'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소주 한병을 샀다.
공원 안에 있는 병원 응급실 앞에 앉아 병째로 나발을 불어대며
김치 왕뚜껑만한 눈물을 흘려대면스롱
이미 고인이 된 **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아~ 미.안.하.다 ㅠㅠ"
그래...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술 먹고 코알라만 되면
나도 모르게 병원 응급실 앞에서 술을 먹게 된게..
가끔씩 운이 좋으면
나와 생면부지인 사람의 장례식장에 들러서
상조회사에서 나온 아줌마에게 부탁해 푸짐하게 끼니를 해결하던 버릇도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ㅡㅡㆀ
(영화)현장에서 만난 친구중에서 유일하게 내게 오빠라고 불러주던 **이..
그 친구한테 늘 가슴 한 구석에 마음의 빚 같은게 남아 있었다.
2.
꽤 오래 전 얘기 하나...
부산에 있던 모 시네마떼끄 사무실에서
고아였는지 아니면 집나온 부랑아인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꼬맹이 하나가 길러진(?)적이 있었다.
성은 고씨 인데 이름이 달우였던 그 아이..합쳐서 부르면 고달우(고다르) ^^;;;
정처없이 부산까지 흘러내려가
우연히 만났던 그 아이..
그 아이의 소개로 알게 된 여대생도 내게 오빠라고 불러줬었다.
오빠라는 존속사기적 호칭이 그렇게도 듣기 좋은 말인지 그때 처음 느꼈었다.
주로 형이라고 부르는 여대생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내게만 오빠라고 호칭하던 그녀..
칠성 사이다처럼 맑고 깨끗한 그 아이..
달우랑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3.
지방 헌팅중에 만났던
아기사슴 밤기 같기도
무지개 동산의 아로미 같기도
삶은 메추리알의 흰자위 같기도 한
맑고 깨끗한 그녀...;;;
띠동갑이 넘어서는 나이때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오빠'라고 불러주던 그녀...
그녀만 생각하면 마구마구 시상이 떠오른다.
까도 까도 알수가 없고
자꾸 눈물이 나는 어린 양파 같은;;;
그녀에게
다짐했던 약속이 있었다.
반드시 너를 모델로 작품 하나를 만들어주겠노라고.;;;
4.
핵겨울같은 빙하기(?)를 지내며 문득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나도 40을 준비해야 될 나이가 됐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우리 동네까지 진출한 국제결혼 알선 업체를 찾아가
베트남 신부를 알아 봤지만 ㅡㅡㆀ
핸드폰에도 기본요금이 있듯이
기본 가입비만 750만원이라는 소리에 쓸쓸히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5.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난, 또 다시 소주병을 사들고 자주 가던 병원 응급실 앞으로 향했다. -_-
별 하나에 소주 한잔과
별 하나에 오징어 다리랑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스치는 바람에도 쪽팔림을 느끼면서
이제 그만, 영화를 때려치워야겠다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이제 그만~ 정말로 이제 그만이다!
그래 이번엔 진짜로 영화를 때려치는 거다;;;"라고 결심을 했을때
우연히
어린 시절 다녔던 교회에서 오빠라고 부르며 나를 잘 따르던 그녀랑 마주칠 수 있었다.
알흠다운 미모는 여전했지만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는 그녀가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색썰렁하게 안부를 묻고는 자기 갈 길을 가던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또 다시
한참동안
별 하나에 소주 한잔과
별 하나에 치토스랑
스치는 바람에도 쪽팔림을 느끼며
그렇게 또 술을 마셔댔다..;;;
세 병째 소주병이 다 비워져 갈때쯤
내 앞으로 유모차를 끌고 지나치는 낯선(?) 여인의 옆모습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근데...뭔가 조금 이상하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가??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줌마가 아까 전에 헤어졌던 그녀 모습이랑 얼굴이 너무 똑같다고 느낀 그 순간..
아~ 맞다! 그녀가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불현듯..
전기에 감전되듯
충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도를 치면스롱
괄약근에 땀을 쥐게 하는 쓰릴과
불R이 줄넘기를 하는 것 같은 충격과
안심과 등갈비가 서늘해 지는 ;;;
미스테리 하드고어 스릴러 한편이
마치 영사기가 돌아가듯 머리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길고 긴 시간동안 이면지를 긁어댄 후
이제서야 막초고 시나리오가 탈고 되었다.
시나리오 마켓에나 또 하나 올려볼까? 작가 피칭 프로젝트에 한번 참여해 볼까?
뭐, 이런 저런 짱구를 굴리다가
잘 나가는(?) 아는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보내줬다.
포기란 배추를 셀때뿐
나는야 포기를 모르는 근성의 사나이
빙하기 같은 겨울나기 후
봄 바람이 분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오빠가 돌아왔다.
움훼훼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