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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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결핵환자!

antikoko
2008년 02월 16일 00시 56분 10초 5190 5
pleurisy.gif

(흉막(늑막)염 환자의 폐 x레이 사진. 우측폐 아래쪽이 흰색으로 보인다.
물이 찬 것이다. 나는 왼쪽폐가 저렇게 되었다)

결핵환자가 됐다.
정확한 병명은 결핵성 흉막염.
무시무시하다.

감기증상이 오래가고
누웠다 일어나면 배쪽에서 물이 가슴쪽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우왕ㅋ굿ㅋ한
느낌이 계속되어 약국 대신 동네 병원을 찾았다가 발견되었다.

동네 병원 여의사는 x레이 사진을 보더니 야이 빵상~! 아니 이렇게 되도록 뭐했냐고
생지랄을 하면서 냉큼 큰 병원 응급실로 몸을 내던지라고 진저리를 떨었다.

폐의 x레이 사진을 본 적이 없는 나는 원래 저렇게 생겼거니 했는데
좌측폐의 반이 하얗지? 저게 물이 찬거야, 원래는 검게 나와야 된다규~!!! 이 등신아~!!!..
라는 의사의 절규에 그제서야 사태가 심상챦음을 인지했다.

여의사의 외모가 꽤 준수했던 탓에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사태가 사태인만큼
다음을 기약하고 곧바로 가까운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걸어가 눈치보다가
젤 깔끔해 보이는 빈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뭘해야 될지 몰라 죽은척하고 있었는데,
곧 젊은 의사들이 야~! 저거 뭐야~ 빨리 해부해보자며 우루루 달려들어
웃통을 까발리고 링거 꽂고 피 뽑고, 청진기, 혈압계 심전도기를 마구 들이댄다.
이거 뭐 혈기 왕성한 젊은 여의사는 빤스까지 벗길 태세라 성폭력방지차 은근슬쩍
바지는 잡아두었다.
와 이거 진짜 대접받는 기분이다!!! 우왕ㅋ굿ㅋ

그리고 10일간 입원을 했다.
흉막속에 들어찬 물을 등을 찢어 빼내니 링거병 한통반쯤 나왔다.
와우~! 우왕ㅋ굿ㅋ~

확진명은 결핵성 흉막(늑막)염.

하루에 회진시 1분여밖에 시간을 내주지 않는, 아니 30초도 안되는 것 같은 의사는 퇴원날,
병명이 밝혀졌으니 이제 한웅큼씩 되는 결핵약을 최소 6개월을 즐 쳐드셔야 되는데
술 안되고 담배도 될수 있음 피지 말고 돈 있는거 다 좋은거 먹고 자는데 쓰고 과로는
거부하십쇼.... 라며 애정이 듬뿍 담긴 거대한 약봉지를 선물해주었다.

무시무시하다.

아침 공복에 한웅큼 약을 6개월간 목구녕 깊숙히 털어넣어야 된다니................!

벌써 보름여가 지났다.
주변에 알리기 싫어서 입원 생활도 혼자 보냈고
설에 집에 가서도 나보다 더 아파보이는 모친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식이 뜸한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물어오는 지인들에게 결핵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거의 전부가 위로보다는 조롱이 먼저 시작되었다.

쪽 팔린다, 시대가 어느 땐데 결핵이냐, 결핵이 아직도 있단 말이냐, 인생 뭐 그렇게 사냐,
언제 죽는거냐, 크리스마스 씰 수집한게 있는데 치료비에 도움이 되느냐,
결핵촌은 어디로 정했냐, 결핵은 기침으로 전염된다는데 그럼 히드라가 되는거냐
배넷에 죽일놈이 있는데 히드라 지원을 와다오....

다행히 결핵성흉막염은 흉막에 결핵균이 염증을 일으킨 것이라 전염성은 없다고 한다.
폐결핵의 경우 전염이 문제 되는데 이 경우도 약을 2주 정도 복용하면 전염성은 없어진다고 한다.
또한 건강한 사람은 설사 결핵균이 호흡기로 침투한다해도 면역체계가 잘 가동되어 발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리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를 했었다.

오늘 따뜻함이 그리워 사우나를 찾았다가 수면실에 잠시 누웠었다.
그리고 무려 3시간동안 누워 있었다. 너무 따뜻하고 아늑해서.
도합 5시간을 사우나에서 보내면서 뭔가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쓰고 있는거다.

생활의 작은 행복을 느끼고 있다.
온기.. 그게 이렇게 달콤한 것이었을 줄이야~!
시원한 홍차가 이렇게 달콤 쌉싸름할 줄이야~!
낮에 먹었던 김밥세상의 김치찌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맛있었던 것 같다~!

아프니 작은게 보이고 느껴진다.

앞으로도 항상 환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봐야겠다.....

<후배 영화인과 영화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오늘에 임하자!!>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ty6646
2008.02.16 01:46
결핵이라길래 '가까이 가고싶지 않아' 라는 기분으로 글을 읽었슴....
글을 읽고나니 '가까기 가도 될꺼 가토' 라는 기분이 들었슴..
생활의 작은 행복... 어제오늘 잊고 살다가 이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슴...
73lang
2008.02.16 16:09
옛날 문인들은 죄다 결핵으로 요절을 했다넌디..

성님은 좋은 글도 안 남겼는데 벌써 가시면 안되지라;;;

아기사슴 밤비가 성님 안부를 묻길래

치명적인 옮기는 결핵땜시 요양중이라고 말해줬음..ㅋㅋㅋ

요즘 마리젖뚜아네뜨 루이 씹8새 같은 국개 좀비들의 신세한탄 무작위 방화나 테러가 유행인데

일상의 소소한 것에도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성님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만 있다면

모두가 결핵에 걸려도 괜찮다고 생각함.

근데 21세기에 OECD 가입국가 중 26위를 하는 나라에서 결핵이라니깐 조금 아스트랄한 것도 사실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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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jun8408
2008.02.19 16:58
아자아자!! 남은 시간까지 힘내세요..

좋은것만 드시고 과로하지 마시고 꾿꾿이 약 드셔서 꼭 완쾨 되셔서 좋은 활동 열씸히 하시길..^-^*
ohmy4
2008.02.24 23:53
저도 결핵환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약먹는건 정말 힘들어요 ㅠ_ㅠ
전 약먹은지 이제 한달정도 넘은것같네요*^^* 화이팅!!
gonfafa
2008.04.24 11:34
병철아 정말 오랜만에 들어오니 이런일이 .....
형 촬영하던 동욱이다...
항상 몸이 최고인걸 잊지 않기를.....
병 날쯤 연락해서 한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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