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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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우울증과 카메라

hermes
2008년 02월 16일 10시 07분 41초 2026 2
친구에게

옛날에 말야.
아주 옛날에.. 우리 사진찍으러 다니던때 기억나 ?
집에 장롱에 있던 카메라 하나씩 들고서는 사진찍는다고 막 돌아댕겼지
동네계단, 낡은벽 고궁. 거리... 그때는 동네가게 아무데나 필름도 맡길 수 있었는데. 그치 ?

우울증이 생길것 같아서 오래된 카메라를 하나 샀다.
오래된물건인데 낡진 않았드라. 이상해.
나두 날 좀 더 아껴줘야 할것 같애.
너두 그래라. 좀 아끼자. 아껴.

그 옛날에는 비싸서 쳐다도 못보는 건데, 그때만큼은 비싸지 않네..
돈이 많냐구 ? 아니 전혀.

그래서 우울증을 달래느라 요즘은 인터넷 사진관들을 돌아댕긴다.
여기 저기 많더라. 사람들 사진 참 잘찍어.
다들 작가야. 와~..

하긴 국민취미가 사진찍기잖아.
아직은 그냥 테스트 몇방. 렌즈가 오래된거라... 겉은 멀쩡한데 속은 안그런지..
흐릿하게 나온것들이 많네..
내가 노출을 잘못잡아 그런거라구 ?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게시판에 사진 제목이 "스따리나잇"
봤더니 올림픽 공원 야간에 찍은 사진인데 하늘에 별이 몇 ! 개 있더라.
서울하늘에도 별이 나왔다고 기분좋게 찍은 사진인가 본데..
보는 순간 짜증이 팍 나네..

남대문을 새로 짓던 시절에 살던 사람들에게
나중에는 저 별이 다 안보이게 된다고 얘기해주면 그 사람들이 믿을수 있었을까.

어떻게 별이 안보여요 ?

글쎄 나중에 미래에서 사람들이 와서
나중에는 저 해를 볼 수 없게 된다고 말할지도 몰라.
우린 그럼 믿을거야. 그치 ?

"당연하지. 그렇게 되겠지."

그런걸 믿어버리는 인간들이잖아. 우린,
뻔뻔하고 재수없어 정말..

암튼 이 사진기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찍구 싶다.
그게 영화만들기보다 훨씬 좋을것 같다.
그게 영화다. 그게 진짜구, 그게 훨씬 더 행복할것 같아.

우리가 옛날에 하고 싶었던.. 그거 말야..
우울하게 굴어서 미안. 담에 만나면 웃어줄께.
오늘만. 봐주라..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73lang
2008.02.16 16:19
'관찰자의 관측에 의해서 우주가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적 우주론을 바탕으로 한 SF 소설 중

'쿼런틴'이라는 작품을 얼마전에 읽어봤는데요

hermes님의 글을 보니깐 뜬금없이 소설 속 한 대목이 생각나네요

"인류의 조상이 눈을 떴을 때, 얼마나 많은 별들(항성과 행성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설마 진담은 아니겠죠?"

"진담이에요"

...

밤하늘엔 별이 있고 내 가슴속엔 영화가 있어서 오늘도 행복합니다.
weirdo
2008.02.20 02:44
우울증은 선천적 정신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니
한때의 지랄같은 감정으로 (만성)우울증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풋풋하던 옛시절보다 별은 덜 보이지만
그래도 그 별들은, -도시 사는- 인간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고...

그렇게 별이 덜 보이는 오늘에까지 이름으로
우리는 지금 이렇게
붓글씨 대신 컴퓨터로 글도 쓰고, 서신 대신 전화도 -심지어 이동전화도- 쓰고,
소나 말 대신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타고,
남녀칠세부동석 대신 다양-짜릿-흥미로운 이성관계도 갖고

심지어, 농사일 대신 영화일도 하고,
그런 거라고...

눈물이 나도 그렇게 우겨 넣어야지, 아니면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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