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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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돌아보는 시간이 많은 사람

ty6646
2008년 02월 07일 00시 24분 24초 1584 3
H랑 술을 한잔 했다.
고기구워지는 연기때문인지 가게안은 점점 더 뿌옇게 흐려져가고,
더불어 이유없는 미소가 언제부터인가 내 입가에 걸려있다.
술에 취하면 그냥 웃음이 나오는 내 버릇이다. 가슴을 덮고 있던 답답함이
술 한 잔에 취해 비틀거리듯 아무렇게나 쏟아져 나와버린다.

90년대 거닐던 그 거리가 그립고,
멀리서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절이
언제 저만큼 멀어져 가버렸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적당한 취기를 몸에 담고서,
쓴바람 날리는 밤 풍경 속에 내 발자국을 남긴다.

내 집앞 가로등불 아래
다소곳이 졸고 있던 자판기를 깨워 밀크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커피 한 모금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그 달콤함 속에 지나간 시간들이 녹아 흐르면서,
오늘 무척이나 그리워 지는 나의 뒷모습이 느껴진다.

그해 가을 굴러가는 낙엽같은 그리움으로
잔디밭에서 목쉬도록 부르던 『그날이 오면』도 생각났고,
김영삼 정부와 똑 같다라고 내게 침튀기며 거세게 몰아치던 S 생각도 났고,
그 써늘한 새벽 버스정류장에서 마지막으로 날 안아주던 J 생각도 났고,
Y 때문에 미쳐서 돌아다니던 그 강변의 바람냄새도 생각 났다.

웃음과 슬픔이
마음속에서 젖어 술에 녹아 내리고 난 그 술을 마신다.
왜 난 늘 돌아보는 시간이 많은 걸까..........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sympathy4vg
2008.02.09 18:23
앞을 보셔야죠. 힘들잖아요, 뒤를 돌아 보면. 추억과 교훈만 남기고 전진 !!
doggy4945
2008.02.09 19:06
뮤직비디오를 보는것 같네요..
moosya
2008.02.13 13:27
거울을 보고 있는 감정이네요. 삶을 관조하는 듯한, 풍부한 향기를 내뿜는 글입니다.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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