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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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결핵환자의 쓴소리 - "숙명"

antikoko
2008년 03월 21일 00시 32분 44초 2368 5
P1010002.JPG

(몇년전 우연히 고깃집갔다가 그곳 사장이 김재엽선수라길래....)

결핵진단후 2개월째,
좀더 나은 방을 찾아 흑석동으로 이사온지 18일째.
아침마다 털어넣는 한웅큼의 약에도 적응이 되어가고 방구석도 이젠 사람 사는곳처럼
정리가 되었다.

유선방송 설치비가 44,000원이나 하길래 아침부터 피로감이 급상승했는데
이상하게 아점을 먹고 나니 안정보단 등산을 하고 싶어졌다.

사당쪽으로 해서 관악산 등산을 결심하고 2년전 사두고 아직 한번도 신지 않은
옥션표 등산화를 박스에서 꺼내들었는데 아직 끈도 묶지 않은 상태인거다.

귀챦아서 뒷동산에나 갔다오자며 평상복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근데..오호.. 꽤 좋은 산책로 발견!!
현충원을 끼고 굽이 굽이 길이 이어지고 현충원 내부로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는 것이다.
굽이치는 맛은 없다만 흡사 북한산성길의 축소판 같았다.

이 산책로에 대한 리뷰는 다음에 "결핵환자의 산책"이란 제목으로 한번 정리해보도록 하고...

현충사로 내려와 고즈넉한 정취에 젖다보니 탄력받아 이수역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이수 시너스"극장 간판이 보였는데 저 시너스극장은 왜 죄다 장사 안될만한 구석탱이에만
있냐?라는 생각이 들어 동작구민이 되었으니 표한장 팔아줘야겠다는 애향심이 쏟구쳤다.

"숙명"을 선택했다.
몇일전 "10000BC"에 낚였을때 예고편을 보던 옆자리의 커플이 뻔한 영화아냐?라고 단정짓던
그 "숙명"이었다.

"숙명"의 사전적 의미는 피할수 없는 운명이라는데... 그딴건 없고
욕만 있고 린치와 살인 메뉴얼만 나온다.
여자에 대한 시각도 바닥을 지나 하수도까지 갔다.
그것도 2시간 동안. 줄창.
이거 뭐 양아치 메뉴얼도 아니고.

최소한 요즘 영화판 분위기와 관객의 눈높이 정도는 반영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류배우만 나온다고 될 일이 아니란게 어느 정도 학습된 시점이라 생각했다.

저렇게 비싼 배우들 쓰고 욕 안먹으려면 시나리오 변별력쯤은 기본이겠지 싶었다.
배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중히 고르고 또 골랐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보기좋게 낚였다.

화가났다. 그것도 심하게.
술먹고 싶은데 약땜에 술도 못먹고.
그래서 이렇게 몇자 쓰고 있다.

영화 얘긴 리뷰 코너가 따로 있지만 그곳에 올리지 않은 것은 리뷰할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집까지 걸어오면서 다시금 영화제작시스템에 구멍이 있음을 절감했다.
그걸 다시금 느낄수 있게 해준게 이 영화를 본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시나리오가 구체화되었을때를 예측했을 터이다.
그 예측이 어긋나는것은 사실 다반사에 속하나,
누구나 예측가능한, 앞서 얘기한 커플이 예고편만 보고도 "뻔한 영화아냐?"라고
단정지을만한 수준의 것이었다면 문제가 크다.

그 예측을 했던 시스템이 미숙하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 예측도 안되는 시스템은 당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맘에 안드는 영화들 참 많다.
유별나게 "숙명"가지고(게다가 찾아보니 오늘 개봉했다던데)
지랄하고픈 것은 이 영화가 가지는 퇴행성 때문이다.

재미 없는 영화 많다.
의미 없는 영화 많다.

하지만 왜 퇴행까지 하는가!

"숙명"은 최소한의 새로움이란게 없다.
치명적이다.

이래갖고는 한국영화 살리자 떠드는 것, 의미없다고 본다.

나부터 바뀌어야겠다.
책을 다시 꺼내들어야겠다.

<후배 영화인과 영화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오늘에 임하자!!>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73lang
2008.03.21 01:23
본인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좀 해주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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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son
2008.03.21 14:02
마음 깊이 새겨들을 말이네요....
antikoko
글쓴이
2008.03.22 00:14
내 사진 더 올릴라고 하는데...^^
여기를 내 블로그 삼아서...쿨럭~~
다들 싫어하실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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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9000
2008.03.22 04:22
고춧가루 같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칼칼하고 맵싹한게 너무 좋아요... 물론 사진도 기대합니다.
아무쪼록 건강상태 좋아지시길 바랍니다.
(사진 왼쪽에 여자아이 참 예쁘네요. 벚꽃, 진달래, 개나리 닮은 녀석!)
(그리고 역시 김재엽 선수... 시상식때 그 화려한 용문양 한복이 잊혀지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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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jam75
2008.03.23 22:27
최근 본 영화중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좋던데요.
두 번째 보면 그 심장을 압박하는 서스펜스가 덜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고.
깊이있는 테마와 단발머리 가발을 쓴 터미네이터 캐릭터에 대한 창조력, 코엔 형제에게 절을 합니다.
이 정도면 됐지, 캐스팅 됐으면 이제 시나리오 그만 고치고 촬영들어가자,
... 쉽게 가지 않는 치열한 필름메이커스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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